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뇌과학] 노화성 기억 감퇴 되돌리는 '전기충격기'
일반적인 ‘노인’이라는 단어는 어떤 이미지인가. 주로 생물학적 ‘노화’와 연관되어 연상되므로 대부분 부정적인 편이다. 사실 노인이라는 단어 자체에도 ‘노화한 사람’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노인’의 뜻은 ‘나이가 들어 늙은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으며 사회적으로도 출생 후 어느 정도 이상 나이(약 60~65세)가 든 사람들은 노인으로 분류한다고 한다.
노인이 되면 감각과 운동, 인지 등 신체 기능들이 노화에 의해 크게 감퇴하고 노화에 따라 관련 질환에 걸리는 확률도 증가한다. 그래서 노인들은 비노인들에 비해 빠른 상황 대처 및 판단력이 떨어지며 학습과 기억 능력도 크게 감퇴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므로 빠른 사회 흐름에 뒤쳐져서 직접 현장을 뛰기 보다는 뒷방(?)에 눌러앉아 젊은이들의 배려나 받아먹어야 하는 존재라 여기는 경우도 많다. 과학 분야에서도 이러한 생각들은 예외가 아니어서 정부 출연 연구기관에서도 ‘임금피크제’라는 것을 두어서 대략 60세 정도가 되면 연구 현장에서 물러나라는 의미로 급여를 단계적으로 삭감한다.
그러나 눈을 돌려 유사한 연구활동을 하고 계시지만 60대에 접어들어도 열정적인 연구활동을 하시는 대학 교수님들을 볼 수 있는데 여러 생각이 들게 한다.
‘노인’은 나이뿐만 아니라 다른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인간의 경험이 지식의 양과 비례하던 현대사회 이전에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아무리 힘이 떨어지고 가끔 깜빡 하는 모습을 보이더라도 젊은이들에게는 찾아볼 수 있는 지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노인’이라는 단어에는 ‘현자’의 의미도 숨어있기도 한다. ‘현자’로서의 노인은 그들이 살아온 시간과 겪어온 경험에 비례한 지식을 머리 속에 보관하고 있으므로 오래된 ‘도서관’의 이미지와 비슷하다. 그래서인지 옛 아프리카 속담에 ‘노인 한 명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라고 한 것 같다.
예를 들어, 영화 ‘인턴’을 볼 때마다 우리는 노인에 대한 이미지를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70세의 시니어 인턴 ‘벤’(로버트 드니로)이 30세의 스타트업 경영자 ‘줄리’(앤 헤서웨이)에게 일과 생활 모두에 훌륭한 멘토 역할을 해내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벤’이 그 흔한 ‘고문’이나 ‘사외이사’와 같은 자리를 찾아다닌 것이 아니라 이제 막 성장하고 있지만 미래는 불투명한 회사에, 그것도 회사 조직 내에서 가장 초입단계인 ‘인턴’에 도전했다니! ‘벤’은 현대판 현자로서의 ‘노인’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다른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를 보면 현대 사회는 점점 노인들의 지혜의 가치가 점점 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제목은 예이츠의 시 ‘비잔티움으로의 항해(Sailing to Byzantium)’ 의 첫 구절에서 따온 것인데 이 시에서의 ‘노인’은 늙었지만 지성과 지혜를 갖춘 존재를 의미한다.
현대사회가 노인들을 위한 나라가 아닌 이유는 ‘(정신보다 육체적인 면에 열광하는) 젊은이’들로 가득한 세상은 불확실하고 혼돈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노인들의 지혜에 기대어 살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도 지혜로운 자(노인)가 예측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난 사건들이 줄을 잇는다.
이처럼 급속히 변화하고 다양하고 새로운 정보가 넘쳐나는 현대사회에서는 ‘도서관’이나 ‘백과사전’의 유용성이 점점 떨어지고 기존 지식에서 얻어진 지혜의 귀중함은 점점 빛을 바랠 것이다.
그러므로 아는 것은 많아도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고 저장하며 활용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정상적인 노인’이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노인들도 그동안 쌓아온 지식들에 의존하기 보다는 새로운 정보들을 빠르게 획득하고 저장하는 ‘학습 능력 회복’이 필요하다. 노화에 의한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할까.
안타깝지만 아직 그것을 구현할 수 있는 과학기술은 존재하지 않지만, 2022년 보스턴대 로버트 레인하트 교수 연구팀이 학술지 '네이처 신경과학(Nature Neuroscience)'에 발표한 연구결과(10.1038/s41593-022-01132-3)에 따르면 앞으로 그 가능성을 점칠 수 있게 되었다.
이 연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비침습적으로 뇌의 특정 부위를 며칠 자극하는 것만으로도 노인들의 기억력이 회복되었고 그 효과가 꽤나 지속되었던 것이다.
이 연구결과를 이해하려면 우선 기억이 종류에 따라 서로 다른 뇌부위에서 어떻게 처리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기억은 지속 정도에 따라 작업기억(또는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으로 분류되며 장기기억은 수 일 부터 평생 지속되고 작업기억은 길어야 수 분 안에 사라진다.
작업기억 중 일부는 장기기억으로 전환되어 오래 남을 수 있지만 대부분은 빠르게 휘발되어 버리는데, 학습정보가 장기기억으로 저장되기 위해서는 특정 뇌부위, 예를 들어 해마(hippocampus)와 해마와 연결되어 있는 여러 피질(cortex)들 같은 뇌부위의 활성이 매우 중요하다. 다른 한 편으로는 단기기억은 주로 전두엽(frontal lobe) 내 여러 피질 영역들의 활성을 통해 형성되었다가 빠른 시간 사라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의 경우 기억 정보가 유지되는 것과 높은 연관성이 있는 뇌 활성 패턴이 작업기억과 장기기억 관련 뇌 부위에서 각각 발견된다고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아래마루소엽(inferior parietal lobe) 내 쎄타파동 (theta oscilation; 4~8 Hz)은 작업기억 정보 유지에 중요한 것으로 보이며, 배외측전전두엽(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 내 감마파동 (gamma oscilation; 30~100 Hz)은 장기기억에 연관된 것으로 알려진 것이다.
PL과 같은 피질 부위에서의 쎄타 활성은 작업기억 정보를 담고 있는 신경활성이 여러 신경세포에서부터 발생하고 그것들의 총 합이 쎄타 활성으로 측정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기억 학습 중에 IPL의 활성을 방해하면 작업 기억 정도가 크게 낮아지므로 (https://doi.org/10.1162/jocn_a_00304) 이 부위에 기억 정보를 끌어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상태, 세타 활성과 같은 신경활성을 유도한다면 기억 증강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해볼 수 있다.
DLPFC는 해마와 함께 장기기억 정보를 저장하는 장소로서 기억 정보들은 초기에 해마를 포함한 측두엽 내에 저장되었다가 점차 DLPFC와 같은 피질 영역과 측두엽간 연결성 강화를 통해 안정적으로 저장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 그 자세한 메커니즘은 잘 모르지만 기억 정보를 구성하는 각 요소들은 해마 내 감마파동과 같은 빠른 빈도의 신경활성과 연관성이 높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10.1038/nn.4374).
쎄타 활성을 조절하면 기억정보들 간 구분이 확실해져서 정보간의 충돌이 낮아지고 이는 특정 정보를 다른 정보들과 구분하여 ‘선택적’으로 저장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여겨지고 있다.
DLPFC내 감마파동의 활성이 정확히 어떻게 장기기억과 관련되어 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DLPFC가 단기기억의 여러 정보들의 조직화를 증가시킴으로써 장기기억으로의 전환을 도울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장기기억 정보를 인출할 때도 DLPFC와 같은 피질 영역들의 역할이 필수적이므로, 기억과 관련된 DLPFC의 특정 활성 패턴은 정상적 기억 기능이 유지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노화가 진행되면 이러한 단/장기 기억과 관련된 뇌 속 기전들이 함께 또는 선택적으로 약화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특수한 방법으로 노화에 의해 약화된 것들을 다시 강화시키면 노화성 기억 감퇴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 노화에 의해 약화된 학습과 기억 관련 뇌활성 조절 기술은 어떻게 가능할까.
뇌의 활성을 비침습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기술들이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지만 그 중 가장 각광받고 안전한 것으로 검증된 기술들은 크게 전류 또는 자기장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뇌의 신경활성은 전기적 성질을 띠고 있으므로 두 방식 모두 뇌의 특정 부위 신경회로망의 활성도를 충분히 조절할 수 있게 된다. 모두 머리 밖에서 수술을 거치지 않고 전류나 자기장을 흘려줌으로써 뇌 활성을 조절할 수 있는 기술들이다.
따라서 이전부터 연구자들은 단/장기 기억과 관련된 뇌 부위에 기억과 관련된 뇌 활성 패턴을 인위적으로 조절하여 기억 개선 효과를 유도해보려 노력해왔다. 문제는 그 결과가 실험 조건이나 연구 대상에 따라 일정하게 도출되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노인을 대상으로 한 기억 개선 연구의 숫자는 많지도 않았다. 또한 기술적 한계로 인해 정밀하게 뇌의 특정 부위에 활성을 조절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태였다.
레인하트 교수 연구팀은 정밀도가 기존보다 매우 높은 기술 중 하나인 고해상도 경두개 교류자극(HD-tACS; high-definition transcranial alternating current stimulation) 기술을 활용하여 노인의 저하된 기억 개선을 유도해보기로 하였다. HD-tACS는 기존의 경두개 교류 자극 (tACS)보다 특정 뇌부위에 원하는 파동의 활성을 일으킬 수 있도록 개발된 비침습적 뇌자극 기술이다.
연구팀은 65~88세 연령의 150명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였으며 이중맹검(double-blind)으로 수행되었다. 대상자들은 특정 질환을 앓고 있지 않는 정상적 노인들이지만 모두 노화성 기억 감퇴 또는 경도인지장애를 갖고 있었다.
고해상도 경두개 교류자극은 20분간 4일 연속으로 가해졌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작업기억과 장기기억은 IPL 및 DLPFC영역의 특정 활성들에 의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노인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IPL과 DLPFC 영역에 8번의 HD-tACS를 쎄타파(4Hz)와 감마파(60Hz)를 유도하도록 처리 받았다.
그 결과, IPL에 쎄타파를 유도하는 HD-tACS를 받으면 노인들의 작업기억이 유의미하게 증가하였다. 기억 증강 효과는 자극을 받은지 3일째부터 확연히 관찰되었고 1달 후에도 유지되었다. DLPFC에 감마파를 유도하는 HD-tACS를 받은 경우는 장기기억이 2일차부터 증가하고 역시 1달째에도 그 효과가 유지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개인별로 그 효과 차도 엿볼 수 있었는데, 원래 낮은 기억력을 갖고 있었던 노인들은 HD-tACS를 받으면 더 높은 기억 증강효과를 얻을 수 있기도 하였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HD-tACS의 효과가 어느 뇌부위 및 뇌 활성 파장을 유도하느냐에 따라 매우 선택적으로 기억 증강 효과를 보인다는 것이다. IPL에 쎄타파를 유도할 경우에만 작업기억이 증가하지만 감마파를 유도하면 효과가 없었다. 마찬가지로 DLPFC에 감마파를 유도할 경우에만 기억이 증가하지 쎄타파의 효과는 유의미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tACS에 의한 신경회로의 전기자극이 무작위적으로 뇌기능을 변화시키거나 기억과 관련된 뇌활성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단기 기억과 장기기억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서로 다르다는 기존의 연구결과 및 작업기억과 장기기억이 각각 특정 신경활성에 의한 시냅스 가소성 형성에 의해 조절될 것이라는 기존 동물실험 결과들과도 어느 정도 유사성을 보인다.
기억증강 효과가 1달까지 유지되는 것은 역시 장기 시냅스 가소성의 효과에 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장기 시냅스 가소성은 새로운 유전자 및 단백질의 변화를 수반하며 신경회로망의 구조적 변화를 야기한다. 따라서 HD-tACS에 의해 새롭게 발생된 신경회로망 활성은 장기 시냅스 가소성을 조절하는 기전들의 스위치를 켜게 되어 뇌기능 변화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게 만들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특히나 노화성 인지기능 감퇴 정도가 훨씬 낮았던 노인들에게서 HD-tACS에 의해 더 높은 기억 회복 및 증강 효과를 얻었다는 결과는, 노화에 의한 기억 저하는 장기 시냅스 가소성 메커니즘이 노화에 의해 많이 저하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4일 동안의 뇌자극 과정 중 기억 증강효과의 속도와 1달 후 증가한 기억 능력의 정도는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갖기도 하였다. 이러한 결과들은 노화로 인해 저하된 시냅스 가소성 메커니즘은 회복 불가능한 것이 아니고 다시 회복될 수 있으며 기억 저하의 정도가 심하더라도 HD-tACS에 의해 다시 복구된다면 기억 증강 혜택을 가장 크게 누리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기존에 보고되었던 연구결과들에서는 비침습적 뇌자극에 의한 기억 증강 효과들이 항상 일정하게 유도되지 못했었기 때문에, 레인하트 연구팀의 연구결과가 과연 신뢰할만한 것인가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 독립적인 연구를 통해 재현되는가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연구에서는 특정 종류의 기억정보(단어 회상)의 회복을 시험했는데, 앞으로 다른 종류의 정보들의 학습과 기억에도 효과가 있는지 궁금하다. 특정 또는 다양한 종류의 학습과 기억을 향상시키는데 특정 파장의 뇌활성을 증가시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면 이와 관련된 신경생물학적 메커니즘도 깊게 이해할 필요도 있다.
HD-tACS와 같은 비침습적 자극에 의한 노인의 기억 향상이 계속 재현되는 것으로 확인된다면, 한국과 같은 가파른 고령화에 접어든 사회에서 노화성 인지기능 감퇴로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혜택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필자소개
박형주. 한국뇌연구원 신경혈관단위체 연구그룹에서 근무 중이며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뇌인지과학전공 겸임교수다. 현재 생쥐 모델을 활용해 학습과 기억을 조절하는 세포간 상호작용의 분자 기전을 연구하고 있으며, 뇌 속 기억 형성 및 변화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일반인들에게 소개하는 저술 작업도 같이하고 있다.
[박형주 한국뇌연구원 한국뇌연구원 신경혈관단위체 연구그룹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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