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공동퇴거불응죄’ 활용해 옥내 집회·시위 옥죄기
경찰이 일반인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건물 내부에서 시위를 한 시민들을 상대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줄줄이 수사를 벌이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경찰은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상 신고 대상이 아닌 옥내 집회에 폭력행위처벌법상 ‘공동퇴거불응’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까지 신청하는 등 사실상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고 있다. 경찰의 이 같은 강경 대응으로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시위의 자유가 과도하게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지난달 5일 서울 중구 스페이스쉐어 서울중부센터에서 환경부가 개최한 ‘국가물관리기본계획 변경안 공청회’ 도중 공청회장에 들어가 정부의 보 존치 계획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인 환경단체 활동가 5명을 공동퇴거불응 혐의로 지난 4일 검찰에 송치했다.
노동조합이나 장애인단체 활동가들도 실내에서 시위를 벌였다가 공동퇴거불응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경찰은 지난달 13일 임금 인상·근무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서울 양천구청 로비에서 구청장 면담을 요구한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양천문화재단분회 관련자 10명을 연행했다.
지난달 15일에는 서울 중구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역본부 로비에서 중증장애인 동료지원가 사업 예산을 삭감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점거 농성을 벌인 장애인단체 활동가 27명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경찰의 공동퇴거불응 혐의 적용을 두고 입법의 본래 취지와 달리 실내 집회나 시위 자체를 막기 위한 용도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동퇴거불응죄를 규정한 폭력행위처벌법은 “집단적·상습적으로 폭력행위를 범하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해 폭력행위를 범한 사람을 처벌함”이라고 그 목적이 조문에 명시돼 있다. 앞서 세 사건 모두 시민단체·노조 측은 활동가나 노조원의 폭행이나 폭력 행위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속노조 법률원 서범진 변호사는 “세 사건에 대해 공동퇴거불응죄가 성립은 할 수 있다”면서도 “공동퇴거불응죄는 남이 살고 있거나, 생활하거나, 소유하고 있는 공간에 권한이 없는 사람이 마음대로 들어가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막기 위해 제정된 조문”이라고 해석했다. 서 변호사는 “실내에서 하는 집단행동은 집회시위법 신고 대상이 아니라서 공동퇴거불응, 공동주거침입, 업무방해 등을 적용하면 사실상 전면 제한하는 것과 다름없을 수 있다”고 했다.
공동퇴거불응 혐의만으로 구속영장을 신청한 행위가 ‘과도한 법 집행’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서 변호사는 “벌금형에서 3년 이하 징역형까지 나오는 공동퇴거불응죄에 구속영장까지 신청한 것은 ‘오버’한 행위”라고 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폭력행위처벌법 목적 조문이 공동퇴거불응 혐의 적용의 필수 조건은 아니다”라며 “2인 이상이 특정한 장소에서 퇴거 요청을 받았음에도 이를 따르지 않을 때 적용할 수 있다”고 했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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