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사 렌즈로 본 증류주… 향긋하게 맛보다

김용출 2023. 10. 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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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는점 차 이용 혼합물 분리 ‘증류’
역사부터 화학·분자 생물학 등 접목
진화·물리학 등 자연사 관점서 살펴
브랜디·진 등 제조법뿐만 아니라
증류 원리·재료·효과도 상세히 다뤄

증류주의 자연사/롭 드살레, 이안 태터샐/최영은 옮김/시그마북스/2만5000원

엄지와 검지 사이 손등에 가는 소금을 뿌리고 잘린 라임이나 오렌지를 집어 든다. 다른 손으로는 술이 담긴 술잔을 집는다. 먼저 손등에 있는 소금을 조금 핥은 뒤, 술 한 모금을 단번에 넘기고, 이어서 라임을 물어서 즙을 빤다.

물론 이 방법만이 전부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술맛을 덜 느끼기 위해서 라임을 먼저 베어 무는 것을 선호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술맛을 강렬하게 느끼기 위해서 소금을 먹지 않고 라임만 잔에 살짝 걸쳐서 마실 수도 있다.
‘끓는점’의 차이를 이용해 액체 상태의 혼합물을 분리하는 증류의 원리와 숙성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증류주는 탄생 이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사진은 대표적 증류주인 브랜디, 보드카, 테킬라, 위스키, 럼. 세계일보 자료사진
마시는 사람 맘대로이지만, 어떻게 마시든 강렬하고도 매콤한 맛과 알싸한 향, 소주를 마실 때와 마찬가지로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올 것이다. 캬! 하고.

푸른 용설란을 재료로 해서 알코올 농도가 35∼55% 정도인 멕시코의 대표적 증류주 테킬라 이야기다. 멕시코 식당이나 술집 또는 멕시코 술집이 아니더라도 테킬라를 파는 술집도 적지 않으니 테킬라를 접할 기회는 적지 않다. 테킬라가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 사랑받았는지 알 수 없지만, 세계적으로 본다면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을 거치면서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테킬라 자체는 16세기에 원산지로 알려진 할리스코주 알토스와 바예데 아마티틀란에서 처음 생산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으며, 이름은 이 지역명을 그대로 땄다. 화산회토가 풍부하게 섞인 이곳의 토양은 블루 아가베를 재배하기 안성맞춤이며, 현재도 그렇다. 알타미라의 후작인 돈 페드로 산체스 데 타글레는 1600년대에 하시엔다 쿠이실로스에 첫 번째 테킬라 공장을 세우면서 ‘테킬라의 아버지’로 불린다. 또한 1616년 공식적으로 처음으로 이 상품을 테킬라 지역의 메스칼 와인이라고 칭하며 식민지 당국의 중요한 수입원임을 함께 시사했다.”

모두 자연사박물관 큐레이터로 이미 와인과 맥주의 자연사를 함께 저술한 두 저자는 책에서 역사와 화학, 분자 생물학은 물론 진화, 생태학, 물리학까지 총동원해 증류주의 역사와 문화 등을 살핀다. 특히 술이나 증류주를 다룬 기존 책들과 달리 브랜디, 보드카, 테킬라, 위스키, 진, 럼 등의 개별 증류주의 역사나 문화, 제조 방법뿐만 아니라 증류의 원리와 의미, 재료와 효과 등을 꼼꼼히 분석한다.

책에 따르면 증류는 상대휘발도, 흔히 ‘끓는점’의 차이를 이용해 액체 상태의 혼합물을 분리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기원전 2000년쯤 메소포타미아의 바빌로니아에서 초기 증류 장치가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증류의 원리를 인류가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오래됐지만 증류 기술이 술의 제조에 사용된 것은 1세기 전후, 특히 유흥 목적으로 술을 대량 생산하는 과정에서 증류 원리가 시작된 것은 14세기 유럽으로 추정된다.
롭 드살레, 이안 태터샐/최영은 옮김/시그마북스/2만5000원
증류주를 나무 배럴에서 숙성하면 맛과 색이 놀랄 정도로 달라진다. 보통 숙성 연도가 오래되면 될수록 맛과 색이 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저자는 숙성 연도보다는 숙성을 담당한 나무의 종류와 특징에 더 주목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조언한다.

증류의 원리와 방법, 증류주의 역사, 재료와 제조 방법 등 기초 원리와 개념을 다진 뒤 대표적인 증류주들의 역사와 문화, 특징 등을 하나하나 소개한다. 브랜디, 보드카, 테킬라, 위스키, 진, 럼 등 시장의 대표적 증류주와 함께 오드비, 슈납스, 바이주, 그라파, 오루호, 문샤인 등까지.

증류주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저자는 최근 몇 년간 국제적으로 증류주 관련 규제가 많이 완화돼 왔고, 증류주의 종류도 꾸준히 늘고 있다고 진단하면서도 그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긴 어렵다고 분석한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소비자의 취향이 증류주의 혁신을 부를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인류는 왜 타는 듯한 느낌을 주고 가장 빨리 취하게 만드는 증류주를 마시는 것일까. 저자의 설명에 무릎을 탁 치고 오늘 밤 술잔을 들고 있는 당신을 만날지도.

“… 증류주가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종류 중 가장 독하고 공격적이며, 알코올의 정도와 맛의 감각 또한 가장 극단적이기 때문이리라. … 왜 우리가 증류주를 마시는가에 대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우리가 증류주를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알코올에 대한 허용성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에탄올은 대부분의 생물체에는 독으로 작용한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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