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노벨상은 1901년 노벨상과 얼마나 달라졌을까 [세계엔]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매해 인류의 복지에 공헌한 사람이나 단체에게 수여하는 노벨상이 2일부터 수상자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화학상, 물리학상, 문학상, 평화상, 경제학상 등 6개 부문에 상이 주어지는데요. 1901년부터 시작한 노벨상은 세계가 주목하는 명예로운 상이지만 늘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도 함께 받아왔습니다.
■ 흔들리는 123년 노벨상 권위
노벨상은 후보자 추천부터 선정 과정, 수상자 통보까지 전 과정을 극비에 부치는데요. 123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수상자 명단이 사전에 유출되는 사태가 이번에 벌어졌습니다.
스웨덴 언론들은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가 화학상 수상자 3명의 수상자 명단이 담긴 보도자료 이메일을 공식 발표 4시간 전에 보냈다고 보도했습니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측은 초기엔 수상자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며 진화를 시도했지만 결국 유출된 명단이 그대로 수상자로 발표되면서 해명이 무색해졌습니다.
앞서 노벨재단은 퇴출된 대사들을 올해 시상식에 다시 부르겠다고 밝혀 이미 한차례 논란을 불렀는데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와 벨라루스, 자국 내 인권 탄압 문제가 불거진 이란 대사는 지난해에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시상식에 초청받지 못했습니다. 재단 측은 올해 '화합'을 이유로 들어 이들을 초청하겠다고 밝혔다가 이틀 만에 철회했습니다. 스스로 논란을 자초해 노벨상의 권위를 흔든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 수상자 100명 중 6명만 여성
노벨상이 가장 많이 받는 비판 가운데 하나는 여성 수상자가 턱없이 적다는 건데요. 아직 발표하지 않은 경제학상을 제외하고 올해 노벨상 여성 수상자는 3명입니다. 117번째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가운데 한 명인 안 륄리에 교수는 역대 다섯 번째 여성 물리학상 수상자가 됐습니다. 1903년 라듐과 폴로늄을 분리하는 데 성공한 마리 퀴리가 첫 여성 수상자인 걸 감안하면 물리학 부문에서 여성 수상자가 극히 적은 것은 사실입니다.
여성 과학자들이 그만큼 과학적 성과를 내지 못한 것 아니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겠지만 미국 언론들은 그렇지 않다고 반박합니다. 뉴욕타임스는 핵분열 이론을 정립한 '원자폭탄의 어머니' 리제 마이트너를 조명하며 "1953년 DNA의 이중 나선 구조 발견에 기여한 화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을 포함해 연구에 대한 정당한 공로를 인정받지 못한 과학계의 많은 여성 중 한 명"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리제 마이트너는 46번이나 노벨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000년 이후 여성 과학상 수상자의 수가 지난 세기 전체 수상자 수와 동일하다"고도 짚었는데요. 미국의 경우이긴 하지만 공학 및 과학 분야에서 여성 박사 학위자 비율이 2019년 38.5%로 증가했다며 "노벨상 수상자의 평균 연령을 생각하면 즉각적인 반영으로 이어지진 않겠지만 변화는 일어나는 중"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올해 여성 수상자가 3명 늘긴 했어도 여전히 전체 노벨상 수상자 999명(2023년 기준, 경제학상은 제외) 가운데 64명으로, 6%에 불과합니다.
■ 상 받기까지 평균 20년 이상 걸려
올해 생리의학상은 코로나19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백신 개발에 기여한 커리코 커털린 교수와 드루 와이스먼 교수에게 돌아갔습니다. 전 세계를 뒤흔든 전염병의 백신 개발 속도를 높인 두 교수의 수상은 당연하다는 평가가 많지만 의외라는 반응도 함께 나옵니다.
그간 노벨상이 수십 년 검증을 거친 연구성과에 주로 수여됐기 때문입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노벨 과학상(생리의학상, 화학상, 물리학상) 수상자 가운데 거의 절반이 노벨상을 받을 만한 발견을 한 뒤 상을 받기까지 20년 이상을 기다렸다"고 분석했습니다. 2019년 기준으로 가장 긴 '노벨 시차'는 화학상으로 지난 10년 동안 평균 30년이고, 생리의학상이 그나마 26년으로 가장 짧습니다. 이런 경향에도 불구하고 생리의학상 수상자들은 2005년 발표 이후 비교적 빠르게 그 연구 성과를 인정받은 겁니다.
이번 수상이 관행을 깨기 시작한 신호탄일지, 이례적인 경우인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노벨 시차'가 점점 길어지면 노벨위원회의 사후 수상 금지 규칙 때문에 저명한 과학자들이 수상을 놓칠 수 있다는 학계의 지적은 타당해 보입니다.
■ 1901년 노벨상에서 2023년 노벨상으로 진화하려면
학계에서는 현재 세 부문으로 돼 있는 노벨상 과학 분야를 다변화해야 한다는 주장부터 나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저명한 천문학자 마틴 리스를 인용했는데요. 그는 노벨상이 환경 과학과 컴퓨팅, 로봇공학, 인공지능은 다루지 않는다며 "노벨상의 명성을 감안할 때 '이런 배제는 어떤 과학이 중요한 지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왜곡한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협업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과학 분야의 특성상 공동수상자 수도 현재 최대 3명에서 더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사후에는 수상하지 못하거나 취소하지 못한다는 규정도 고칠 필요가 있습니다. 시대적 편견으로 인해 상을 받지 못한 경우가 있는지 재검토하고, 반대로 당시 과학적 성과로 인정됐던 발견이 위험한 것으로 판명나면 취소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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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효진 기자 (he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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