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슈 맨 서쪽, 日 근대의 발상지이자 한국 침략의 진원지

유석재 기자 2023. 10. 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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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슈 이야기

허수열·김인호 지음 | 지식산업사 | 412쪽 | 2만3000원

일본을 이루는 가장 큰 섬인 혼슈(本州) 중에서도 가장 서쪽에 있는 곳이 야마구치현이다. 이곳을 예전에는 조슈(長州) 번(藩) 이라 불렀다. 에도 시대에 커다란 세력을 갖추고 막부와 대립했고, 19세기 중반 끝내 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 유신을 이루는 본거지 역할을 했다. 그런데 한국인이라면 이곳을 여행하거나 떠올릴 때 분노와 섬뜩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왜일까.

정치인 이노우에 가오루와 미우라 고로, 내각총리대신에 오른 이토 히로부미와 가쓰라 다로,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모두 조슈 출신이었다. 모두 낯설지 않은 이름이라고? 그렇다. 그들은 고스란히 을미사변과 을사늑약, 강제병합에 기여한 한국 침략의 원흉들이었다. 조슈는 일본 내 혐한(嫌韓)의 본거지인 셈이었다.

지난 1월 별세한 경제사학자 허수열 충남대 명예교수의 유작인 이 책은 ‘조슈에 초점을 맞추고 대중을 위해 서술한 일본 근대사’다. 조슈 출신 학자 요시다 쇼인이 조선 침략을 주장한 이른바 ‘정한론’은 한반도에 대한 일본인의 오랜 공포와 혐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유신 정부의 인사들은 정한론을 지방 사족들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는 도구나 정쟁의 발판으로 삼았다. 한마디로 이것은 가공의 이데올로기였다.

그러나 이후 후쿠자와 유키치 같은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한 1880년대의 정한론은 조선 왕조를 ‘타도해야 할 부패한 권력’으로 인식시키는 역할을 하며 침략의 이데올로기로 진화했다고 분석한다. 훗날 조선총독부는 ‘조선이 일본의 선의를 무시하고 화친하지 않은 것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추진한 것’으로 정한론을 왜곡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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