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줄 위의 잡스를 만나다'···안성맞춤 남사당 바우덕이 축제의 백미

안성=손대선 기자 2023. 10. 6.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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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시립 풍물단 줄타기 공연에 박수갈채···소통과 배려의 이벤트
전통·현대과 어우러진 음악 공연에 드론쇼까지
바가지 없는 착한 축제에 시식코너 즐비
농축산물 최대 30% 할인행사도 눈길
6일 오후 안성맞춤랜드 장터무대에서 안성시립 바우덕이 풍물단이 줄타기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 = 손대선 기자
[서울경제]

6일 오후 1시께 안성맞춤랜드 장터무대에서 안성시립 바우덕이 풍물단 소속 어름산이 서주향씨가 줄타기를 시작했다. 160cm 남짓한 키의 서씨가 3m 높이 허공에 쳐진 줄 위에 버선발을 들이밀었다. 수백 명의 관람객이 숨을 죽였다. 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잔디밭에 앉은 수십 명의 유치원생들이 양 손으로 입을 막았다. 한동안 균형을 잡느라 애쓰던 서씨는 이내 평지에서처럼 9m 길이의 줄 위를 왔다 갔다 했다. 줄타기를 '어름', 그 줄을 타는 사람을 어름산이라고 부르는 것은 얼음 위를 걷듯 줄타기가 위태롭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줄타기 15년 차라는 서씨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닌듯했다. 여유가 생긴 서씨는 땅 위의 매호씨(어름산이와 대화하는 상대)와 재담을 주고받았다. 줄 위의 고단한 인생을 토로하는 한편 시집가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가을 풍년과 구경 온 사람들의 건강과 행운을 빌었다. 한 관람객은 핀 마이크를 차고 관람객들에게 입담을 과시하는 서씨를 가리키며 ‘줄 위의 스티브 잡스’라고 불렀다. 허궁잽이(가랑이 사이로 줄을 타며 줄의 탄력을 이용해 높이 뛰는 동작)에서 많은 박수가 나왔다. 서씨가 가랑이 사이가 아파 끙끙대자 관람객들은 파란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크게 웃었다. 흥에 겨운 몇몇 노인들은 구경 값 치고는 과한 액면가의 지폐를 서씨에게 건넸다.

6일 오후 안성맞춤랜드 장터무대에서 안성시립 바우덕이 풍물단이 줄타기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 = 손대선 기자

서씨는 30분 동안의 공연 동안 총 세 명의 노인에게 돈을 받았다. 얼핏 노인들의 쌈짓돈을 터는 것 같아 보였지만 공연 말미에 “연말에 어려운 형편의 이웃들에게 전달하겠다”고 서씨가 말하자 더 큰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안성시립 바우덕이 풍물단과 관람객들의 호응은 이날 개막한 ‘안성맞춤 남사당 바우덕이 축제’를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곡예와 일정 선을 넘지 않는 재담. 공연자와 관람객의 소통. 이웃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로 마무리되는 공연은 텔레비전이나 영화관, 유튜브, OTT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벤트였다.

특별한 구경을 마친 마친 시민들은 한결 같이 호평을 내놓았다.

용인에서 조카와 함께 나들이 왔다는 김모씨(65·여)는 “줄타기를 처음 봤는데 작은 체구의 여자가 높은 데서 뛰고 노는 것이 특별하게 느껴졌다”며 “조카가 장애가 있는데 모처럼 좋은 구경을 시켜준 것 같다”고 말했다.

오산에서 친구와 구경 왔다는 20대 양모씨는 “몇 백미터 높이 산이나 빌딩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 것을 유튜브를 통해 보고 감탄하곤 했는데, 생각해 보면 너무 낯설고 속이 메스껍기도 했다”며 “바우덕이 줄타기는 너무 인간적이고, 공연하는 사람과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안성시민들은 이 공연에 남다른 자부심을 내보였다. 금산동에서 왔다는 김기산(83) 할아버지는 “어렸을 적에 남사당패가 공연하는 것을 보고 좋아해서, 축제 때면 일부러 온다”며 “남사당패 공연은 직접 봐야 좋다”고 말했다. 역시 금산동에서 온 70대 조모 할머니는 기자에게 “어름산이가 무슨 뜻이 줄 아느냐. 어름 위를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줄을 탄다고 해서 어름산이”라며 “더 많은 외지 사람들이 와서 우리 전통 문화에 대해 더 많이 알고 배워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6일 개막한 ‘2023 안성맞춤 남사당 바우덕이 축제’ 행사장으로 들어가는 관람객들. 사진 = 손대선 기자

올해로 23회째를 맞는 바우덕이 축제는 안성 출신으로 조선 최초의 남사당패 여성 꼭두쇠로 유명한 ‘바우덕이’의 예술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행사다. 이 때문에 남사당패 공연의 백미인 줄타기 만큼은 반드시 챙겨 봐야할 구경거리라고 안성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한글날인 9일까지 열리는 바우덕이 축제는 줄타기 외에도 다양한 볼거리로 꽉 채워져 있다.

주 행사장인 안성맞춤랜드에서는 남사당 바우덕이 주제 공연, 퓨전 국악콘서트, 바우덕이렉쳐 콘서트, 바우덕이 이야기 드론쇼 등을 즐길 수 있다. 제2 무대인 안성천에서는 남사당 공연, 전통예술 공연, 버스킹 공연, 에어바운스, 플리마켓 등을 경험할 수 있다.

축제하면 빼놓을 수 없는 먹을거리도 풍성하다. 안성시는 이른바 ‘바가지 축제’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 관내 상인들로 구성된 장터를 개설하고 음식값 상한선을 지키도록 했다. 모든 부스에서 한우 국밥이 8000원일 만큼 저렴하다. 5000원 이하 간식도 다양하다.

대한한돈협회 안성지부에서 운영하는 시식 코너. 사진 = 손대선 기자

여느 축제와는 차별화된 것은 시식코너다. 대형마트 시식코너를 방불케 할만큼 다양한 지역 음식을 무료로 시식할 수 있다. 대한한돈협회 안성지부 등 지역 단체 관계자들은 홍보를 위해 육우 구이, 불고기, 닭강정, 찐 계란, 닭갈비, 오리구이 등을 부스를 지나는 관람객들에게 수시로 건넨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시식코너를 한 바퀴 돌면 배를 채울 수 있을 정도다.

안성을 대표하는 한우를 비롯해 육류는 시중보다 30% 가량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포도, 배, 대추 등 지역 특산물도 비슷한 수준의 할인 행사를 행사장 곳곳에서 한다.

주 행사장인 안성맞춤랜드는 시 외곽에 위치해 있지만 주요 교통 거점마다 행사장을 오가는 셔틀버스가 상시 대기하고 있어 교통 여건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편이다. 행사장 주변으로 여섯 개의 대형 주차장을 조성해 놓아서 자가용 편으로 찾으면 편하다.

바우덕이 축제 위원장인 김보라 안성시장은 “올해 바우덕이 축제는 전통성을 강화한 공연과 퓨전음악, 시민참여 프로그램 등 어느 때보다 알찬 콘텐츠를 준비해 흥이 넘치고, 즐거움과 낭만이 더해지는 가을 축제로 관람객을 맞이하게 됐다”며 “안성맞춤 도시 안성에서 가족, 친지, 연인과 함께 일상의 행복을 만끽하시고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드시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안성=손대선 기자 sds110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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