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듯이 기록한 아니 에르노의 파리[이호재의 띠지 풀고 책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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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가 발표된 후 가장 먼저 느낀 건 당혹스러움이었다.
1년이 지났는데 지난해 수상자인 프랑스 여성 작가 아니 에르노의 작품도 제대로 읽은 게 없었기 때문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작이 생각보다 잘 팔리지 않는다"고 해도 지난해 수상 직후 국내에 출간 혹은 재출간된 에르노의 책만 7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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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한 시대를 읽어낸다
◇바깥 일기/아니 에르노 지음·정혜용 옮김/136쪽·1만4800원·열린책들
“통로에 분필로 테두리를 그린 자리가 있고, 바닥에 ‘먹을 게 없습니다. 저는 가족이 없어요’라고 쓰여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표시해 놓은 남자 혹은 여자는 떠나고 없었고, 분필로 그어 놓은 원 안은 비어 있었다. 사람들은 그 안을 밟지 않으려고 피해 걸었다.”
에르노는 1986년 프랑스 파리의 한 기차역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아마도 노숙자는 역에서 구걸하기 위해 분필로 자신의 공간을 의미하는 원을 그렸을 것이다. 그러다 어떤 사정으로 자리를 떴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원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가난 근처로 가는 일을 꺼리기 때문이다. 노숙자는 떠났으나 노숙의 자리는 그대로 남은 셈이다.
“남자가 젊은 여성에게 묻는다. ‘주당 몇 시간 일해요?’ ‘몇 시에 근무 시작이죠?’ ‘원할 때 휴가 낼 수 있어요?’ 어떤 직업의 이로운 점과 불편한 점을 평가해야 할 필요성, 생활의 구체적 현실. 불필요한 호기심, 무미한 대화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앎으로써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혹은 어떻게 살아올 수 있었는지를 알기.”
에르노는 1987년 파리의 한 광장에서 남자와 여자의 대화를 엿들었다. 두 사람은 연인일까, 친구일까. 관계는 모르겠지만, 대화는 지금 한국에서 이뤄졌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다. 다른 사람의 직업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는 사람들의 심리를 에르노는 조각조각 분석한다. 다른 사람의 직업을 물을 때 이런 마음을 품고 있었는지 스스로 묻게 된다.
형식적인 측면에선 관찰하는 주체를 설명하는 주어가 없다는 점이 돋보인다. “사적 체험에 보편성을 부여하려는 의도”라는 정혜용 번역가의 분석처럼 개인적 경험을 통해 사회 구조를 파헤치기 위해 이 글을 누가 쓴 것인지를 구분하지 않은 것이다. 평소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단언하던 에르노다운 선택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작이 생각보다 잘 팔리지 않는다”고 해도 지난해 수상 직후 국내에 출간 혹은 재출간된 에르노의 책만 7권이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뿐 아니라 이전 수상자의 작품도 읽어보면 어떨까.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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