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323] 너 자신을 속여라

백영옥 소설가 2023. 10. 7.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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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학기 내내 강의실에 있는 줄조차 몰랐던 존재감 제로의 학생이 교수실로 찾아와 학업을 지속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상담한다면 어떨까. ‘프레즌스’의 저자 ‘에이미 커디’는 고개를 숙인 채 불안에 떠는 학생 얼굴에서 자신을 보았다. 열아홉 살에 자동차 사고로 뇌를 크게 다친 후, 기억력 장애로 움츠러들던 과거 말이다. 그녀의 해법은 의외였다. “너 자신을 속여라”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억력 장애를 지닌 채 그녀가 하버드대학의 교수가 된 주문으로, “행복해서 노래하는 게 아니라, 노래해서 행복한 것이다”의 실천판이었다. 다만 타인뿐 아니라 자신까지 속이려면 더 치밀한 방법이 필요했다. 그녀는 학생에게 움츠러든 어깨와 가슴을 활짝 펴고, 허리부터 곧추세우라고 충고한다.

‘프레즌스’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될 때까지 나를 속여라. 그러기 위해 더 강력한 신체 언어를 구사하라!” 이 말은 내게 “너 자신이 되라”가 최악의 조언이라고 말한 애덤 그랜트의 충고를 연상시켰다. 우리가 지성과 인성을 겸비한 사람이 아닌 이상 진정성을 찾으란 말이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였다. 그는 내면의 목소리를 애써 찾기보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외면을 먼저 찾고,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녀는 중요한 면접이나 시험 직전, 가슴을 활짝 편 ‘원더 우먼’ 자세를 2분만 지속해도 실제 힘이 더 세진 것처럼 느끼고, 이런 자세를 취할 수 없는 장애인들조차 자세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같은 효과를 낸다고 말한다. 이것의 의학 버전은 보톡스로, 더 이상 미간과 입꼬리를 찡그릴 수 없게 된 사람들의 우울증 지수가 낮아졌다는 연구가 있다. 장시간 스마트폰 사용으로 생기는 ‘거북목’ 현상이 결단력과 과단성을 감소시킨다는 연구는 어떤가. 설루션으로 나는 하늘 보기를 권한다. 숙이고 있는 고개를 들어 올리는 행위만으로 어깨와 가슴이 펴진다. 가을 하늘의 청명함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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