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 "오스카 받고 두려워져…난 존경받을 만한 사람 아냐"
"모험정신 없어…남들 안 하는 역할 선택한 것"
(부산=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아카데미상을 받고 두려워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지금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요, 하하."
한국 배우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이 부산영화제에 참석한 자리에서 상을 받은 이후 달라진 삶에 관해 털어놨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 중인 그는 6일 해운대구 KNN 시어터에서 열린 토크 프로그램 '액터스 하우스'에서 "그 상을 받은 다음부터 '(행동에) 주의를 해야 하는구나' 생각했다. 괜히 받은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윤여정은 2021년 정이삭(리 아이작 정) 감독의 영화 '미나리'로 오스카상을 거머쥔 이후 애플TV+ 시리즈 '파친코'와 예능 프로그램 '뜻밖의 여정' 등에 출연했지만 국내 언론과 인터뷰는 하지 않았다.
그는 이에 대해 "아시다시피 제가 말을 걸러 할 줄 모른다"면서 "그거(오스카 수상)에 대해 인터뷰하는 게 겸연쩍기도 하다. 그 상은 일종의 행복한 사고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자꾸) 존경한다는 말을 듣는데, 나이가 들어서 존중하는 거라고 생각할게요. 제가 뭐 큰 업적을 이룬 것도 아니고요. 저는 결점이 많은 사람이고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절대 못 돼요. 잠깐 빛난 거는 아카데미상이라는 것 때문인데 그것도 어쩌다 운이 좋아서 그렇게 된 거에요."
하지만 그는 '미나리'를 촬영할 때만큼은 정 감독을 향한 마음 때문에 최선을 다해 연기했다고 했다. 그는 함께 작업한 감독 중 가장 인품이 훌륭한 사람이 누구냐는 말에 "아이작"이라고 망설임 없이 답했다.
"자기가 한국말을 못 하는 걸 정말 미안해했어요. 한국 종자가 미국에서 교육을 잘 받아서 성숙하면 이런 인종이 나오겠다고 생각하게 한 사람이에요. 근데 촬영 현장에서 그가 받는 대우는 말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심지어 감독인데 모니터도 없어요. 제가 그걸 보고 너무 욱해서 '아이작을 위해서 다하리라' 했지요."
평소 시원시원한 입담을 자랑하는 윤여정은 이날 400여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 앞에서도 거침없이 자기 생각을 말했다.
그는 행사 전 포토타임에 일어서서 허리에 손을 얹은 포즈를 취해달라는 요청을 받자 "싫다. 여배우는 왜 맨날 드레스를 입고 그런 포즈를 해야 하느냐"면서 "올해 77세인데 하고 싶은 대로 하다 죽겠다"고 말했다. 객석에서는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또 "한 젊은 팬에게서 엄마가 '태극기 부대'라서 대화를 안 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냥 '특별활동'을 나가는 거라고 생각하라"며 "같은 의견을 가진 친구를 만나는 것이고 전쟁을 겪은 공포 때문에 그러는 것이기 때문에 이걸로 그르다 옳다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 관객에게서 자식이 없는 싱글이었더라도 열심히 연기를 했겠느냐는 질문을 받고서는 "더러운 꼴을 보면서 배우를 했는데, 자식이 없었으면 아마 목숨 걸고 안 했을 것"이라면서 "어떤 면에선 걔네(두 아들)에게 감사해야 한다"며 웃었다.
윤여정의 배우 인생을 돌아보는 한편 대표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도 이어졌다. 1966년 TBC 공채 3기 탤런트로 데뷔한 그는 배우로만 57년을 살았다.
윤여정은 "나는 우리나라에서 (배우로) 살아 남은 게 용할 정도"라면서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남들이 저를 보고 이상한 아이라고 해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다"고 돌아봤다.
"저는 모험 정신이 딱히 있는 것 같진 않고 다만 일찍이 미인이 아닌데 배우를 한다는 걸 자각했어요. 사랑하다 죽는 역할은 안 들어올 것이다. 내 처지를 빨리 읽은 거지요. 전 배우의 조건이 없어요. 낭만적이지 못하지, 목소리도 안 예쁘지. 아마 그래서 남들이 안 하는 역할이 저한테 차례가 왔고, 제가 그걸 또 선택했어요."
윤여정은 운이 좋거나 미모가 뛰어나 배우가 되는 사람도 있지만 배우에게는 '자기다움'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엄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연기는 김혜자가 잘하지'라고 말했던 사람"이라면서 "저는 그게 기분 나쁘지 않았다"고 했다.
"김혜자라는 특출난 배우가 있지만, 나는 똑같은 배우가 되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많은 배우가 김혜자 선생님처럼 되려고 하지만 나는 나다워야 해요. 그리고 배우는 꿈이 아니고 현실이에요. 남의 인생을 살려면 무섭게 노력해야 해요."
윤여정은 대표작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스크린 데뷔작인 김기영 감독의 '화녀'를 언급하면서 "혹독한 시간이었고 다시는 배우를 안 하겠다고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윤여정은 이 작품에서 시골에 살다 상경한 뒤 한 가정을 파탄 내려 하는 파출부 '명자'를 연기했다. 파격적인 캐릭터와 뛰어난 연기로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당시 "내가 왜 이 남자(김 감독)에게 선택받았을까 저주를 퍼부었다. 너무 후회된다"며 "그는 천재적인 감독"이라고 회상했다.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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