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전자스핀 큐비트 개발…신개념 양자컴퓨터 초읽기
[이데일리 김윤정 기자] 양자역학을 이용해 초고속 연산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양자컴퓨터 기술은 AI, 첨단 반도체와 더불어 전 세계가 주목하는 첨단기술로 급부상했다. 이화여자대학교(총장 김은미) 연구진은 기존 양자컴퓨터와 설계 방식이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의 양자컴퓨터 플랫폼을 제시해 양자정보과학의 새 시대를 열어갈 전망이다.
일반 컴퓨터는 0 또는 1의 값을 가지는 비트를 기본 단위로 정보 저장 및 연산 수행을 하지만, 양자컴퓨터는 큐비트를 기본 단위로 0과 1이 중첩된 상태에서 연산을 수행할 수 있어 정보 저장량과 연산 속도 측면에서 슈퍼컴퓨터보다 뛰어난 성능을 자랑한다. 중국과학기술대학교는 슈퍼컴퓨터로 25억 년 걸릴 문제를 양자컴퓨터로 200초 만에 풀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러한 고성능 양자컴퓨터 기술을 상용화하기 위해 초전도양자접합, 이온트랩, 양자점, 양자위상상태 등 다양한 큐비트가 제시됐지만 양자정보과학의 역사가 짧은 만큼 어떤 종류의 큐비트가 최선일지는 어느 연구자도 답을 내리기 어려웠다. 이러한 큐비트의 집적도와 신뢰도를 높이는 공학적 연구는 물론 기존 큐비트의 약점을 보완하는 새로운 양자 플랫폼을 구현하기 위한 기초과학 연구도 과제로 남아 있었다.
IBS 양자나노과학 연구단은 고체 표면 위 단일 원자의 양자적 특성 분야 연구의 선두주자로서, 자체 개발한 최첨단 장비 ‘전자스핀공명 주사터널링현미경(ESR-STM)’을 이용해 단일 원자의 전자스핀을 제어하고 큐비트로 활용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지난 5월 발표한 바 있다. 다른 선행연구에서는 탐침과 직접 상호작용하는 원자가 아닌 멀리 떨어진 원자의 스핀 상태를 ‘원격제어’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이번에 발표한 연구에서는 기존 연구를 여러 큐비트 구조에 적용하는 ‘복수 큐비트’ 시스템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이 제시한 큐비트 플랫폼은 얇은 산화마그네슘 절연체 표면 위에 여러 개의 티타늄 원자들이 놓인 구조로 구현됐다. 연구진은 먼저 주사터널링현미경의 탐침을 이용해 각 원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조작해 여러 원자 스핀들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복수 티타늄 원자 구조를 만들었다. 이 구조에서 센서 역할을 할 티타늄 원자에 탐침을 두고 원격제어 방식을 적용해 멀리 떨어진 여러 큐비트들을 단 하나의 탐침으로 동시에 제어‧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각 큐비트는 센서 큐비트와 상호 작용하기 때문에 원격큐비트의 스핀 상태가 바뀔 때마다 센서 큐비트에 영향을 주고, 이 변화는 탐침을 통해 읽을 수 있다. 연구진은 이 플랫폼을 통해 양자정보처리에서 핵심이 되는 기본 연산인 ‘CNOT’와 ‘Toffoli’ 게이트를 구현했으며, 연구는 영하 272.75도의 온도에서 수행됐다.
이번에 제시된 플랫폼은 탐침을 이용한 상향식 집적 방식으로 큐비트 간 정보 교환을 원자 단위까지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고체 물질의 결정 결함을 피할 수 있고 개별 큐비트의 크기가 1nm 이하인 상태로 양자집적회로를 구현하는 점에서 기존 플랫폼과 차별화되며, 초전도체 등 특정 재료를 사용해야 하는 다른 플랫폼과 달리 다양한 원자를 큐비트의 재료로 선택할 수 있는 점도 특징이다.
공동 교신저자인 박수현 연구위원은 “원격으로 원자를 조작하면서 여러 개의 큐비트를 동시에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라며 “이전까지는 표면에서 단일 큐비트만 제어할 수 있었던 반면, 이번 연구를 통해 진정한 원자 단위에서 복수 큐비트 시스템을 구현하는 큰 도약을 이뤘다”고 말했다.
공동 교신저자인 배유정 연구위원은 “전자스핀 큐비트 플랫폼을 수십, 수백 큐비트까지 확장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며 “한국이 세계를 선도하는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어 양자정보과학의 새 시대를 열고, 혁신을 견인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한편 이화여대에 위치한 IBS 양자나노과학연구단은 2017년 1월 설립된 이래 물질의 표면과 계면에서의 원자 단위 양자 효과를 제어하는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단장인 안드레아스 하인리히 교수는 20년 가까이 미국 IBM 알마덴 연구소에서 연구활동을 진행하다 2016년 이화여대 물리학과 석좌교수로 합류했다. 2017년 조셉키슬리상, 2018년 파인만상을 수상했으며, 그가 수행한 ‘세상에서 가장 작은 메모리, 원자단위로 정보저장’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연구개발 순수기초‧인프라 분야의 최우수 성과로 선정된 바 있다. 올해는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 정도로 권위있는 상인 독일 훔볼트 연구상을 수상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인 ‘사이언스(Science)’에 6일(한국시간) 게재됐다.
김윤정 (yoon95@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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