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우의 금메달 잉태한 한국 오락실, 다 어디 갔을까
최우영 기자 2023. 10. 7. 08:00
[게임인마켓]
PC 대중화 바람에 아케이드게임 생태계 붕괴
킬러콘텐츠 부재에 더해 바다이야기 사태까지 덮쳐
되살아나려면 점수보상형 게임 도입 등 규제완화와 투자 유치 필요
PC 대중화 바람에 아케이드게임 생태계 붕괴
킬러콘텐츠 부재에 더해 바다이야기 사태까지 덮쳐
되살아나려면 점수보상형 게임 도입 등 규제완화와 투자 유치 필요
[편집자주] 남녀노소 즐기는 게임, 이를 지탱하는 국내외 시장환경과 뒷이야기들을 다룹니다.
스트리트파이터5 종목에서 아시안게임 첫 e스포츠 금메달을 대한민국에 선사한 김관우 선수. 자신의 끈기를 만들어준 것은 동네 오락실이었다. 콤보 기술이 들어갈 때 옆자리 '형들'이 옆구리를 아무리 때려도 조이스틱을 놓지 않으면서 악바리 근성을 키웠다는 것이다.
1990~2000년대 오락실의 추억을 놓지 않고 사는 이들이 많다. 스트리트파이터2와 같은 대전 격투 게임은 철권으로 명맥을 이었고, 1945 같은 슈팅 게임부터 DDR, 펌프처럼 몸을 움직이는 게임까지 다양한 레퍼토리가 우리를 맞이했다. 즐거움과 경쟁이 공존하던 흥미진진한 장소이면서 동시에, 학교와 사회에서는 청소년 탈선의 온상이라거나 학구열 저하의 원인으로 지목되며 기피대상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이들의 설렘과 우려가 공존하던 오락실이, 최근에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적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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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차부터 철권까지 '추억의 오락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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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1980년대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필두로 방구차, 너구리 등의 콘텐츠를 장착한 아케이드게임장(오락실)이 전국에 퍼지기 시작했다. '콤퓨타 오락실' '전자오락실' 등의 예스러운 이름을 지녔던 이 사업장들은 1990년대 스트리트파이터2가 국내에 진출하며 절정을 맞이했다. '킹오브파이터즈'로 명맥을 이어가던 대전 격투게임은 2000년대부터 '철권'으로 대세가 바뀌었다. 이후 DDR(댄스댄스레볼루션)과 펌프 등 댄스 게임부터 비트매니아와 EZ2DJ 같은 리듬 게임까지 오락실 한 켠을 차지하면서 오락실 시대를 이어갔다.
대전 격투가 유행하던 당시 오락실 풍경은 100원짜리 동전을 걸고 싸우는 '배틀 로얄'과도 같았다. 패자는 조용히 자리를 떠나거나, 다시 동전을 투입해 도전에 나섰고, 승자는 '이기기만 한다면' 100원으로 오랜 시간 즐거움을 느끼며 게임을 할 수 있었다. 오락실 주인들은 동전교환기에 동전을 채워넣느라 하루에도 수차례씩 게임기 안의 동전을 수거하는 게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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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 보급에 시들해진 오락실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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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실의 몰락을 가져온 것은 PC방이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광범위하게 퍼진 PC방은 오락실로 향하던 청소년, 대학생들의 발걸음을 돌려놨다. 2005년 전국에 1만5000여개가 넘던 오락실은 2021년 556개로 급감했다. 인형뽑기방과 성인게임장을 포함한 수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2021년 한국 게임 시장에서 아케이드게임의 비중은 1.3%에 불과하다.
아케이드게임 사업의 높은 기계값도 업주들의 이탈을 가속화했다. 기기 1대당 1000만원을 호가하고,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에도 수백만원씩 들어갔다. 인터넷만 연결되면 자유롭게 게임 업데이트를 할 수 있고, 하나의 컴퓨터로 다양한 게임을 할 수 있는 PC방과 경쟁이 될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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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용'으로 옮겨간 아케이드 게임장, 바다이야기로 침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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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업주들은 상대적으로 기기 설치비용이 저렴하고, 지속적 업데이트가 덜 한 성인용 게임장으로 업종을 전환하기 시작했다. 청소년과 학생 등의 신규 고객이 더 이상 몰리지 않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방이었다. 황금성과 바다이야기 같은 사행성 게임은 합법적 도박을 원하는 성인들의 발길을 붙잡았고, 이들이 갖다주는 막대한 돈은 성인오락실의 숨통을 트이게 했다.
하지만 이러한 게임들의 '도박성'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바다이야기에 돈을 탕진하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의 사례가 보도되기 시작했고, 문화체육관광부는 사행성 게임 전반에 철퇴를 내리기 시작했다. 성인용 사행성 게임을 노린 규제였지만 전반적인 아케이드게임 시장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신규 사업자는 나타나지 않고, 기존 업자들은 점포를 정리하면서 기기를 헐값에 내놔도 팔리지 않는 일이 다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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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의 결정적 한 방...오락실은 '고인물' 무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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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을 필두로 한 스마트폰 보급은 오락실에 거의 회생 불가능한 타격을 입혔다. 게임을 처음 접하는 이들이 PC보다도 모바일 게임을 더 선호하게 됐다. 2021년 기준 국내 게임 시장에서 모바일게임은 57.9%로 압도적 비중을 차지했다. 발길이 끊긴 오락실은 기존 게임의 정취를 잊지 못하는 이들, 고인물(게임 등 분야의 고수를 뜻하는 은어)만 모이는 장소로 전락했다.
이번 아시안게임 스트리트파이터5 금메달리스트 김관우 선수만 해도 1979년생이다. 김관우와 결승에서 맞붙은 대만 선수도 동갑이라고 하니, 아케이드게임의 '고인물화'는 한국만의 일도 아닌 듯하다.
그나마 고인물들이 모이는 국내 오락실은 '성지'로 불리며 아직 남아있는 한줌의 아케이드게이머들을 불러들였다. 업자들도 게임 가격을 100→200→500원으로 올리며 수익성 개선에 나섰다. 하지만 대세를 이길 수는 없었다. 전국 각지의 '성지'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2012년 2월 강남 조이플라자, 2020년 6월 노량진 정인게임장의 폐업은 많은 아케이드 게이머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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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실,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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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업계에서는 아케이드게임이 과거 '오락실' 그대로 살아나는 건 쉽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다만 '아케이드'(상점가의 아치형 통로)라는 말 그대로 상점가나 번화가에서 가족 친화형 여가공간으로 탈바꿈하고, 킬러콘텐츠를 장착할 경우 승산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최근 대형마트나 영화관 등에 설치된 아케이드게임들의 경우 가족이나 연인 단위로 즐기는 이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아케이드게임업계가 가진 또 하나의 숙원은 '점수보상형'이다. 점수보상은 아케이드게임에서 특정 점수 이상을 달성하면 경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일부 실내 낚시터에서 잡은 생선의 무게가 누적되면 경품을 지급하는 것과 유사하다. 하지만 아케이드게임의 점수보상제는 바다이야기 사태 당시 불법환전 등에 악용돼 2007년부터 법적으로 금지됐다. 다행히 2021년부터 규제샌드박스를 활용해 점수보상형 아케이드게임 시범사업의 발판이 마련된 바 있다.
다만 더 중요한 것은 바로 '킬러 콘텐츠'다. 이미 온라인 PC게임과 모바일게임에 익숙해진 이들을 아케이드게임장으로 돌려세울 수 있는 '한 방'이 필요하다. 최근 떠오르고 있는 VR(가상현실)게임은 아케이드게임 부흥의 열쇠로 여겨지기도 한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아케이드게임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투자를 활성화해 테스트환경을 조성해준다면 향후 아케이드게임의 수출경쟁력을 높이는 결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최우영 기자 you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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