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란부터 유신까지, 일본 근대사의 그곳

이후남 2023. 10. 7.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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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슈 이야기
조슈 이야기
허수열·김인호 지음
지식산업사

이 책의 제목에 나오는 ‘조슈’는 에도 막부 시대 일본의 지명인 조슈번을 가리킨다. 현재 야마구치현에 속하는 도시 하기에 그 번청이 있었다. 일본을 찾는 한국 관광객들에게는 낯선 이름들이지만, 일본 근대사에서는 퍽 중요하고 유명한 지역이다. 메이지 유신의 거점이자, 그 주역들과 이후 일본 역사에서 중추적 역할을 한 인물들을 여럿 배출한 곳이라서다.

특히 ‘조슈 5걸’로 불리는 다섯 인물 중에는 이토 히로부미도 있다. 일본에서 초대 내각총리대신을, 한반도에서 초대 통감을 지낸 그는 이 책에 따르면 젊은 시절 ‘과격한 행동주의자’였다. 완공 직전의 영국공사관에 불을 질렀는가 하면, 여러 차례 이런저런 암살 계획을 세웠고, 실제 실행에 옮겨 사람을 죽인 적도 있다고 한다. 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를 일부 일본인들이 ‘테러리스트’로 폄훼하는 것을 두고 저자가 ‘과연 누가 테러리스트인가’ 라고 반문하는 배경이다.

이 책은 조슈를 중심으로 일본의 근대사를 한국 독자 눈높이에 초점 맞춰 전한다. 부산 자성대 공원 안내판에도 이름이 나오는 모리 데루모토가 누구인지부터 시작해 임진왜란의 전개, 에도 막부의 성립, 일본의 개항과 메이지 유신 전후의 상황, 한반도 침탈 등의 과정을 다룬다.

판형이 작은 책인데도 아베 전 총리 가문의 계보도를 비롯해 지도·그림·사진·도표 등 독자의 이해를 돕는 다양한 시각자료를 실었다. 답사기는 아니되 저자가 다녀온 현장에서 보고 들은 얘기도 녹였다. 특히 후반부에는 요시다 슈인을 비롯한 여러 인물이 주장한 정한론의 내용과 『일본서기』에 나오는 고대사 기록의 허점, 그리고 독도 문제까지 짚는다.

저자 허수열(1952~2023) 교수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실증적으로 비판해온 경제학자. 전공이 아닌 조슈 이야기를 대중적인 일본 근대사 책으로 쓸 생각은 2015년쯤 처음 하기를 다녀올 때부터 품었던 모양이다.

공저자인 사학자 김인호 교수는 책 말미에 자신이 하기에 관심을 갖게 된 남다른 계기부터 허 교수와 함께 방문한 과정, 초고의 검토를 부탁 받고 몇몇 논점에서 격론을 벌였던 얘기 등을 밝혀 놓았다. 병마와 싸우며 지난해 여름 초고 최종본을 완성한 허 교수는 올해 1월 별세했다. 원고 파일에는 그 보름 전까지도 수정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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