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의 요지’라는 강남의 역설…더 많이 모이고 더 막힌다[쏠림 사회 한국, 강남 리포트]
수도권 도시철도 9개 중 7개 경유
일터 있는 강남, 교통 체증만 가중
남동현씨(30·가명)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있는 정보기술(IT) 기업에서 인력 채용 및 개발 업무를 하고 있다. 성수동은 최근 카페와 맛집 등이 모인 명소로 떠오르면서 상권이 커졌고 기업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2030세대 젊은 트렌드 파악이 쉽고, 임대료도 강남에 비해 저렴해서다. 남씨는 “회사가 전에 있던 테헤란로보다 훨씬 쾌적하고 산책하기도 좋아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했다.
그럼에도 구인 경쟁에 나서야 하는 그는 고민이 많다. “제가 만나고 싶은 업계 사람, 개발자들의 활동 구역은 대부분 강남이에요. 차를 한잔하거나 회사 구경이라도 시켜주려면 일단 약속을 잡아야 하는데, 성수동에 있다고 하면 고개를 젓죠. 가볍게, 자연스럽게 만나 설득해야 하는데 여기선 그 기회를 만들기가 너무 힘들어요.”
성수에서 강남까지 대중교통으로 20분 정도 걸린다.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닌데도, ‘비강남’이라는 심리적 장벽이 높다. “다리 하나만 건너면 되는데 그걸 꺼리는 분위기가 생각보다 크더라고요. 강남, 역삼, 선릉처럼 걸어가서 쓱 만나고 오는 게 안 되니까요.” 회사를 강남 밖으로 옮기더라도 강남에서 멀어져선 안 되는, 딜레마인 셈이다.
강남 집중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일자리와 교통 인프라 집중이 서로 맞물려 계속 상승효과를 일으킨다는 점이다. 일자리가 몰릴수록 사람이 몰리고,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도심 대중교통은 물론 광역교통망까지 강남을 중심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교통망을 타고 사람이 더욱 몰린다.
서울시 지하철 25%가 강남에…퇴근길엔 ‘버스열차’
강남 지역 교통 인프라 집중은 계속 심화되고 있다.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서울에 개설된 전철과 지하철역 404개(중복) 가운데 강남3구가 포함된 동남권(강남·서초·송파·강동)에 위치한 것은 총 102개다. 자치구 한 곳당 25.5개로, 서울 전체 전철·지하철의 25%가 이 지역에 몰려 있다. 반면 양천·영등포·강서·동작·구로·관악·금천 등 7개 구가 포함된 서남권에는 93개, 자치구 한 곳당 13.3개인 것과 대비된다.
수도권 9개 도시철도 중 7개 노선이 강남 지역을 경유하고 수인분당선, 신분당선이 수도권 남부 지역을 강남과 바로 연결한다. 게다가 수서역에서 출발하는 SRT, 내년 일부 개통돼 수서에서 삼성을 연결하는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까지 사실상 수도권의 모든 교통망이 강남을 중심으로 개발되고 있다. 정부 재정이 투입되는 사업 추진에 앞서 시행하는 예비타당성 조사(예타)에서 가장 중요한 요건이 경제성인데, 고속철이든 지하철이든 강남을 지나는 노선은 경제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높은 경제성이 시민 편의로 곧장 연결되는 건 아니다. ‘교통의 요지’라는 강남의 특성은 결과적으로 집중을 심화한다. 교통망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이 더 많이 유입된다. 수도권 인근 지역이 베드타운으로 전락하면서 ‘공동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2019년 경기연구원·서울연구원·인천연구원이 수도권 통행량을 조사한 결과 1기 신도시인 분당, 일산, 평촌, 산본 등에서 서울로의 출근 비율은 20~30%에 달했다.
조권중 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기도 인구가 이미 1400만명을 넘어섰는데, 일자리든 교통망이든 자족적 시스템은 없이 서울, 강남에만 의존하는 체제”라면서 “서울의 도로 사정도 충분하지 않은데 경기도의 도로까지 이어 붙이니 교통체증과 병목 현상이 일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강남대로 중앙버스전용차로에서 매일 볼 수 있는 ‘버스열차’가 대표적 사례다. 수도권에서 출발한 광역버스가 양재와 강남을 거쳐 논현역 인근까지 왔다가 서울 밖으로 나가기 위해 회차하면서 버스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논현역에서 강남역까지 두 정류장, 2㎞를 이동하는 데 30분 이상 걸릴 정도다. 정체를 완화하려고 중앙버스전용차로를 설치했지만, 수요 증가로 급격히 늘어난 광역버스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강건수씨는 용산 차고지에서 출발해 동작대교를 건너 고속터미널역, 강남역, 양재역까지 갔다가 돌아 나오는 서울 지선 버스 0411번을 운행한다. 이 노선의 왕복 운행 거리는 약 45㎞. 상습 정체 구역을 운행하다 보니 한 번 왕복하는 데 보통 3~4시간이 걸린다. 그는 “동작대교를 건너면 막히기 시작하는데 강남역부터는 버스들이 신호 대기 시간을 놓쳐 교차로에 서 있는 경우가 많다”면서 “한 번 운행에 6시간이 걸린 적도 있다”고 말했다.
“버스전용차로를 따라가다 너무 막히면 그 옆 차선으로 가는 버스도 많은데, 거긴 차가 더 많으니까 체증은 어쩔 수가 없어요. 한 번 잘못 걸리면 앞차와 간격이 30분 넘게 벌어져요. 그러면 기사들도 마음이 급해져 신호를 위반하거나 과속하는 상황이 자주 벌어지죠.”
“과밀 해결, 교통만으론 안 돼…지역 중심으로 일자리 개편을”
서울연구원이 2021년 낸 ‘제3기 신도시 교통대책의 개선요소 진단’ 보고서를 보면 매일 출근시간대에 14만대의 차량이 서울로 진입하는데, 대중교통이 승용차보다 통행시간이 최대 30% 더 많이 걸렸다. 특히 경기와 인천에서 서울로 운행하는 광역버스는 도심 내 회차에 전체 운행 시간의 20~40%를 소비한다. 서울 시내 간선도로, 버스전용차로까지 혼잡이 이어져 대중교통이 사실상 제 역할을 못한다는 뜻이다.
예컨대 경기 김포 구래환승센터에서 출발해 강남역으로 가는 M6427번 광역버스는 출근시간대 운행시간을 보면 김포 내부에서 평균 23분이 걸렸지만, 서울로 진입하는 올림픽대로에서 1시간18분이 걸렸다. 이후 고속터미널역에서 강남역까지 7.7㎞ 거리를 돌아 나오는 데 걸린 시간은 41분이었다. 총 운행시간 중 21%를 서울 내부 회차에 쓰는 것이다. 수원 영통구 경희대에서 강남 도심으로 가는 G5100번 광역버스 역시 서울 내부 회차 시간이 20분으로 전체 운행시간의 17%를 차지했다.
조사를 맡은 홍상연 부연구위원은 “도심에서 그만큼 시간을 지체하면 교통 혼잡뿐 아니라 시민의 통행·대기 시간 증가, 버스회사의 비용 부담 등 다양한 비효율을 낳는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처럼 모든 버스가 강남 같은 주요 목적지에 가지 않고, 서울 외곽에서 돌려 나가면 과밀 문제가 조금은 해결될 것”이라고 했지만 근본 대책은 되지 못한다고 짚었다.
그는 “도시 구조를 바꾸는 일은 단기간에 되는 일이 아니다”라면서도 “결국에는 서울시 도시기본계획처럼 권역별로 산업을 특화하는 방식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전문가들 역시 신도시 개발을 오로지 ‘주택난 해소’로만 접근하고, 무작정 아파트를 지은 다음 교통망을 마련하는 투자를 반복해서는 쏠림을 해소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지역 고용 중심으로 일자리 체계를 개편하지 않으면 강남을 둘러싼 위성도시만 계속 생겨날 거란 얘기다.
성낙문 한국교통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교통 인프라 정책이 수요나 사업성을 따라가는 것에서 벗어나 국가 전체의 균형 발전을 이끄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동안 여러 대기업 공장이 지방으로 일부 이전했지만, 효과는 크지 않았다”면서 “본사와 연구·개발(R&D)센터 같은 ‘핵심’ 산업, 화이트칼라 직종은 여전히 강남에 몰려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산업과 일자리 분산을 위한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전략과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학과 교수는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텍사스주 시골 도시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것처럼, 한국에서도 수도권을 벗어나 다른 지역에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재생에너지만으로 전력 수요 100%를 대체하는 ‘RE100’이 화두인 만큼 전남, 경남 등에 공장을 지으면 수도권 과밀도 해결하고 국가 경쟁력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정화 기자 cle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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