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공인중개사 찬바람

이명희 기자 2023. 10. 6.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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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8월 복덕방 앞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노인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부동산중개사무소가 복덕방(福德房)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복덕방은 말 그대로 복과 덕이 있는 방이란 뜻이다. 과거엔 어르신들이 심심풀이 삼아 복덕방을 냈다. 복덕방에선 동네 노인들이 모여 장기나 바둑을 두며 하루를 보내다가 사람들이 오면 안내를 했다. 방 한 칸이라도 계약이 성사되면 수고비로 복비(福費)를 받았는데, 술값·담뱃값 수준으로 주는 대로 받았다. 소설가 이태준의 <복덕방>에도 복덕방 주인 서 참의 등 노인 3명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이들은 언제 누가 집 보러 가자고 할지 몰라 늘 밖을 내다본다. 1960~1970년대 복덕방은 사랑방과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정보 교류의 장이었다.

복덕방이 점차 사라진 것은 1980년대부터다. 강남개발 붐이 일며 ‘복부인’과 ‘떴다방’이 등장했다. 결국 1983년 ‘부동산중개업법’이 제정돼 공인중개사 제도가 도입됐다. 1985년 1회 시험엔 15만여명 응시에 6만여명의 합격자가 나왔다. 공인중개사들은 복덕방과 차별화를 위해 부동산중개업으로 간판을 바꿔달았다.

공인중개사 인기는 부동산 업황에 따라 등락을 거듭했다. 집값이 오르면서 2021년 정점을 찍었다. 한때 ‘중년 고시’로 불리다 연령대가 낮아지면서 ‘제2의 수능’이 됐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렇게 인기가 끝나지 않을 듯했던 공인중개사 시험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6일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28일 치러지는 제34회 공인중개사 시험 응시자가 2년 만에 10만명가량 줄었다. 올핸 문 연 중개사보다 문 닫은 곳이 더 많다고 한다. 부동산시장 침체에다 중개사들이 전세사기에 가담해 신뢰도가 추락한 영향으로 보인다.

청년들의 죽음을 부른 전세사기에서 공인중개사들이 사기꾼들과 한통속이 돼 애먼 사람들만 피해를 입었다. 옛 복덕방처럼 고객에게 복을 나눠주지는 못할망정 사기꾼과 공범이라니 여간 분노가 치미는 게 아니다. 또 하나 요상한 건 중개수수료 체계다. 어째서 부동산 거래가의 일정 비율로 법정 중개수수료가 정해져 있는가 말이다. 비싼 집이라고 품이 더 들어갈 일도 없지 않은가. 게다가 양쪽에서 수수료를 챙긴다. 국토교통부가 이달 말 공인중개사 제도 개선책을 발표할 거라고 예고했다. 피부에 와닿는 제대로 된 방안을 내놓길 바란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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