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설 상담? 대본엔 없어, 100% 저한테서 나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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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오디세이] ‘진격의 거인’ 서장훈
‘진격의 거인’이다. 틀면 나온다. ‘아는 형님’(JTBC), ‘미운 우리 새끼’(SBS), ‘무엇이든 물어보살’(KBS Joy), ‘고딩엄빠’(MBN) 등 채널을 넘나든다. 고정 출연 중인 프로만 7개다.
대한민국 최고의 농구선수에서 은퇴해 방송으로 옮긴 지 10년, 서장훈은 ‘예능의 대세’가 됐다. 뼈 때리는 팩트 폭격으로 느슨한 꿈을 부숴버리는 드림 브레이커(Dream Breaker)는 예전에 없던 캐릭터다. 시청자는 명쾌하고 현실적인 그의 입담에 대리만족을 느낀다. 일반인의 고민을 듣고 나름의 솔루션을 제시하는 그의 스타일은 ‘상담 예능’이라는 새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9년 월간중앙 ‘레전드를 찾아서’ 연재 때 그를 만난 적이 있다. 4년 만에 다시 연락하자 그는 흔쾌히 인터뷰를 수락했다. JTBC 일산 스튜디오에서 ‘아는 형님’ 녹화를 마치고 달려온 서장훈을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에서 만났다. ‘묻는 사람’에서 ‘답하는 사람’으로 입장이 바뀌었지만 뼈 때리기 신공(神功)은 여전했다.
시대 관계없이 지켜야 하는 상식 얘기
Q : 방송 10년 만에 예능계의 대세가 됐는데요.
A : “10년이나 했는데 대세라고 하는 건 좀 그렇고요. 운 좋게 지금까지 꾸준히 해왔던 것 같아요. 특별한 예능감이 있다기보다는 여러 분야에 다양한 관심이 있었고, 더 생각도 하고 찾아보기도 했던 게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Q : 농구 팬들은 ‘서장훈이 20점은 넣고, 리바운드 10개는 잡아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졌습니다. 지금 시청자들은 어떨까요.
A : “제가 하는 프로들이 일반 대중의 사연에 공감하고 조언하는 건데, 저한테 기대하는 건 그야말로 현실적인 얘기겠죠. 저처럼 말하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까요. 예능이라는 게 좋은 쪽으로 맞춰주는 경우가 많은데, 시대가 바뀌면서 저같이 얘기하는 사람도 필요한 것 같아요.”
Q : 이름을 붙이자면 ‘상담 예능’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A :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제가 전문적인 상담사도 아니고, 어차피 예능이니까 재미도 드리면서 답답했던 걸 좀 풀어드리는 쪽이라고 보면 되겠죠. 또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보편적인 상식입니다. 시대와 문화가 아무리 바뀌고 새로운 게 많이 등장해도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할 상식이란 게 있는데, 그 수준에서 얘기를 드리고 때로는 쓴 소리도 하는 거죠.”
Q : 상담 형식의 프로에서 출연자한테 독설도 하는데 반응이 좋거든요. 분명 작가가 있을 건데.
A : “그런 컨셉트의 세 프로(무엇이든 물어보살, 연애의 참견, 고딩엄빠)에서 제가 출연자한테 해 주는 말은 100% 저한테서 나오는 거예요. 많은 분들이 작가가 써준 대본에 맞춰 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대본으로는 그런 얘기 못 합니다. 작가들이 그런 대본을 쓰지도 않을 거예요. 심지어 어떤 분이 오는지 저도 몰라요.”
Q : ‘400억대 건물주’ 소리를 듣는데요. 돈을 어떻게 벌어서 어떻게 써야 한다는 철학이 있나요.
A : “요행을 바라지 않는다는 겁니다. 열심히 하지 않고 이뤄지는 건 없는데, 요즘 보면 열심히 안 하면서 요행으로 뭔가를 바라는 게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요. 저는 선수 생활 오래 하면서 남들보다 많이 받았고, 그걸 부모님께서 잘 관리해 주셨어요. 제가 흥청망청 쓰거나 사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것도 있고요. 이제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도 돌아보면서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Q : 지난번 인터뷰 때도 재단 만드는 건 썩 내키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A : “훌륭한 일을 하는 재단도 많은데, 저 혼자의 힘으로 하기에는 벅찰 것 같아요. 꼭 필요한 곳에 직접 기부를 하는 방식이 더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입니다. (남몰래 좋은 일 많이 하고, 지난 1월 타계한 ‘코끼리 센터’ 김영희씨도 도왔다는 얘기를 꺼내자) 김 선배님 얘기는 안 했으면 좋겠어요. 큰 도움 드린 것도 없고 10년에 한 번 연락 할까 말까 했는데, 제가 뭘 했다는 건 말이 안 되니까요.”
서장훈의 말은 독하고 차가울 때가 많다. 그러나 그 안에는 상대를 향한 애정이 담겨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장훈의 독설을 과하다 하지 않는다.
Q : 얼굴 크다고 악플에 시달리는 학생 상담하신 적 있죠?
A : “2~3년 전이네요. 저도 큰 키 때문에 아픔까지는 아니지만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 얘길 해 주면서 ‘누구나 어려움은 겪는다. 나만 아픈 게 아니니까 잘 이겨내길 바란다’고 했죠. 악플 다는 사람들한테는 이런 얘기를 해 주고 싶어요. ‘남의 삶을 힘들게 하는 사람한테 무슨 복이 오겠나. 스트레스를 푼다, 혹은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거 아니냐 하는데 언젠가는 본인이 더 큰 아픔을 겪게 될 거다. 그 귀중한 시간에 정말 불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나아지겠나’ 라고요.”
시청자에게 뭐라도 남겨드리려 노력
Q : 자녀 교육에 대해 현실적인 조언을 하시는데, 자녀가 있다면 어떻게 키우고 싶은가요.
A : “그냥 상식적인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특별한 기대나 이런 것도 없어요. 키우는 사람도, 자라는 아이도 보편적인 상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Q :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농구가 참패했는데….
A : “제가 그래서 인터뷰를 안 해요. 특히 농구 관련해서는요. 뭐라고 드릴 얘기도 없고, 어떤 말을 해도 현장에 계신 분들한테 폐가 될 수 있으니까요. 제가 현장에 있는데 현장에 있지도 않은 사람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면 도움도 안 되고 기분도 안 좋을 것 같아요. 남의 일까지 신경 쓰면서 살기보다는 그냥 본인 일에 더 집중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요.”
Q : 지난 인터뷰에서 ‘농구가 잘 될 수 있도록 돕는 일에는 앞장서겠다’고 하셨죠.
A : “앞장서겠다는 얘기는 안 했고요. 지금 하는 방송 일이 제 직업이니 여기에 최선을 다하는 게 당연하고요. 저야 죽을 때까지 농구인이니까 늘 농구에 관심을 갖고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있다면 해야죠.”
Q : 방송, 특히 예능은 뭘 줄 수 있어야 할까요.
A : “기본적으로 예능은 재미있어야 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하고, 그걸 본 시간에 재미든 공감이든 감동이든 시청자에게 뭐라도 남겨드려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제가 하고 있는 프로 중 5개는 장수하고 있어요. 새로운 것도 좋지만 지금 맡고 있는 걸 더 충실하게 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공부하려고 합니다.”
그는 문장 한 줄, 단어 하나를 꺼내기 위해 오래 뜸을 들였다. 인터뷰 중에 가장 자주 쓴 단어가 ‘생각’이었다. 깊은 생각에서 나온 그의 말에는 힘과 기품이 있었다.
■ 키 2m7㎝에도 3점 슛 쏙쏙, 높이·힘·슈팅력 다 갖춘 최고 농구선수
「 요즘 아이들한테 ‘서장훈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키 엄청 큰 아저씨요” “옛날에 농구 잘 했다는 연예인이요”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서장훈은 그냥 농구를 잘한 사람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한 선수다. 1년 후배인 현주엽과 함께 휘문고 무적시대를 연 서장훈은 1993년 연세대에 입학한다. 문경은·이상민·우지원·김훈 등 선배들과 ‘독수리 5형제’를 이룬 서장훈은 1993~94 농구대잔치에서 실업 팀을 누르고 대학 최초로 우승을 차지한다.
1998년 프로농구 서울 SK에 입단한 서장훈은 2013년 부산 KT에서 은퇴하기까지 16시즌 동안 688경기에 출장해 1만3231득점(경기당 19.23점)을 기록했다. 프로농구(KBL) 통산 최다득점이다. 힘과 탄력이 압도적인 외국인 선수들과 골밑에서 싸우면서 리바운드 역대 2위(5235개) 기록도 이뤘다.
더 놀라운 건 3점슛과 자유투다. 2m7㎝의 압도적인 신장에도 민첩했던 서장훈은 슈팅마저 정확했다. 그의 통산 3점슛 성공률은 전문 슈터를 능가하는 36.0%다. 키 큰 선수는 자유투가 부정확하기 마련인데 그의 자유투 성공률 76.9%에 달했다.
서장훈은 “단 한 번도 스스로 만족한 경기가 없었다”고 할 정도로 완벽주의자였다. 그는 2019년 월간중앙 인터뷰에서 “작은 성공에 도취하고 과하게 기뻐하면 발전이 없다는 생각을 했고, 자신에게 냉정하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더 넣고 더 잘해야 할 일들이 있으니까 기뻐하려고 하지 않았죠. 그랬기 때문에 그나마 이 정도도 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고 말했다. 농구선수 은퇴 후 10년 만에 방송계 정상에 오른 비결도 선수 시절부터 다져온 ‘완벽을 향한 노력’이 아니었을까
」
정영재 문화스포츠 에디터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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