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 '이란 여성운동가' 모하마디에게..."억압과 싸운 이란인에 보내는 찬사"
"자유·평등 위해 싸운 모든 국민에 영광 돌려"
인권·반정부 운동으로 징역 31년...'옥중 수상'
WP "노벨상, '히잡 시위' 재점화 계기 될 수도"
올해 노벨평화상은 이란 여성 인권운동가 나르게스 모하마디(51)에게 돌아갔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6일(현지시간) “모하마디는 이란 여성들에게 가해진 억압에 저항하고 인권과 자유를 위한 투쟁에 앞장서 왔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현재 모하마디는 수감 중인 상태여서, ‘옥중 수상자’가 된 셈이다. 이란 여성 운동가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2003년 시린 에바디 이후 두 번째다.
'히잡 시위' 선동 혐의로 수감 중 수상..."석방 촉구"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베르트 레이스 안데르센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수상자를 발표하며 “이 상은 이란에서 벌어지는 인권운동의 매우 중요한 업적에 대한 인정이고, 그 지도자가 나르게스 모하마디라는 사실엔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모하마디는 NYT에 보낸 성명을 통해 “나의 인권옹호 활동이 국제적 지지를 받은 덕분에 더 단호해지고 더 책임감을 느끼면서 더 희망을 품게 됐다. 승리가 눈앞”이라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
지난해 9월 이란에선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간 뒤 의문사했고, 이후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전역에서 들불처럼 번졌다. 특히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은 히잡을 벗어 불태우거나 머리카락을 자르는 등 격렬히 저항했다.
이란의 저명한 인권운동가인 모하마디는 ‘히잡 시위’ 당시 여성의 권리를 제한하는 이란 정부를 앞장서서 비판했다. 2021년 열린 반정부 시위 희생자 추모 집회에 참여한 혐의로 체포돼 수감된 그는 감옥 안에서도 시위대를 격려했고, 같은 해 반국가 선동 혐의 등으로 징역 12년형과 채찍질 154대를 추가로 선고받았다. 지금도 이란 수도 테헤란의 에빈 교도소에서 복역하고 있다. 노벨위원회는 이란 정부에 “모하마디가 12월에 예정된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할 수 있길 희망한다”며 그의 조속한 석방을 촉구했다.
이란 여성·인권운동 아이콘...감옥서도 계속 싸웠다
모하마디는 이란 인권운동에 평생을 투신했다. 신문사 기자로 일하던 그는 2003년 1세대 이란 여성운동가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시린 에바디 변호사의 인권수호자 센터에 가입했고, 이때부터 이란 당국의 횡포에 본격적으로 맞섰다. 단체 회장직을 맡은 그는 이란 민주주의와 여성 인권 신장, 사형제 반대 운동을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모하마디는 이란 정권에 의해 13차례나 체포됐다. 5회의 유죄 판결을 모두 합하면 31년의 징역형에 처해졌다. 미국 CNN방송은 “일생 내내 인권과 사형제 폐지에 헌신해 온 대가로 모하마디는 지난 20년의 대부분을 이란 정부의 죄수로 지냈다”고 전했다.
모하마디의 싸움은 현재진행형이다. 영국 BBC방송에 이란 여성 수감자들이 겪는 성적·신체적 폭력에 대해 증언했고, 지난 1월에는 58명의 여성 수감자 명단과 그들이 겪은 잔혹한 고문 내용을 담은 보고서도 발표했다. 이 폭로를 이유로 모하마디는 징역 1년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그럼에도 의지가 꺾이진 않았다. 모하마디는 지난 4월 NYT 전화 인터뷰에서 “나를 더 많이 처벌하고 더 많은 것을 빼앗을수록 나는 민주주의와 자유를 쟁취할 때까지 싸울 결심을 더욱 굳건히 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아미니 사망 1주기를 맞아 ‘히잡 시위’ 슬로건이었던 “여성, 생명, 자유”를 외치며 감옥 안에서 시위를 벌였고, 다른 3명의 여성과 함께 히잡을 태우며 저항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하마디의 가족은 이날 인스타그램에 “자유와 평등을 위해 싸우는 용기로 세계를 사로잡은 이란의 용감한 여성과 소녀들에게 이 영광을 돌린다”고 소감을 대신 밝혔다. 프랑스 르몽드는 지난 6월 “강철과 억압의 벽에 가로막혔지만, 우리는 그보다 더 강하고 견고하다. 장벽이 침묵과 죽음이라면 우리는 움직임과 메아리, 생명력이며 거기에 승리의 약속이 있다“고 적은 모하마디의 옥중 서신을 이날 다시 공개하기도 했다.
'여성·생명·자유' 위해 싸운 이란 국민에 주는 상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여성 인권을 위한 이란의 투쟁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질 것이라고 짚었다. 앞서 히잡 시위에서는 미성년자 71명 등 500명 이상이 군경의 유혈 진압으로 사망하고, 수백 명이 다쳤으며, 2만 명 이상이 체포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무자비한 진압으로 반정부 시위 분위기는 석 달여 만에 가라앉았고, 이란 정부는 최근 히잡 단속을 다시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모하마디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투쟁의 새 흐름을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이번 수상은 정부의 차별과 억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여왔던 이란 국민 전체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준다는 의미도 있다.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는 “모하마디와 마찬가지로 평화와 자유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고, 지금까지도 목소리를 내는 이란인들에게 주어진 상이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iyz@hankookilbo.com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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