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푸바오’와 ‘바람이’로 바라게 된 것
‘보호’ 앞세워 가두고 사육 옳은가
당장 동물원 없앤다고 해결 안 돼
즐겁게 살도록 환경 만들어줘야
내 인생 ‘덕질’ 대상에 판다가 있을 줄은 몰랐다. 그렇다, 나는야, 푸덕이(푸바오 덕후). 에버랜드에 거주 중인 푸린세스 ‘푸바오’뿐 아니라, 푸바오 부모 ‘아이바오’ ‘러바오’의 열혈 팬이다. 과몰입이 심했는지, 나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알고리즘은 판다로 초토화됐다. 이 글을 쓰는 도중에도 푸바오 영상 하나 무심코 눌렀다가, 한 시간 넘게 넋 놓고 ‘귀여워!’를 연발해 버렸다. 요즘 일상이 이렇다. 해야 할 일을 잊고 판다 영상으로 1∼2시간 보내기 일쑤다. 이런 나의 판다 앓이에 지인들은 짐짓 놀라는 눈치다. “너, 동물에 죽고 못 살지 않았잖아!” 그렇지. 난 동물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었지. 동물원에 호의적인 인간도 아니었는데, 왜 이러지?
처음엔 죽였어야 했나, 분노했다. 그러다 든 생각. 우리로 돌아갔다면, 사순이는 행복했을까? 기사에 바르르 떨던 나는 본능적으로 푸바오를 찾았다. 순간 ‘아차’했다. 인간에 상처받은 동물에게 느낀 슬픔을 또 다른 동물로 덮으려는 내 모습이 모순적이어서. 판다를 멸종위기로 몰아넣은 건 그들 서식지를 파괴한 인간인데, 그런 판다로 힐링 운운하는 게 미안해서. 인간이 만든 공간에 동물을 가둬 두는 게 과연 맞는 건가.
그러다가 ‘갈비뼈 사자’를 보았다. 열악한 우리에 갇혀 앙상하게 말라 가던 사자는 한 시민의 동물 학대 민원 제기로 세상에 알려졌고, 청주동물원이 돌보겠다고 나서면서 지난 7월 새 보금자리를 만났다. 이송되는 날, 이름이 정해졌다. 바람이. ‘좀 더 좋은 삶을 바란다’는 의미의 이름이었다. 한동안 내실에서 꿈쩍 않던 바람이는 이제 야외 방사장으로 나와 거닐기도 하고 사육사들과 교감도 한다. 살도 붙어서 제법 라이언 킹 티도 난다. 좋아진 환경 덕만은 아니었다. 수의사와 사육사들의 애정이 바람이를 변화시키고 있었다.
다시 생각한다. 동물을 가두는 게 옳은가. 궁극적으로는 동물원 없는 세상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멸종위기종과 당장 갈 곳이 없는 동물들을 고려했을 때 ‘동물원을 없애라!’는 현실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렇다면? 바람이가 보여 주듯, 동물원에서 조금이라도 더 즐겁게 살아갈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는 게 아닐까. 강 사육사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판다들 이야기를 제가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원하는 게 뭐니’ ‘어디가 아프니’ 들어 보고 싶습니다.” 상대의 마음에 가닿으려는 노력. 그것은 말이 통해도 서로 오해하고, 곡해하는 인간 세상에도 필요한 그 무엇 아닌가. 내가 바오 가족 ‘덕질’에 빠진 진짜 이유가 여기 있을 것이다. 따뜻한 마음으로 동물을 대하는 사람들을 보며, 무심했던 동물권에 눈뜨게 된 것 역시 ‘덕질’이 내게 준 뜻밖의 선물이다.
정시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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