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냐고요? 서울러인데요”…국적을 버린 사람들 [Books]

김슬기 기자(sblake@mk.co.kr) 2023. 10. 6. 20:2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시대예보
송길영 지음, 교보문고 펴냄
잘파가 온다
황지영 지음, 리더스북 펴냄
서울 도심 전경. [사진 출처=연합뉴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기업의 눈은 내년을 향하기 시작한다. 트렌드 예측서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에 한치 앞이 아닌, 조금 먼 내일을 내다보는 방법이 있다. 내일을 주도할 ‘사람’과 ‘세대’에 주목하는 책을 만나는 것이다.

말총머리를 한 빅데이터 전문가 송길영은 신작 ‘시대예보’에서 ‘핵개인’의 시대를 예견한다. 디지털 도구와 인공지능(AI)의 발전으로 기존에 힘을 발휘하던 귄위가 쪼개지며 100세 이상의 생애주기에서 조직의 테두리와 가족의 울타리가 무너져 흩어지고, 종국에는 각자의 역량과 생존을 고민하며 홀로 서는 개인의 시대가 왔다는 진단이다. 시대 변화의 동력은 ‘지능화’와 ‘고령화’다.

핵가족이라는 말이 탄생한지 반세기 만에, 한국은 더 작은 단위인 핵개인으로 분화했다. 핵개인의 세계관은 국가와 국적보다는 내가 사는 도시가 더 중요하다. ‘한국인’ 대신 ‘서울러’의 정체성을 가진다는 것.

먼저 ‘K’의 정체성부터 다시 쓴다. ‘오징어게임’과 ‘기생충’, BTS 등의 전무후무한 성공 이후 K는 메인스트림이 됐다. 외국 멤버가 포함된 K팝 그룹 등의 예를 들며 K는 이제 국가가 아니라 문화이며, 사람을 뜻하며 K는 이제 전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만큼 ‘세련됨’을 뜻하게 됐다.

국제화되어 다른 의미를 얻은 K의 세계 속에서 서울러는 다른 의미를 얻었다. 한국 안에서도 도시를 중심으로 생활권이 쪼개지며 서울시민들은 뉴욕, 파리, 런던, 도쿄 등 세계의 비슷한 도시들과 더 연대감을 느끼고, 그들과 다양성 역동성으로 경쟁하는 시대가 됐다. 마블 영화를 좋아하고, 리니지 게임 혹은 BTS의 세계관이 더 중요한 ‘나’의 세계관 속에 물리적 국가는 베이스캠프 또는 정거장 정도로 역할이 제한된다.

AI 같은 첨단 기술을 보유한 인재들에게는 런던, 뉴욕, 서울 등의 도시를 선택해 거주할 기회가 생겼다. 서울러라는 말에는 파리지앵 같은 선망이 담기고 있다. 국경의 문화적 윤곽이 희미해질수록 더 세밀한 구별짓기는 생겨난다.

한국인이 없는 K팝 걸그룹 ‘블랙스완’. K는 이제 국가가 아니라 문화에 붙는 수식어가 됐다. 왼쪽부터 가비·파투·스리야 ·앤비. [사진 출처=DR뮤직]
‘5분 존경 사회’도 변화의 산물이다. 사내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부장님은 이제 과거처럼 역전의 용사로 존경받기 힘들어졌다. 최근에는 어떤 브랜드가 만들어지면 분란을 막기위해 모든 참여자의 노고를 백서 형태로 발간하기도 한다. 김 부장님의 기획서를 빠르게 검토하는 능력은 데략 ‘5분의 존경’을 동료로부터 받을 수 있게된 것이다.

조직내의 자릿세처럼 작동하는 존경은 의미가 없어졌고 술자리 예절이나 사내 정치도 힘을 잃게 된다. 권위가 기능으로 대체되고, 기능은 외주화가 가속되고 있어서다. 온라인 교육이 발단하면서 사내 능력자가 아닌, 국가적 귄위자에게 직접 교육받고 소통하는 것도 수월해졌다. 핵개인의 시대에 더욱 중요해지는 것은 네트워크다. 미래는 성장이 더 쉬워지는 시대다. 기존의 권위는 계속 도전받는다. 핵개인은 자신만의 트랙을 설계하고 독립된 목표를 향한다.

고령화가 가속화하는 AI의 발전 속에서 관리자의 역할도 바뀐다. 현상 유지를 원하는 귄위적인 상사는 쓸모가 없어지고 전문성과 포용성을 갖춘 현명한 귄위자의 자리만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AI의 일상화는 인류에게 축복이지만, 나에게는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잘파가 온다’는 황지영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마케팅 전공 부교수의 신작이다. 이 책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후반에 출생한 Z세대와 알파 세대가 2025년이면 22억명에 달해 베이비붐 세대를 추월해 역사상 최대 소비 권력으로 부상한다고 단언한다. 이들 세대는 디지털 네이티브라는 특성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MZ세대보다 유사성이 높다. 어린 시절부터 로블록스, 주식, NFT 등을 경험하며 자본주의 감각을 키웠고, 사회적 이슈에 대해 온라인 상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특징도 지닌다. 이들의 영향력에 주목해 아마존은 10대를 위한 틴 로그인을 제공하며, 쇼피파이는 18세 미만 판매자 계정을 열었다.

잘파는 “알고리즘에 반기를 든 최초의 세대”다. 인위적 알고리즘에 대한 반감으로 이들은 유튜브를 시청할 때 로그인을 하지 않는다. 또한 미국 10대는 구글을 사용할 때 시크릿 모드로 물리는 인코그니토(익명) 모드를 주로 쓴다. 인스타그램의 광고와 필터 사진에도 염증을 느껴 비리얼, 테이프리얼, 가스 등의 새로운 소셜 미디어가 인기를 얻고 있다. 진정성과 인간적 연결, 착한 소통이야말로 이들이 원하는 가치다.

이밖에도 최고가와 최저가 상품을 동시에 구매하는 ‘크로스 쇼핑’과 친환경 브랜드를 쿨한 브랜드로 인식하는 ‘소셜 임팩트’, 친구도 연인도 아닌 관계에 편안함을 느끼는 ‘시추에이션십’ 등 이중적이고, 모순된 모습도 짚어본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