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아시아 최고 선진도시로 불리는 싱가포르는 국내 건설업체들에 다양한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사회기반시설(SOC) 확충에 공을 들이는 싱가포르의 지하철과 항만 등 공공 인프라 건설시장에서 한국은 기술력과 특유의 근성으로 명성을 맹렬히 떨치고 있다. 미래 성장의 기회를 찾기 위해 해외 시장 개척에 힘쓰는 국내 건설업체들의 현장을 직접 찾아 이들의 노력과 성과를 조명했다.
◆기사 게재 순서 (1) 싱가포르 발주처가 선택한 'K-건설'… SOC 기술의 숨은 비결 (2) [르포] DL이앤씨, 싱가포르에 '세계 최대 항만' 짓다
(3) [인터뷰] 전병호 DL이앤씨 TTP1 현장소장 "산 넘어 산 공사 도전 이어"
(4) [르포] 난구간도 '척척'… 철도 건설 명가 증명한 대우건설
(5) [인터뷰] "현장이 답이다" 김용희 대우건설 CR108 소장의 원칙
(6) [르포] GS건설, 싱가포르 최대 차량기지 준공 '눈앞'
(7) [인터뷰] 김주열 GS건설 T301 현장소장 "안전 중시 문화로 ESG 실천"
[싱가포르=정영희 기자] 싱가포르 건설시장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치밀함'이다. 도시국가답게 정교하면서 상세한 도시계획을 수립하고 그 안에는 우수한 인프라를 비롯해 다양한 시민 편의정책을 품고 있다. 싱가포르 국토 면적은 725.7㎢로 서울의 1.2배 정도다. 이 좁은 땅을 세계적인 국가로 만든 비결은 무엇일까. 싱가포르 정부는 도시의 혼잡함을 줄이고 심미성은 늘리고자 중·장기적 도시개발정책을 펼쳤고 이는 경쟁력이 됐다. 도시재생이란 5~10년 안에 뚝딱 이뤄지는 것은 아니기에 강력한 정치적 기반이 힘을 보탰다.
싱가포르 도시재개발청(URA)은 '살고 일하고 놀기 좋은' 국가를 만들기 위해 1970년대 토지이용에 관한 계획을 본격 수립하기 시작했다. 크게는 인구 변화 및 경제성장에 대비해 향후 40~50년의 비전을 제시하는 '콘셉트 플랜'(Concept Plan)과 함께 10~15년 중기 계획의 실현 가능한 법정 토지이용계획 '마스터 플랜'(Master Plan)으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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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 대한 신뢰로 강력한 도시정책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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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의 관광지로 잘 알려진 클라크 키 강가나 한국건설업체가 설계·시공을 맡아 세계적인 건축물이 된 '마리나 베이 샌즈'는 주요 마스터 플랜의 결과다. 현재 도심업무지구로 더 많이 알려졌으나 종전엔 주요 무역 거점이던 탄종파가와 2000년대 자동화 고효율 항만으로 이름을 알린 파시르 판장의 항구 역할을 2040년까지 투아스 항만 터미널로 재배치하는 계획 등이 활발히 수행되고 있다.
다소 강제적으로 보일 수 있는 정부의 이 같은 도시계획을 국민들이 불만 없이 받아들인 데에는 정부에 대한 높은 신뢰가 있다. 이철웅 고려대 산업경영공학부 교수는 "싱가포르 정부정책의 궁극적인 목표는 국민의 경제 수준을 높이는 것"이라며 "싱가포르 국민뿐 아니라 노조도 오랜 경험을 통해 쌓은 정부와의 협력관계를 바탕으로 개발계획을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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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발주처 꽉 잡은 한국 기업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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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개발청은 한국의 국토교통부와 비슷한 기능을 수행한다. 다만 도시개발만을 중점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따라서 도시계획 수립과 시행을 위해 타 정부기관과 자주 협업한다. 지하철과 고속도로 건설을 담당하는 육상교통청, 해양항만청 등이다.
한국건설업체는 싱가포르 건설시장 전반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데 싱가포르의 정부 발주처가 한국 기업을 특별히 환영하는 분야는 인프라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8월 말까지 한국건설기업들이 싱가포르에서 수주한 금액은 총 3억3020만달러다. 전체 누적 기준으론 모두 77개 업체가 405개 프로젝트에서 470억5912만달러를 수주고를 올렸다. 이는 한국건설업체들이 해외에서 수주한 총 공사금액의 4.94%에 달하는 것으로, 싱가포르의 발주 규모를 감안할 때 매우 높은 실적이다.
육상교통청은 2019년 '랜드 트랜스포트 마스터 플랜 2040'을 발표해 어디에서도 45분 내 닿을 수 있는 도시, 20분 내 도착 가능한 마을을 만든다는 목표를 세웠다. 2030년까지 지하철 노선을 기존 190㎞에서 360㎞로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대우건설은 지난해 11월 톰슨이스트라인 T216 공사를 준공했다. 현재 주롱리전라인 J109 공구와 크로스아일랜드라인 CR108 공구의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2021년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크로스아일랜드라인 CR112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공사금액은 약 5000억원이다.
GS건설은 2020년 철도종합시험선로 ITTC(Integrated Train Testing Centre) 프로젝트 시공사로 선정됐다. 차량, 신호, 통신 등을 사용 전 테스트할 수 있는 철도종합시험센터를 짓는다. 2021년 롯데건설은 약 1200억원의 공사비가 드는 J121 통합교통허브 프로젝트를 손에 쥐며 싱가포르 건설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오피스와 상업시설, 버스 환승센터 등을 포함해 27층 건물 1개동과 스카이브리지 등이 건설될 예정이다.
지상 표면의 과밀화를 방지하고 살기 좋은 도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지하도로 시스템 구축에도 한국건설업체가 앞장서고 있다. GS건설은 2018년 약 5240억원의 남북 지하고속도로 N101 구간 공사를 단독 수주했다. 싱가포르 최초의 복층형 지하고속도로 남북고속도로 N106 구간과 총 21.5㎞의 N102 구간도 한국 기업이 수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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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준수' 싱가포르 건설시장의 최고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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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완전 자동화 항만을 표방하는 투아스 항만 건설현장에도 한국건설업체가 진출해 있다. DL이앤씨는 지난해 투아스 핑거 2구간에서 1단계 해상 매립공사를 준공했다. 핑거 3구간은 현재 현대건설이 맡아 짓고 있다.
싱가포르 내 한국건설업체의 위상은 지난 수상 경력이 입증한다. 현대건설은 2021년 싱가포르 '산업안전보건 어워드'(WSH Awards)에서 안전보건 관리부문 최상의 실적을 인정받아 4관왕을 수상했다. 2018년 GS건설은 육상교통청이 주관한 '안전경진대회'(Annual Safety Award Convention)에서 3개 부문의 상을 휩쓸어 최다 부문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싱가포르 건설시장은 무엇보다 안전을 중요시하는 곳"이라며 "한국건설업체가 싱가포르 발주처의 니즈 파악과 충족에 매우 기민하게 대처해 탄탄한 신뢰관계를 쌓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용광 해외건설협회 글로벌사업본부 아시아-미주실장은 "한국 건설업의 속도와 효율성을 기반으로 세계 각국의 현장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며 "한국은 글로벌 파트너로서 다양한 인프라 공사를 성공시킨 만큼 싱가포르가 세운 다양한 개발계획에 맞춰 지난 50년 동안 쌓은 실력의 성과를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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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 도시국가 싱가포르, ESG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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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정부는 앞으로의 개발계획에서 친환경과 자동화를 보다 강조할 전망이다. 건물의 80%를 녹색으로 전환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싱가포르는 2005년부터 건물의 환경 영향과 성능을 평가하는 그린 마크 인증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인증을 획득하게 되면 건설청으로부터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 그린 마크 기준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최소 에너지 효율 수준과 탄소 감축률 기준이 상향 조정되는 추세다.
이재홍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코리아 상무는 "싱가포르의 ESG(환경·사회·기업 지배구조) 경영 준수에 대한 인식이 어느 나라보다 강하다"며 "건물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데 필요한 분야별 품질관리와 개선 활동을 한 업체에 일괄로 맡겨 친환경 운영을 보다 효율적으로 가능케 하는 포함시설관리 통합서비스(IFM) 도입이 활발한 추세"라고 말했다.
최선미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싱가포르무역관은 "최신 건축과 엔지니어링, 건설운영 기술에서 고도로 숙련된 인력을 창출함으로써 건설산업을 변혁하려는 싱가포르의 노력이 강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싱가포르=정영희 <저작권자 ⓒ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의 경제 뉴스'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