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받는 ‘국부’ 얼굴 그려진 음료 유통해도 될까… 싱가포르서 디자인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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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서 때 아닌 디자인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나라의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리콴유(1923~2015) 전 총리 얼굴이 그려진 음료의 시중 유통이 계기가 됐다.
핵심은 △리 전 총리 이미지를 상업용으로 활용하는 건 옳지 않고 △음료 섭취 후 국부 얼굴이 담긴 빈 팩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도 무례한 행동이라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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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담당 부처 사전 협의... 존경 의미 담았다"
싱가포르에서 때 아닌 디자인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나라의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리콴유(1923~2015) 전 총리 얼굴이 그려진 음료의 시중 유통이 계기가 됐다. 존경받았던 지도자 이미지를 사기업이 상업 용도로 쓰는 게 과연 옳은지, 음료를 마신 뒤엔 쓰레기가 되는 용기의 처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두고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6일 싱가포르 스트레이트타임스 등에 따르면, 논란의 주인공은 현지 식음료 회사 ‘여스(Yeo's)’가 지난 8월 말 내놓은 종이팩 형태의 국화차 음료다. 제품 상단에는 2015년 타계한 리 전 총리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문구와 그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생전 친환경 녹색도시 조성에 앞장섰던 리 전 총리의 뜻을 기려 ‘정원 도시의 꿈이 현실로 됐다’는 글도 적혔다. 판매용은 아니고, 50만 개 한정 무료 증정 상품이다.
그러나 상품 공개 후 보수층을 중심으로 비판 목소리가 쏟아졌다. 핵심은 △리 전 총리 이미지를 상업용으로 활용하는 건 옳지 않고 △음료 섭취 후 국부 얼굴이 담긴 빈 팩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도 무례한 행동이라는 취지다. 회사가 브랜드 이미지 강화를 위해 리 전 총리에 대한 국민들의 존경심을 이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집권 여당 인민행동당(PAP)은 당국이 제품 유통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회사 측은 억울함을 호소한다. 무료 증정 상품인 만큼 이윤 추구 목적이 없고, 오히려 청년들에게 환경보호와 경제성장 같은 리 전 총리 업적을 알리는 교육적 의도가 있다고 해명했다. 담당 부처인 문화공동체청소년부(MCCY)와도 사전 협의를 했다고도 덧붙였다. 싱가포르는 2016년부터 상업·홍보 목적이 아닌 ‘국가와 동일시하는 용도’일 경우, 리 전 총리 이름과 이미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논란은 국회로까지 번졌다. 앨빈 탄 문화공동체청소년부 장관은 3일 의회 질의에서 “여스의 리 전 총리 이미지 사용은 싱가포르를 녹색도시로 변화시킨 데 대한 기여를 강조하려는 의도였기 때문에 ‘존중’의 의미로 해석된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빈 팩을 어떻게 무례하지 않게 버릴 수 있도록 하느냐’는 의원들의 공세에는 “(음료 섭취자들에게) 적절하고 책임감 있는 방식으로 빈 팩을 폐기할 것을 촉구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탄 장관의 발언은 빈축을 사고 있다. 온라인상에서는 “빈 음료수를 쓰레기통이 아니면, 어디에 버려야 하느냐”는 비판은 물론, “(리 전 총리의) 얼굴 그림만 잘라내고 보관한 뒤 통을 버리는 게 나은 것이냐”라는 등의 조롱이 이어지고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전했다.
리 전 총리는 리셴룽(71) 현 총리의 아버지다. 31년의 재임 기간 동안 부존자원이 없고 이름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구 600만 명의 작은 도시국가를 금융·물류 허브로 탈바꿈시켜 ‘아시아의 네 마리 용(龍)’으로 만들었다. 싱가포르를 부정부패가 적고 효율적 사회 시스템을 갖춘 나라로 만들어 국부로 존경받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성장 일변도 정책, 국가가 개인에 우선한다는 철학에 기반한 철권통치 때문에 ‘독재자’라는 평가도 받는다. 한국의 박정희 전 대통령과 종종 비교되기도 한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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