중국의 '게르마늄' 수출 통제···삼성 3나노 파운드리·D램도 겨눌까? [강해령의 하이엔드 테크]

강해령 기자 2023. 10. 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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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서울경제DB
[서울경제]

정보기술(IT) 시장에 관심 많으신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8월부터 중국이 게르마늄(Ge)·갈륨(Ga) 수출 규제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죠. 미국이 주도로 하는 대(對)중국 반도체 압박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됩니다.

다행히 국내 반도체 강자인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는 이 규제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일단 한숨은 돌리는데, 한 걸음만 더 들어가볼까요. 왜 중국이 굳이 게르마늄과 갈륨을 통제 품목으로 선택했는지에 대해 한번쯤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게르마늄과 갈륨은 반도체 공정 어디에 쓰이고 공급망은 어떻게 형성됐기에 이번 규제에 국내 업계는 흔들리지 않는 것일까.

게르마늄과 갈륨의 쓰임새를 알아보면서 당장 영향이 크지 않더라도 지피지기면 백전불태이니 체크해보겠습니다.(2019년 갑작스런 일본 소재 수출 규제 이후 PTSD로 봐주셔도 좋습니다.) 자, 그럼 게르마늄의 쓰임새부터 출발해봅시다.

◇게르마늄이 3나노 공정에도 쓰인다고?

일상 속에서 건강 팔찌로 익숙한 게르마늄(Ge). 저마늄(Germanium)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취재를 해보니 메모리, 파운드리(칩 위탁생산) 등 여러 영역에서 요긴하게 쓰이고 있는 소재였습니다.

특히 화학 원소인 실리콘(Si)과 결합한 실리콘저마늄(SiGe)의 형태로 많이 쓰이고 있었는데요. 가장 주목할 만 했던 건 최근 파운드리 업계에서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3나노(㎚·10억분의 1m)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공정의 핵심 소재로 쓰이고 있더라는 겁니다.

삼성전자가 세계에서 최초로 양산한 GAA 반도체 구조. 사진제공=삼성전
GAA는 기존 핀펫과 달리 채널의 네 개 면에서 정보가 이동할 수 있습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GAA는 신개념 반도체 연산 장치 구조죠. 이전 세대인 '핀펫' 구조에서는 데이터 연산에 필요한 전하 알갱이가 이동하는 면이 3개 면이었는데요. GAA는 말이죠. 마치 핫도그 밀가루가 소시지를 감싸듯이 정보 이동을 제어하는 게이트가 통로(채널) 전면을 감싸면서 데이터 이동 면적 자체를 늘리는 콘셉트입니다. 위 그림이 쉽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GAA는 지난해 삼성전자가 가장 처음으로 3나노 파운드리를 양산하면서 이 구조를 도입했습니다.

GAA 공정에서 게르마늄이 결합된 SiGe라는 물질이 쓰입니다. 공정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가장 먼저 ①채널 역할을 하는 실리콘과 SiGe를 겹겹이 순서대로 쌓습니다. '에피택시(Epitaxy)'라고 해서요, SiGe 층을 아래에서 위 방향으로 성장시켜 쌓는 방법을 쓰죠. ②그 다음 겹겹이 쌓여 있는 SiGe 층들을 휙 제거합니다. ③실리콘 층 사이 생긴 공간에 전하 알갱이를 채널로 확 끌어당기는 유전막과 실리콘산화막(SiO₂)을 채워 GAA 구조를 완성합니다.

실리콘(회색 층)과 SiGe(보라색) 층을 켜켜이, 반복적으로 성장시킨 뒤 SiGe를 제거하고 채널을 감싸는 게이트를 만들면 GAA 구조가 완성됩니다. 자료출처=구글

최종적으로 봤을 때 GAA 구조에서 SiGe는 홀연히 사라지지만요. GAA를 만드는 과정에서 위대한 조연 역할을 합니다. 특히 SiGe 증착막을 위 쪽으로 성장시켜서 만든다는 측면에서 보면, 실리콘과 저마늄 두 소재의 원자 간격(격자상수·lattice parameter)이 상당히 유사해서 케미가 찰떡궁합이라고 합니다. 당분간은 대체재를 찾기 힘들다는 견해도 있었습니다. GAA 공정용 SiGe에서 실리콘과 저마늄의 구성 보면 약 8대 2 수준으로 저마늄 비율이 크게 높지는 않지만 중요한 건 대체재가 많지 않고 필수 요소라는 겁니다.

◇메모리 커패시터를 지키는 ‘방패’ 역할

길쭉길쭉한 커패시터의 상부전극을 보호하는 SiGe 층. ‘셀 플레이트’라고도 부릅니다. 오른쪽 ‘메탈 컨택’ 배선을 뚫을 때 커패시터의 상부전극(TiN) 층에 균열이 갈 수 있어 SiGe 층을 꽤 두껍게 덮습니다. 자료=킬로패스

D램에서도 SiGe는 중요합니다. 트랜지스터를 거친 전하 알갱이들을 저장해놓는 커패시터를 보호하는 방패 역할을 훌륭하게 하거든요. 이른 바 '셀 플레이트(cell plate)' 입니다.

커패시터 가장 위쪽에 전하를 끌어당기는 '상부전극' 역할로 질화티타늄(TiN·티타늄 나이트라이드)이라는 소재를 쌓고요. 이 위에 SiGe를 두껍게 증착합니다. 상부전극(TiN)을 20나노미터 두께로 쌓는다면 보통 SiGe는 300~500나노 두께로 쌓아올린다고 해요.

SiGe 층은 커패시터 위에서 금속 배선을 놓기 위해 구멍을 뚫는 '컨택' 공정에서 얇고 유약한 상부전극 층이 깨질 것에 대비해 놓는 방패 역할입니다. 이 방패는 원래 '폴리실리콘'이라는 물질로 만들었는데요. SiGe를 증착 할 때 쓰이는 열이 폴리실리콘 대비 훨씬 적게 쓰여서(heat budget이 더 낮아요) 공정 중에 D램 커패시터의 여러 특성을 망가뜨릴 가능성이 훨씬 낮다고 합니다. SiGe 셀 플레이트는 20나노급 D램부터 꾸준히 쓰이고 있고, 지금까지도 D램 공정에서 상당히 중요한 물질로 분류됩니다. 셀 플레이트를 구성하는 SiGe에서 저마늄의 비율은 꽤 높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이 공정에서 SiGe를 증착하는 장비는 우리나라 장비 업체 유진테크(084370)가 세계적으로 상당히 잘한다고 합니다.

트랜지스터 속에 파묻혀서 전하의 속도 향상에 도움을 주는 임베디드(e) SiGe. 사진=구글

또 하나 재밌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트랜지스터(PMOSFET)의 중요한 구성 요소인 ‘소스’와 ‘드레인’을 SiGe로 만들기도 합니다. 저마늄은 실리콘보다 원자 알갱이의 덩치가 커서요. SiGe로 만든 소스와 드레인은 양쪽에서 실리콘으로 된 전하 이동 통로인 '채널'을 눌러서 압박합니다. 이건 마치 물이 흐르는 호스를 슬쩍 막으면 호스 안쪽 물이 더 빠르게 흘러가는 것과 비슷한데요. 이렇게 압박을 하면 트랜지스터, 특히 채널 내 정공() 이동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습니다. 소스와 드레인은 트랜지스터 자리에 실리콘을 파내고 이 자리에 SiGe를 묻어버리는 개념이기 때문에 이걸 임베디드 SiGe(eSiGe)라고도 합니다. 한마디로 칩의 빠른 연산을 도울 수 있는 소재란 거죠.

반도체 업계에서의 게르마늄 효능 어떠신가요. 쓰임새가 다양하고 중요하죠? 그럼에도 중국 규제 이후 지금까지 국내 반도체 업계에 큰 사달이 나지 이유를 취재해봤더니, 중국이 SiGe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소재를 규제 대상에 포함하고 있지 않아서라고 합니다.

통상 반도체 업계에서는 SiGe를 실레인(SiH₄)과 저마늄의 가공품인 저메인(GeH₄)을 결합해 만드는데요. 이 GeH₄는 규제 대상이 아니고, GeH₄의 원료인 이산화게르마늄(GeO₂)은 중국 규제 품목에 포함돼 있긴 하지만 북미 지역에 대체 공급망이 잘 형성돼 있어 수급이나 가격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게 중론입니다. 참고로 GeH₄는 프랑스 소재 회사 에어리퀴드의 한국 거점에서도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또다른 규제 품목인 갈륨은 반도체 공정에서 아주 큰 영향력이 있는 소재는 아닌 것으로 보여지는데요. 갈륨은 차세대 반도체 소재로 각광받습니다. 최근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가 2025년부터 질화갈륨(GaN) 기반 전력반도체 생산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발표했죠. TSMC도 비교적 최근인 2020년 GaN 전력 반도체 생산 서비스를 시작한 바 있는데요.

GaN 반도체의 경우 아직 시장이 완전하게 개화돼 있지 않아 공급량이 미미하지만 훗날 시장이 확대된다면 중국의 원료 공급망 영향력이 커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발광다이오드(LED) 소자 분야에서 갈륨 공급이 문제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대표 LED 소자 제조 업체인 서울반도체(046890)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는데요. 하지만 이 회사는 최근 열린 콘퍼런스콜을 통해 “회사가 제조에 주로 쓰는 트리메탈 갈륨은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고 이 소재 재고도 1년치를 확보했다”고 밝히며 우려를 불식 시켰습니다.

◇당장 차질을 주지 않는 게르마늄 규제···도대체 무슨 꿍꿍이일까

중국의 산업별 소재 규제. 서울경제 DB

그러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도대체 왜 중국은 당장 반도체 업계에 큰 영향은 없을 소재 규제를 시작한 걸까에 대한 생각을 해봐야 하는데요. 중국의 '잽' 펀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원료에 강한 우리는 이런 카드로 3나노까지 찌를 수 있다"는 것을 서서히 보여준 뒤 조금씩 강도를 올려나가며 핵심 원료 규제를 꺼내들지 않겠느냐는 업계 분석도 나옵니다.

또한 GaN 전력 반도체의 경우 첨단 공정이 막혀버린 중국에서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죠. 본격적으로 시장이 커지기 전에 선제적인 수출 규제로 글로벌 공급망을 막아 놓고 우위를 점하려는 전략도 엿보입니다.

중국은 갈륨과 저마늄 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원료를 풍부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은 반도체 식각 장비를 세정할 때 쓰이는 헬륨의 중요한 공급원이기도 하고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노광 장비 필수 소재였던 네온가스 가격이 폭등했을 당시 몇 안되는 대안 역시 중국 업체들이었습니다.

언젠가 중국이 날릴 야심찬 ‘카운터 펀치’에 대비해 섬세한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체크를 게을리 해서는 안될 이 때. 2019년 일본 정부가 극자외선(EUV) 포토레지스트, 불화수소, 불화폴리이미드 단 3개의 소재로 한국 반도체 업계를 한 순간 '패닉'으로 빠뜨렸던 시간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부터 또 시작될 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강해령 기자 h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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