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민턴 전설 길영아 “아들 원호가 내 한을 풀어주길”
관중석에서 애 타는 심정으로 바라보던 한 여성은 “아들이 제 한을 풀어주겠죠?”라고 되물었다. 코트에서 동료와 함께 배드민턴 남자 복식 결승 진출에 기뻐하던 김원호(24·삼성생명)의 어머니 길영아 삼성생명 감독이었다.
길 감독은 6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빈장체육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배드민턴 남자 복식 4강전이 김원호와 최솔규(28·요넥스)의 2-0 승리로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나 “현역시절 유일하게 금메달을 걸지 못한 대회가 바로 아시안게임”이라면서 “우리 아들이 엄마 대신 금메달을 목에 걸 때까지 한 경기가 남았다”고 말했다.
길 감독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김동문과 혼합 복식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살아있는 전설이다. 여성 지도자로는 최초로 배드민턴 감독을 맡았던 그는 아들인 김원호가 아시안게임 결승전에 오른 것이 자신이 금메달을 따냈던 그 순간보다 긴장했던 듯 했다. 남자 복식 세계랭킹 15위인 김원호와 최솔규가 도쿄 올림픽 남자 복식 금메달리스트인 대만의 이양과 왕지린을 2-0(21-12 21-10)으로 꺾었을 때는 환호성이 절로 나왔다. 길 감독은 “두 손을 꼭 쥐면서 경기를 봤다”고 웃었다.
길 감독이 아들의 아시안게임 금메달 도전을 응원하는 것은 자신이 결승 문턱에서 넘어진 대회라는 사실도 영향을 미쳤다. 길 감독은 1994년 히로시마 대회에서 단체전 금메달은 땄지만 1990년 베이징 대회와 히로시마 대회 개인전 여자 복식에선 두 차례나 결승에 오르고도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당시를 떠올린 길 감독은 “아시안게임은 은메달만 두 번”이라면서 “그랜드슬램(올림픽·세계선수권대회·아시안게임·아시아선수권대회 모두 우승)에 딱 하나 부족한 게 아시안게임이었다. 단체전 금메달은 인정해주지 않더라”고 웃었다.
아들인 김원호도 반드시 7일 엄마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금메달을 목에 걸겠다는 각오다. 김원호는 “어머니가 기운을 불어넣어주셨다”면서 “올림픽 금메달은 있어도, 아시안게임은 없으신 데 꼭 제가 (집으로) 가져가겠다”고 다짐했다.
항저우 |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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