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학교가 무너진 사회, 교사는 ‘약자’가 될 수밖에 없다

오윤희 기자 2023. 10. 7.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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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초 교사의 사망 사건 이후 교사들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거리로 몰려나온 교사들은 “하루빨리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이런 일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숨진 서이초 교사의 49재를 겸해 지난 9월 4일 열린 여의도 집회에서 한 교사는 “(서이초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하는데, 그 표현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 “극단적 선택이 아니라, 선택의 여지가 없는 극단적 상황에 몰렸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를, 그리고 대한민국의 수많은 교사들을 극단적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을까. 혹자는 학부모들의 극성을 원인으로 꼽는다. 내 아이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착각과 부모의 이기주의가 교사들을 그저 학생들 수발이나 들어줘야 하는 서비스 노동자로 전락시켰다는 것이다. 한편 BBC 등 외신은 “이러한 사태는 학업 성공이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초경쟁적인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모두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교사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간 근본적인 원인은 공교육 붕괴에 있다. 공교육이 붕괴된 건 사실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대입을 위한 선행학습이 일반화되면서 학교는 서서히 교육의 기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한글과 구구단 정도는 이미 ‘당연’하게 깨친 아이들에게 기역 니은부터 가르쳐 주는 학교는 그저 국가가 정한 의무 교육 기간을 이수하기 위해 다녀야 하는 따분한 장소에 불과하다. 시험에 나올 법한 문제를 콕콕 집어주는 일타강사들에 열광하고 수능에 자주 출제되는 EBS 강의를 듣는 데 혈안이 된 수험생들에게도 학교는 만성적인 수면 부족을 보충하는 장소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학교의 기능이 지식 전달에만 있는 건 아니다. 학생들 품행을 바로잡아 올바른 사회 구성원으로 만드는 것 역시 학교, 그리고 교사가 담당해야 할 몫이다. 하지만 현재의 학교는 그런 기능을 담당할 수도 없다. 교사가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을 저지하다가는 아동학대범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폭력과 폭언을 휘두르는 학생들 앞에서도 그저 자기 보호 정도 하는 게 고작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 훈육’이라는 말은 허황된 꿈이나 마찬가지다.

학교가 이렇게 본연의 기능을 모두 상실하게 된 데는 정치권의 책임도 없지 않다. 1998년 당시 이해찬 교육부 장관은 교직원들을 상대로 촌지 근절 및 뇌물수수 단속을 대대적으로 실시했다. “우리 학교는 촌지를 받지 않습니다”라는 현수막을 자체적으로 교문에 내건 곳들이 나올 정도로 ‘개혁’의 열풍은 거셌다. 촌지 문화를 뿌리뽑겠다는 의도 자체야 비판할 수 없지만, 개혁은 결과적으로는 교사를 부패와 비리의 상징이자, ‘시정’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교단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데 한몫했다.

여기에 자칭 진보 교육감들이 경쟁적으로 도입한 ‘학생인권조례’는 교사들의 정당한 교육 활동을 학생들 인권을 침해하는 가혹 행위로 변질시켜 버렸다. 공교육 현장을 책임진 교사들은 행여나 자신의 행동이 아동학대로 몰릴까 봐 늘 전전긍긍해야 한다. 교사들 누구나가 잠재적 아동학대범인 학교에서 학생들이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길 기대하는 건 무리다.

본연의 기능을 상실한 학교에서 교사들은 허수아비일 수밖에 없다. 교육도, 훈육도 할 수 없는 교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학생부 기록뿐이다. 그러니 일개 ‘학생부 기록 관리자’인 교사에게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게 일생일대의 과업인 학부모들이 온갖 압력을 가하는 건 어찌 보면 예견된 일일 수도 있다. 학생들이 ‘약자’인 교사들을 만만하게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젊은 신임 교사의 죽음으로 교권 붕괴가 뒤늦게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나서야 지난달 ‘교권 보호 4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주요 골자는 학생 보호자가 교직원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교원의 정당한 교육 활동은 아동학대로 보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교사와 교권을 ‘보호’한다는 말 자체가 교사들이 무력하고, 지켜줘야 할 존재라는 걸 시인하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교사를 약자로 인정한 상태에서 내놓은 이런 여러 대책들은 그저 일시적인 미봉책이 될 수밖에 없다.

공교육이 힘을 잃어버린 곳에서 교사는 약자일 수밖에 없다. 교사가 ‘약자’로 남아 있는 한 서이초 교사의 비극 같은 일들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교사가 약자인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라 부를 수 없다. 학교의 붕괴로 발생한 이 사태를 급조한 법안 몇 개로 땜질할 게 아니라, 공교육 정상화라는 근본적 처방약을 내려야 한다. 학교가 살아야 교사가 산다.

오윤희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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