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 NOW] "이곳이 고향인 천위페이, 더 부담 느낄 것" 안세영 출사표…29년 만 2관왕 도전
[스포티비뉴스=항저우(중국), 김건일 기자] 1996년 방수현 이후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여자 단식 세계 랭킹 1위에 올라 있는 안세영(21, 삼성생명)에게 천위페이(중국)는 잊을 수 없는 이름이다.
배드민턴 천재로 각광받으며 태극마크를 단 지 1년도 안 돼 2018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 나선 안세영은 첫 경기부터 낙마, 눈물을 흘렸다.
이때 안세영을 상대했던 선수가 천위페이다. 안세영은 첫 대결 이후 2019년 태국 오픈에 이어 2020년 도쿄 올림픽까지 4경기를 내리 졌다. 도쿄 올림픽에서 천위페이는 안세영을 꺾은 기세를 이어나가 여자 단식 금메달까지 목에 걸었다.
하지만 천위페이라는 '벽'은 안세영을 성장시켰다. 절치부심하고 훈련에 매진한 안세영은 2022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마스터즈 대회에서 천위페이를 2-0으로 무너뜨렸다. 6경기 만에 첫 승을 거둔 순간이었다. 이후 안세영에게 천위페이는 더이상 벽이 아니었다. 첫 승을 거둔 뒤 천위페이와 2승씩 주고받았던 안세영은 지난 7월 여수에서 열린 코리아오픈 준결승전에서 천위페이를 따돌리고 결승에 올라 우승까지 거머쥐더니, 한 달 뒤 세계 1위 타이틀을 달고 나선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천위페이를 다시 준결승전에서 2-0으로 떨어뜨리고 우승 트로피까지 들어올렸다. 통산 전적은 5승 7패로 아직 열세이지만 최근 5경기에선 4승 1패, 2연승으로 절대 우위다.
안세영은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출전을 위해 비행기에 오르기 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이 지금의 날 만들었다. 항저우에서는 최고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강력한 우승 후보로 평가받는 안세영은 4강전에서 중국의 허빙자오를 꺾고 한국 선수로는 1994년 일본 히로시마 대회 방수현 이후 29년 만에 여자 단식 결승전에 진출했다. 여자 단식 금메달 역시 29년 전 방수현이 마지막. 안세영은 여자 단체전에서도 금메달을 따냈는데, 29년 전 방수현 또한 여자 단식과 단체전에서 2관왕 했다.
공교롭게도 안세영을 막아 세울 상대가 다시 천위페이다. 안세영이 경기를 치르고 몇 시간 뒤 같은 장소에서 천위페이는 일본의 아야 오호리를 2-0으로 따돌리고 결승 대진에 이름을 올렸다.
개인 첫 우승을 노리는 안세영만큼이나 천위페이에게도 이번 결승전은 동기부여가 가득하다. 천위페이는 올림픽 금메달은 있지만 아시안게임에선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은메달이 최고 성적이다. 이번 대회 단체전에서도 안세영을 만나 세트를 내주고 은메달에 머물렀다. 은메달이 최고 성적인 세계선수권을 더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기 위해선 이번 대회 금메달이 필수다.
게다가 이번 대회가 열리는 항저우는 천위페이의 고향이다. 중국 선수들을 향해 "짜요"를 외쳤던 중국 관중들은 천위페이를 향해선 더욱 목청 높여 응원을 보냈다. 천위페이로선 안세영과 결승전에 든든한 지원군이다.
하지만 일방적인 응원에 맞서야 하는 안세영은 다른 생각. 부담이 될 것 같다는 물음에 고개 저으며 "오히려 천위페이가 더 부담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이기고 싶은 욕심이 많이 생각지 않을까 싶다"고 자신했다.
안세영은 8강전을 앞두고 "자카르타 때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경기만 뛰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면 이제는 실패를 거듭하면서 단단해진 안세영으로 돌아오지 않았나 싶다. 그런 경험들을 통해 제가 이렇게 잘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안세영이 성장했다는 증거는 경기를 풀어가는 자세에서도 엿볼 수 있다. 빽빽한 일정 탓에 지칠 법하지만 이날 경기에서 안세영은 웃음기를 잃지 않았다. 경기가 끝난 뒤엔 '세리머니 부자'답게 어퍼컷하고 시원한 포효까지 했다. 안세영은 "경기 전 코치님께서 즐기자고, 재미있게 하고 오자고 말씀하셨고 정말 신나게 재미있게 잘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아시아 제패와 함께 29년 만에 한국 배드민턴 새 역사 작성을 눈앞에 둔 안세영은 "(금메달을) 많이 원한다. 기대도 된다. 하지만 늘 말했듯이 하루하루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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