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오 이시구로·아니 에르노… ‘노벨상 셀링 파워’ 가장 셌다
숫자와 문학.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관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지점이 노벨문학상이다. 후보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 탓에 베팅 업체 순위로 수상 가능성을 점쳐야 하며, 출판사는 매년 수상 작가의 책 출간 종 수에 따라 울고 웃는다. 출판계의 희로애락이 집약된 이 숫자에는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Books는 올해 노벨문학상 발표를 맞아, 지난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0년간 노벨문학상을 둘러싼 ‘숫자’를 분석했다.
◇성공 공식 1순위는 ‘소설’
교보문고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22년 사이 가장 사랑받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일본계 영국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로다. 작가마다 수상 시기로부터 1년 동안의 책 판매량을 비교했다. 같은 기준으로 수상 작가의 책 중에서 가장 사랑받은 책도 이시구로의 소설 ‘남아 있는 나날’이다. 1년 동안 판매된 부수가 약 10만부. 그의 다른 소설 ‘나를 보내지 마’ 역시 1년 동안 약 5만부가 팔렸다. 이 책들을 포함해 민음사는 당시 국내 출간된 이시구로의 책 8종 중 7종을 출간한 상태라 크게 특수를 누렸다. 민음사 관계자는 “이시구로가 상을 받은 해 한 달 동안에만 책 7종이 20만부 판매됐다”고 했다.
이렇듯 노벨문학상 수상작의 성공 공식 1순위는 ‘소설’이다. ‘관객모독’을 비롯해 희곡을 같이 썼던 오스트리아 작가 페터 한트케를 제외하면, 인기 작가 순위 1위부터 6위가 모두 소설가. 한트케가 인기 작가로 선정된 것도 그가 낸 소설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의 영향이 크다. 이 책을 낸 문학동네 관계자는 “국내에선 노벨문학상 작가의 소설에 반응을 많이 하기 때문에 극작가라는 점과 상관없이 인기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물론 모든 소설이 다 잘되는 것은 아닐 터. 작가의 국내 인지도를 무시할 수 없다. 탄자니아 출신 영국 작가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경우, 노벨문학상 수상 이전 국내 출간된 책이 없었다. 수상 이후 1년 동안 국내에 ‘낙원’을 비롯한 소설이 4종 출간됐음에도 판매량은 모두 합해 3900부에 그쳤다. 반면, 잘 알려진 작가에게 노벨상은 시너지를 만든다. 책 판매 2위를 차지한 프랑스 소설가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이 그렇다. 문학동네 관계자는 “에르노는 노벨상 작가들 가운데도 많이 알려진 작가여서 판매가 큰 폭으로 올랐다”며 “‘단순한 열정’은 수상 전 11쇄를 찍으며 꾸준히 사랑받은 책인데, 수상 후엔 더 빠르게 중쇄를 거듭해 17쇄까지 찍었다”고 했다. 캐나다 소설가 앨리스 먼로는 수상 이후 책 10권이 출간되고, 수상 전후 1년을 비교할 때 판매량이 1262배 늘었다.
◇오르한 파묵 못 넘은 10년
출판 시장에서 노벨상 특수는 여전히 있으나, 예전만 못한 것은 사실이다. 이시구로의 대표작 ‘남아 있는 나날’의 1년간 판매량은 2000년대 노벨문학상 작가 중 가장 인기를 끌었던 튀르키예 소설가 오르한 파묵(2006년 수상)의 대표작 ‘내 이름은 빨강’(약 30만부)의 3분의 1 수준이다. 두 책을 모두 낸 민음사 관계자는 “10만부 넘는 책을 찾아보기 힘든 출판 시장의 변화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 하나의 원인은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이 최근 들어 빈번히 수상 작가로 선정됐다는 점. 미국 시인 루이즈 글릭(2020)과 구르나(2021)가 상을 받을 때, 국내 출판사들은 쓴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다만, 숫자와 노벨문학상의 관계는 긴밀하지만, 따로 떼어서 볼 필요가 있다. 가수 밥 딜런 역시 당시 이례적인 수상으로 오랫동안 화제의 중심에 섰고 수상 후 10권의 책을 출간했지만, 판매 순위에서 최하위인 9위를 차지했다.
벌써 올해 수상자인 노르웨이 극작가 욘 포세의 책 판매량이 늘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한림원이 선정 이유로 “혁신적인 희곡과 산문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것들을 표현했다”로 말했듯, 그의 책에서 숫자가 말하지 않는 것을 찾아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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