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어제의 패배 갚았다"…'대역전극' 용선 1,000m 북한 꺾고 銅
(항저우=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봐주지 않고 진짜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이기고 싶습니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카누 용선(드래곤보트) 여자 대표팀의 주장 김현희(대전광역시체육회)는 지난달 7일 열린 결단식에서 예상되는 '경쟁자' 북한과 재회를 앞두고 이같이 말한 바 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6일, 김현희와 대표팀은 정말로 북한을 누르고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재흥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이날 중국 저장성의 원저우 드래곤보트센터에서 열린 대회 용선 여자 1,000m 결승전에서 4분55초668의 기록으로 3위를 차지하고 동메달을 챙겼다.
4위가 북한이었다. 4분56초501의 기록으로 우리나라에 밀려 메달을 따지 못했다.
750m 지점까지 3위를 지킨 북한은 마지막 250m 구간에서 따라 잡히며 메달 없이 발길을 돌렸다. 250m 지점 5위였던 한국은 500m 지점을 4위로 넘었고, 결국 짜릿한 역전극을 썼다.
김현희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작년에 은퇴했다가 돌아왔다. 아이도 있고, 가정을 꾸리려 했는데 대한카누연맹의 연락을 받고 다시 노를 잡았다"며 "5년 전 남북 단일팀으로 우승했는데 이번에는 태극마크를 달고 북쪽 선수들이랑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말했다.
용선은 10명의 패들러와 키잡이, 드러머(북 치는 선수) 등 12명의 선수(후보 선수 1명 별도)가 한 팀을 이뤄 경쟁하는 종목이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는데, 2018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때 남북 단일팀이 꾸려져 여자 500m 금메달, 여자 200m와 남자 1,000m 동메달을 수확했다.
당시를 돌아본 김현희는 "2∼3명 정도 그때 함께 금메달을 딴 (북한) 선수들이 이번에 왔더라. 물론 이겨서 기쁘지만 우리가 2등을 하고, 그 친구들이 3등을 해서 전부 메달을 목에 걸었다면 어땠을까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김현희는 이날 특히 북한을 이기고 싶었다고 한다.
전날 500m 결승전에서 북한에 졌기 때문이다. 북한은 5위(2분26초900), 우리나라는 6위(2분27초260)였다.
김현희는 "내가 한 달 전에 '북한에 이기겠다'고 한 말이 있지 않나. 거기다가 어제도 져서 속이 정말 상했다"며 "그래서 오늘은 동생들이랑 이를 악물고 했다. 뱉은 말을 지킬 수 있어서 기쁘다"고 웃었다.
한편으로는 5년 전 동고동락했던 '옛정'이 생각나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다.
특히 4분51초448의 압도적 기록으로 1,000m 시상대 맨 위에 선 중국을 보면서 남북이 따로 팀을 꾸려 나온 상황에 대한 아쉬움이 들었다고 했다.
김현희는 "중국 선수들을 보면서 '우리가 5년 전에는 저 자리에 있었는데 그때가 정말 기적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마음 한뜻으로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서 그렇게 했던 것 같다"며 "그런 측면에서 마음이 마냥 좋지는 않았다"고 돌아봤다.
북한의 허수정, 정예성 등 5년 전 동료들과 경쟁자로 마주한 김현희는 "처음에 반가워서 인사도 했는데, 아예 아는 척을 안 하더라. 나중에는 그래도 보면 웃어주긴 했다"고 말했다.
하 감독은 북한에 750m 지점까지 밀렸지만 끝까지 경주를 포기하지 않은 선수들을 칭찬했다.
하 감독은 "북측이 만만치 않게 연습해서 나온 것 같더라. 선수들이 긴장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1,000m가 장거리라서 선수들이 차근차근 힘을 보탠 게 마지막에 역전으로 나타났다"고 기뻐했다.
이어 "준비기간이 짧았는데도 열심히 해준 선수들이 고마울 뿐"이라며 "사실 이거보다 더 잘했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고 웃었다.
여자팀이 딴 동메달은 이번 대회 용선 종목에서 한국이 챙긴 첫 번째이자 마지막 메달이다.
이번 대표팀에는 김현희를 포함해 이현주, 차태희(이상 한국체대), 정지원(수성고), 조수빈(안동여고), 주연우(구리여고), 주희(속초시청), 임성화, 탁수진(이상 전남도청), 윤예봄, 변은정(이상 구리시청), 김여진, 김다빈, 한솔희(이상 옹진군청)가 출전했다.
pual0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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