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푸라기]교통사고 '나이롱환자' 줄지 않는 이유
'사고정보·인력 부족한 심평원 "제 역할 못해"
"어이구 목이야~" 교통사고 때 목덜미부터 부여잡고 나서는 피해자 본 적 있으신가요? 막히는 도로에서 뒤차 범퍼가 앞차에 아주 살짝 닿은 접촉사고인데 말이죠. 저는 올해 이런 일도 겪었습니다. 사고 때는 차만 고치면 된다더니 과실비율 산정 때 불만이 생기자 몇 달씩 치료를 받다가 수백만원의 합의금을 챙겨간 경우죠.
자동차 사고 때 '대인' 보장에 따라 지급되는 보험금 진료비 규모가 매년 증가하고 있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자동차보험 대인 배상 1인당 진료비는 2014년 73만원에서 2022년 약 112만원으로 54.8%나 늘었죠.
다 합쳐보면 그 규모나 증가 속도가 엄청납니다. 총진료비는 2014년 1조4235억원에서 작년 2조5142억원으로 76.6% 늘었거든요. 병원이 교통사고를 통해 이만한 매출과 성장세를 보인다는 의미죠. 의료산업도 경제활동임을 감안하면 이만한 '알짜 사업'이 없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중상환자(1~11등급) 부상보험금은 거의 늘지 않았는데요. 경상환자(12~14등급)의 보험금은 크게 늘었다는 거죠.
또 양방(의과) 진료비는 감소 추이라는데, 첩약 약·침술 등 비급여 비중이 높은 한방 진료비만 확 늘었다는 겁니다. 심평원 집계 자료에서 양방 진료비는 2018년 1조2542억원에서 2022년 1조439억원으로 줄었는데요. 한방 진료비는 7139억원에서 1조4636억원으로 증가했거든요.
보험개발원 자료로는 경상환자의 진료비만 따로 확인할 수 있는데요. 양방 진료비는 2018년 3613억원에서 2022년 2644억원으로 크게 줄었고요. 한방 진료비는 4938억원에서 1조479억원으로 배 넘게 늘어났습니다. 한방 진료비에서 경상환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80.8%(2022년)나 된다고 하고요.
한의업계는 이런 현상이 "다양한 한방 진료에 대한 환자의 높은 만족도와 선호도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보험업계는 이런 한의업계에 불만이 많죠. 교통사고 피해자를 볼모 삼은 과잉 의료행위로 '보험금 타 먹는 하마'가 되고 있다는 시각입니다.
보험업계는 의료기관과 환자의 도덕적 해이가 문제라고 보고 있습니다. 사실 저도 친지의 사고로 '교통사고 전문 한의원'이라는 곳을 갔을 때 목격한 게 있는데요. 그곳 안내문에는 '피해자의 권리'를 강조하며 치료 비용과 합의금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자세히 써놨더라고요.
보험업계는 한의원 및 한방병원 과잉의료의 대표적인 방식으로 '세트 청구'를 듭니다. 세트 청구는 △침술 △구술(뜸) △부항 △한방물리(견인 등) △첩약 △약침 △추나요법 △온냉경락 등 다수의 처치(진료)가 하루(1회) 내원 환자에게 동시에 시행되는 것을 뜻하죠.
보험연구원이 첩약 포함 6개 이상의 진료가 함께 이뤄진 것을 '세트 청구'로 정의해 집계를 했다는데요. 작년 12~14급 경상환자 기준으로 세트 청구 비율은 한의원이 73.1%, 한방병원이 82.4%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1회 세트 청구 진료비는 한의원은 9만6325원, 9만9851원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 돈은 환자가 아니라 보험사가 내는 돈이죠.
사실 과거에는 과잉의료가 이렇게까지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2013년 6월까지는 보험사가 직접 과잉·장기치료 환자관리를 위해 의료기관을 찾아다니는 현장심사를 해서죠. 보험사 직원이 의사를 면담하고 환자의 치료경과도 확인했던 거죠.
하지만 이런 보험사의 심사강화가 피해자를 불편하게 하고 치료를 방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죠. 또 심사기준이 제각각이라거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문제도 거론됐고요. 의료기관과 보험사 간 진료비 분쟁빈도도 잦았다고 해요.
그래서 2013년 7월부터는 심평원이 자동차보험 진료수가 심사를 일원화해 맡게 됐는데요. 사고가 나서 환자가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으면, 의료기관이 심평원에 진료비를 청구하고, 심평원이 진료수가 심사 이후 그 결과를 의료기관과 보험사에 통보한 뒤, 보험사가 진료비를 지급하는 구조가 된 거죠.
문제는 심평원이 충분히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심평원은 대부분 의료정보 중심의 '서면'으로 심사하고요. 1인당 월별 2만건 가까운 심사를 수행해야 해 적극적인 현장조사가 어려운 게 한계라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경상임에도 비싼 진료를 오래 받는 '나이롱환자'가 늘어나는 것을 막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과거에는 보험사 보상 실무 직원이 사고정보 등을 의료기관에 전달했는데, 지금은 진료단계에서 사고정보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실무상 절차도 없답니다.
과잉의료로 인한 보험금이나 이와 연결된 합의금으로 인한 보험 누수는 결국 보험료의 인상이나 보험사의 부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익을 챙기려는 소수 때문에 선량한 다수의 가입자가 피해를 보게 될 수 있죠.
이를 개선하기 위해 국회입법조사처가 최근 제언을 내놨습니다. 그중 아주 간단한 하나가 보험사와 심평원·의료기관 간 최소한의 교통사고 정보를 공유하자는 겁니다.
의료기관과 심평원이 보험사고 피해자의 사고경위, 경미사고 여부, 피해차량 사진 등 교통사고 정보를 알도록 하자는 건데요. 김영국 국회입법조사처 경제산업조사실 입법조사관은 "의료기관도 적정 수준의 치료를 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심평원도 의료기관의 부당청구 여부를 파악하기 용이하다"고 설명합니다.
당연히 보험업계는 이런 개선을 찬성하죠. 반면 의료업계는 '의료기관이 과잉의료기관으로 오인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 '심사와 관련된 분쟁이 증가할 수 있다'는 등의 논리로 반대하는 입장이랍니다.
'나이롱환자' 줄이기는 여러모로 쉽지 않은 듯합니다. 올해부터 경상 환자가 4주이상 치료할 땐 진단서 제출 등이 의무화되긴 했습니다. ▷관련기사: '나이롱환자' 막는다…교통사고 경상환자, 본인과실 부담(2021년 9월30일) 하지만 이를 회피하기 위해 뇌진탕(11등급) 디스크(요추 추간판탈출증, 9등급)등으로 우회 치료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람 마음이란 게 우습습니다. 가해자일 때와 피해자일 때를 각각 상정하면 입장도 그때그때 달라질 수 있거든요. 힘들게 치료받는 중이라면 금전적인 '생심'이 나기 쉽죠. 그래서 더더욱 제도 개선은 필요해 보입니다.
[보푸라기]는 알쏭달쏭 어려운 보험 용어나 보험 상품의 구조처럼 기사를 읽다가 보풀처럼 솟아오르는 궁금증 해소를 위해 마련한 코너입니다. 알아두면 쓸모 있을 궁금했던 보험의 이모저모를 쉽게 풀어드립니다. [편집자]
윤도진 (spoon504@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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