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기억] 바느질의 추억만은 남아
95세에 임종하기까지 15년 동안 치매를 앓았다. 처음엔 귀가 잘 안 들리다가 점점 기억과 인지능력을 잃어갔다. 그런데도 평생을 밥벌이로 해온 바느질의 기억만은 남아서, 불편한 손놀림으로도 바늘이 들어가는 것이면 무엇이든 집안에 있는 물건들을 꿰매었다.
어느 날부터 아픈 할머니와 살게 된 손자는 할머니와 교감하기 위해서, 처음 맞닥뜨리는 낯선 병을 이해하기 위해서 카메라를 손에 들었다. 당신을 찍는 것에 손사래를 치는 할머니에게 카메라가 혹시 폭력은 아닐까 고민하는 사이, 할머니가 먼저 카메라를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나중에는 다른 가족은 물론이고, 사진을 찍으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한 손자조차 알아보지 못하였다.
귀가 잘 안 들린다고 하시던 무렵부터 임종을 맞기까지, 치매를 앓는 할머니의 십수 년을 사진으로 기록한 김선기의 사진 시리즈 ‘나의 할머니, 오효순’. 쇠잔해가는 할머니와 그런 할머니를 보살피는 가족들의 일상 사이사이에, 실로 삐뚤빼뚤 꿰맨 바느질 자국이 상흔처럼 남아있는 곰 인형의 얼굴이 함께 있다.
사진 속에서 시간이 흐르며 변화하듯, 청년이던 손자는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었다. 현재는 방송국 영상미술국의 촬영감독으로 일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이런저런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영상으로 기록해 전파하는 일을 하는 그이기에, 자신의 사적 이야기인 ‘나의 할머니, 오효순’을 우리가 함께 나누고 생각해보아야 할 질병, 늙음, 돌봄, 죽음에 관한 공적 이야기로서 기록했을 것이다.
‘할머니의 1주기를 맞아 산소에 꽃을 심었다. 화분에 담겨있던 풀과 꽃이 땅에 뿌리를 내리자마자 벌이 찾아왔다. 할머니께서 찾아와 인사를 한 것처럼 따뜻한 바람이 가족에게 불었다.’ 김선기의 작업 노트, 마지막 문구다.
박미경 류가헌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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