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DL이앤씨, 싱가포르에 '세계 최대 항만' 짓다

싱가포르=정영희 2023. 10. 7.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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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 빛난 K-건설 : 싱가포르(2)] 현지 근로자 안전 교육에 최선

[편집자주]아시아 최고 선진도시로 불리는 싱가포르는 국내 건설업체들에 다양한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사회기반시설(SOC) 확충에 공을 들이는 싱가포르의 지하철과 항만 등 공공 인프라 건설시장에서 한국은 기술력과 특유의 근성으로 명성을 맹렬히 떨치고 있다. 미래 성장의 기회를 찾기 위해 해외 시장 개척에 힘쓰는 국내 건설업체들의 현장을 직접 찾아 이들의 노력과 성과를 조명했다.

DL이앤씨가 싱가포르 TTP1 현장에 직접 설치한 케이슨 제작장의 모습./사진제공=DL이앤씨
◆기사 게재 순서
(1) 싱가포르 발주처가 선택한 'K-건설'… SOC 기술의 숨은 비결
(2) [르포] DL이앤씨, 싱가포르에 '세계 최대 항만' 짓다
(3) [인터뷰] 전병호 DL이앤씨 TTP1 현장소장 "산 넘어 산 공사 도전 이어"
(4) [르포] 난구간도 '척척'… 철도 건설 명가 증명한 대우건설
(5) [인터뷰] "현장이 답이다" 김용희 대우건설 CR108 소장의 원칙
(6) [르포] GS건설, 싱가포르 최대 차량기지 준공 '눈앞'
(7) [인터뷰] 김주열 GS건설 T301 현장소장 "안전 중시 문화로 ESG 실천"

[싱가포르=정영희 기자] 해상 매립 공사는 투입하는 자재량이 비교적 많고 연약지반이나 침하 등의 문제 발생 가능성이 높아 고난이도 공종 중 하나로 꼽힌다. 우수한 기술력과 탄탄한 신뢰를 바탕으로 다수의 동아시아 국가에서 기반시설을 세운 DL이앤씨는 싱가포르의 차세대 무역 통로 조성에 눈에 띄는 성과를 보이고 있다.

DL이앤씨는 지난해 12월 세계 최대 항만을 조성하는 '투아스 터미널 프로젝트 1단계'(이하 'TTP1') 해상 매립공사를 준공했다. 수주 단계부터 친환경적이고 안전성을 가장 고려한 설계를 기반으로 발주처인 싱가포르 항만청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지난 9월5일 찾은 TTP1 현장은 발주처에 핸드오버(양도)돼 항만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규모가 커 한참 떨어진 곳에서 컨테이너를 실은 대형 선박이 항만에 접근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수십 개의 컨테이너들이 마치 벽처럼 보였다. 카메라 줌을 당기자 항만 아래 위치한 안벽 조성용 케이슨(토목 기초공사에서 수직벽을 조성하기 위해 설치한 철근 콘크리트 상자)이 눈에 띄었다.
DL이앤씨 싱가포르 TTP1 현장 전경. 현재는 발주처인 항만청에 핸드오버(인수)돼 항만으로 운영 중이다./사진제공=DL이앤씨


'블루오션' 싱가포르 발주처 사로잡은 매력


2040년 프로젝트 종료가 예정된 투아스 터미널은 연간 6500만TEU(20피트 컨테이너 1대)의 물동량 처리가 가능한 초대형 신항만으로 거듭난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곳에 기존 항만시설과 기능을 이전하고 무인 자동화 운영 체계를 비롯한 다양한 차세대 항만 기술을 도입해 세계 최고 수준의 스마트 메가포트(Mega Port)를 조성하는 계획을 세웠다.

DL이앤씨가 공사계약을 처음 체결한 건 2015년 2월. 벨기에 준설전문회사 드레징 인터내셔널(Dreging International)과 공동으로 조인트벤처(JV)를 구성, DL이앤씨는 매립지 지반 개량과 케이슨 제작·설치를 포함한 부두시설물 시공을 담당했다.

싱가포르는 건설시장이 개방돼 글로벌 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TTP1 현장도 마찬가지. 전병호 TTP1 현장소장은 "최초 입찰 당시 기본설계를 준수하는 원안 입찰과 건설업체의 경험과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개선된 설계를 제시하는 대안 입찰이 포함돼, DL이앤씨가 원안 심사에서 점수가 낮았지만 대안에서 경쟁사가 약한 탓에 이례적으로 재입찰이 공지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2주 동안 밤낮으로 개선안을 고민했고 친환경과 공정 단축 계획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수주에 성공했다"고 덧붙였다. 전 소장은 "재입찰일이 한국의 광복절이었는데 그날 저녁 수주 소식을 듣고 직원들이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고 회상했다.
싱가포르 TTP1 현장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모래나 암석을 쌓아둔 부지가 여럿 보인다. 자재 수급이 어려울 때를 대비해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물량이다./싱가포르=정영희 기자
TTP1은 여의도 1.5배 규모인 해상 매립 작업이 포함돼 대량의 사석과 모래를 필요로 했다. 연약한 준설토로 매립된 지역에 별도의 지반 개량 없이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기에 해저에 대형 사석 등을 배치해 침하 가능성을 줄였다.

싱가포르는 제한된 국토로 인해 사석, 모래와 같이 매립에 필요한 자재를 자체 조달할 수 없는 국가다. 인근에 위치한 나라로부터 수입해야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지속해서 모래 채취의 환경 파괴를 주장해온 유엔(UN) 권고에 따라 모래 수출이 금지된 곳이 더러 있다. 말레이시아 등의 국가는 싱가포르 영토 확장을 경계하려는 목적으로 모래 금수 조치에도 나섰다. 더 먼 나라로 모래를 찾아 나서야 해 프로젝트 예산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DL이앤씨는 수주 비결로 사석과 모래 사용을 최소화한 친환경 설계를 꼽았다. 사석을 콘크리트 구조물로 대체하는 공법을 통해 80만㎥ 대형 사석의 사용을 절감했다. 기존 준설토 매립고를 높여 모래 사용량을 줄인 대신 매립 토사를 해수면 위로 쌓아올렸다.

모래를 구하는 과정에 우여곡절도 많았다. 공사 기간이 10개월이나 지연됐다. 장비나 인력이 있어도 모래가 없으니 공정에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전 소장은 "직원들 모두가 모래 매입을 위해 발로 뛰었지만 쉽지 않았다"며 "결국 발주처가 모래를 지급 자재로 변환하게끔 설득했다"고 설명했다.
싱가포르 TTP1 현장 공사 당시 모습. 항만 주변으로 DL이앤씨가 제작한 케이슨이 배열돼 있다./사진제공=DL이앤씨


공기 연장 아닌 단축… '공장형 시스템' 마련


TTP1 현장은 케이슨 제작 공정을 36개월에서 29개월로 7개월 단축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성과를 냈다. 케이슨은 컨테이너나 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수직을 조성하기 위해 제작하는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길이 40m, 폭 35m에 높이 28m로 10층 아파트 1개 동과 맞먹는 규모다. 컨테이너 선박이 컨테이너를 싣거나 내리기 위해 배를 댈 때의 접안 공간이 된다. 초대형 선박이 접안하는 안벽 전면에 설치되는 만큼 견고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육상에서 케이슨을 제작하고 특수 장비를 이용해 해상으로 이동시킨 다음 예인선을 통해 정확한 설치 장소로 이동하는 전략을 썼다. 제작 공정을 세분화하고 철저한 공정관리에 나선 것이 공기를 줄이는 데 한몫했단 평가다. 케이슨 제작은 동일 공정을 반복하는 과정으로 균일한 길이와 모양의 철근, 그리고 콘크리트 벽체를 필요로 한다.

케이슨 작업에 앞서 현장 인근 대규모 겐트리 크레인(무거운 물건을 올려 이동시키는 장비) 타워와 운송 컨베이어(PCCV)를 설치했다. 케이슨 함수가 적으면 거푸집을 활용해 콘크리트 벽체를 하나씩 만들 수 있다. 이 현장에선 찍어내야 할 케이슨이 200여개 이상이었기에 초기 투자 비용이 들더라도 구체적인 제작 시스템을 사전에 마련해두는 것이 더 효율적이란 판단이었다.
제작장에서 만들어진 케이슨은 특수제작된 선박으로 운반돼 해상에 거치된다./사진제공=DL이앤씨
전 소장은 "모든 공정에 계측기를 설치해 실시간 모니터링을 하며 안정성을 유지했고 생산성도 향상시켰다"면서 "철근 절단과 조립을 위해 로봇을 도입함으로써 높은 작업 효율성과 품질을 달성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사실 케이슨 제작 작업은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한국인과 외국인 노동자의 협력과 유대감 또한 필수였다"고 말했다.

1000여명에 달하는 현장 근로자끼리 손발을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프로젝트 경험이 풍부한 한국인 반장을 불러모아 케이슨 제작이 처음인 외국인 노동자의 교육을 담당하도록 했다. 근로자 동기부여를 목표로 팀 빌딩(Team Building)과 의사소통을 촉진하는 활동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싱가포르=정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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