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도 국경 막는다… ‘트럼프 장벽’ 건설 재개
대선 의식한 듯… “예산 집행일 뿐”
조 바이든 행정부가 5일(현지 시각) 미국 남부 국경 지역에서 밀려드는 불법 이민자를 막기 위해 ‘국경 장벽’ 재개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표적 유산으로 꼽히는 국경 장벽을 다시 건설하겠다는 방침에 진보 진영에선 “트럼프 때와 다를 것이 없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내년 대선을 1년여 앞두고 낮은 지지율에 고전하는 바이든 대통령이 중도·보수층의 불만을 의식해 이민 정책을 강경 입장으로 선회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날 국토안보부는 불법 이민자들이 몰리는 텍사스주(州) 리오그란데 밸리에 추가적인 국경 장벽을 신속하게 건설하기 위해 환경 보존, 멸종 위기종 보호 규정 등을 담은 26개 연방법 적용을 유예한다고 발표했다. 당초 이곳은 국립 야생동물 보호 구역 등이 걸쳐 있어 연방법상 장벽 건설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정부 행정 조치를 통해 이 법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이는 트럼프가 장벽을 세우기 위해 사용했던 방식과 같다고 AP는 전했다.
이와 함께 바이든 행정부는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자 강제 추방을 재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달만 해도 바이든 행정부는 최악의 경제난과 마두로 정권의 독재로 고통받는 베네수엘라 내부 상황을 고려해 망명 신청을 한 47만여 명에게 미국 거주 신분을 부여하기로 했었다. CBS방송 등은 “지난달에만 베네수엘라인 5만명이 불법으로 미국·멕시코 국경을 건너는 등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고 했다.
2021년 1월 대통령 취임 첫날 바이든은 앞서 트럼프가 시작했던 국경 장벽 건설을 중단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러나 집권 이후 밀입국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이에 대한 여론도 악화되는 등 상황이 바뀌었다. 특히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국경 지역에서 불법 입국자를 즉각 추방하도록 했던 ‘42호 행정명령(Title 42)’이 지난 5월 종료되면서 중남미 불법 이민이 다시 급증하는 것도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CNN 등 친(親)민주당 언론들도 “지난 대선 때부터 공언해 온 바이든의 공약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이라며 비판적 입장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 시절 이미 배정된 예산일 뿐, 정책 변화는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바이든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해당 예산이 과거(2019 회계연도)에 이미 국경 장벽용으로 정해져 있었고, 명목 변경을 해달라는 요구에도 의회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국경 장벽이 효과적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했다.
트럼프는 이날 장벽 건설 재개 소식에 소셜미디어를 통해 “바이든이 (정책을) 옮기는 데 너무 오래 걸렸다”며 “나와 미국에 사과할 텐가. 사과를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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