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6·4 숫자만 봐도 기겁하는 중국
지난해 6월 3일 밤 팔로어가 1억명 가까운 중국 인플루언서가 아이스크림 홍보 생방송을 하고 있었다. 그가 아이스크림을 층층이 쌓고 옆에 둥근 과자를 붙인 다음 맨 위에 초코스틱을 비스듬히 꽂자 우연히 탱크 비슷한 모양이 만들어졌다. 그러자 갑자기 방송이 끊겼다. 천안문 사태 기념일(6월 4일) 전야에 중국 당국이 민감해진 탓일 것이다. 당시 한 시민이 탱크 부대를 가로막은 일이 천안문 사태의 상징이 됐다.
▶중국 당국은 특정 IP와 검색어를 차단하는 강력한 인터넷 통제 시스템을 갖고 있다. 이른바 ‘만리 방화벽(Great Firewall)’이다. 천안문 외에도 티베트, 대만, 신장위구르, 남중국해, 파룬궁, 홍콩 시위 같은 관련어가 중국 당국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말이다. 곰돌이 푸도 검열 대상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을 풍자할 때 자주 쓰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2011년 아랍에서 ‘재스민 혁명’이 일어나자 ‘재스민’ 등을 차단하면서 꽃집에서 재스민 꽃도 못 팔게 했다.
▶지난 1일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육상 100m 허들 결승전 직후 두 중국 선수가 포옹하는 사진이 사라질 때도 만리 방화벽이 가동했을 것이다. 금메달을 딴 선수가 은메달을 딴 동료를 포옹하는 사진이 중국중앙TV 위챗 계정에 실렸다가 1시간 만에 사라졌다. 포옹할 당시 두 선수 유니폼 속 숫자 ‘6′과 ‘4′가 나란히 붙으면서 우연히 천안문 사태 기념일인 ‘6·4′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일부 중국 네티즌은 당국 검열을 피하려고 다양한 창의적 방법을 쓰고 있다. 6월 4일을 변형해 ‘5월 35일’이라고 쓰거나 로마 숫자 표기로 ‘VIIV’로 쓰는 식이다. 백지(白紙)도 검열에 저항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20년 홍콩에서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가 일어났을 때 백지가 등장했고, 지난해 중국 전역에서 일어난 코로나 봉쇄 항의 때도 시위대는 백지를 들었다. 곰돌이 푸가 손에 든 백지를 보면서 어찌할 바 모르는 창작물도 등장했다. 백지의 의미를 곰돌이 푸만 모른다는 뜻을 담고 있다.
▶당국의 검열이 뜻밖 효과를 내기도 한다. 천안문 사태를 아예 몰랐던 중국 젊은 세대가 갑작스러운 사진 삭제, 라이브 방송 중단 등을 계기로 역사적 사실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불씨 하나가 광야를 불사른다’는 마오쩌둥이 애용한 말이다. 아직까지는 중국 당국이 작은 불씨들을 잘 끄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질 때가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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