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만의 대법원장 국회 임명동의 무산 ‘부결당론’ 민주·정의당서 무더기 반대 비상장주식 신고 누락 등 논란 못 넘어 새 후보 지명·청문회 등 두 달 이상 소요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사법부 공백’ 상태가 장기화할 전망이다.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것은 1988년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 이후 35년 만이다. 새 대법원장 후보자가 지명돼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는 등 다시 관련 절차를 마치려면 최소 두 달가량 소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6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이 후보자 임명동의안은 출석 의원 295명 중 중 찬성 118명, 반대 175명, 기권 2명으로 부결됐다. 임명동의안은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 찬성이 가결 요건이다. 표결은 무기명 전자투표로 이뤄졌다. 임명동의안 부결은 야권에서 반대표가 대거 나온 결과로 풀이된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를 열어 ‘부결’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가결 당론’을 정했지만 의석수에서 야당에 밀렸다. 정당별 의석수는 이날 기준 민주당 168명, 국민의힘 111명, 정의당 6명이다.
◆이균용, 헌정사 두 번째 대법원장 낙마
이 후보자는 헌정사 두 번째 대법원장 낙마 사례가 됐다. 이 후보자는 국회가 임명동의안을 부결한 지 약 한 시간 뒤인 이날 오후 3시55분쯤 청문회 준비팀 사무실로 사용한 서울 서초구의 한 빌딩 앞에서 심경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빨리 훌륭한 분이 오셔서 대법원장 공백을 메워 사법부가 안정을 찾는 것이 저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깜짝 지명’으로 화제를 모았던 이 후보자는 앞선 청문회 등서 비상장주식 신고 누락 등 개인적 문제로 논란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남부지방법원장·대전고등법원장을 거쳐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있던 이 후보자를 8월22일 지명했는데, 법원 안팎에서는 대법관 출신이 아니고 법원행정처 근무 경험도 없는 이 후보자지명을 두고 의외라는 반응도 나왔다. 일각에서는 대통령과의 친분으로 지명된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됐다.
이 후보자는 처남이 운영하는 가족회사 옥산과 대성자동차학원의 비상장주식 9억9000만원 상당을 본인과 배우자, 두 자녀가 보유한 사실을 재산 신고에서 누락한 사실이 크게 부각되며 곤욕을 치렀다. 이 후보자는 8월29일 직접 이 같은 사실을 밝히며 대응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일가족이 처가 회사로부터 2013년∼2022년 총 3억456만원을 배당금으로 수령했다는 사실도 청문 과정에서 추가로 공개되면서 비판 여론이 거세졌다.
지난달 19∼20일 열린 청문회에서는 자녀에게 편법 증여를 했다는 의혹과 더불어 건국절 논란 등에서 역사관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과거 일부 항소심 판결에서 성범죄 피고인의 형량을 합리적이지 않은 이유로 감형해준 사실이 알려지고 배우자와 자신의 부동산 투기 의혹까지 이어지면서 여론이 점차 악화했다.
여야의 극심한 정치적 대립 국면도 이 후보자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했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후폭풍 속에 민주당 내에서는 자질 논란 등을 명분으로 내세워 이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부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반대급부로 힘을 얻었다. 추석 연휴 이후에도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으면서 민주당은 이날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에서 부결을 당론으로 채택했고 결국 의원 175명이 부결에 표를 던졌다.
대법원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것은 35년 만이다. 1988년 정기승 대법관이 여소야대 정국에서 군사정권에 협력했다는 비판 여론에 낙마한 것이 이제까지 유일했다. 이 후보자가 낙마하면서 대법원장 임명은 원점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절차를 밟아야 한다. 검증을 거친 인사를 윤 대통령이 지명한 후 인사청문회를 거쳐 다시 본회의에서 국회 동의를 받기까지 최소 한 달이 소요된다. 사법부 수장 자리가 12일째 비어있는 상황이라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윤 대통령이 이미 검증을 거친 인사 중 차기 대법원장 후보를 지명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상반된 여야 반응
대통령실은 이날 “반듯하고 실력 있는 법관을 부결시켜 초유의 사법부 장기 공백 상태를 초래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실 이도운 대변인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 직후 브리핑을 통해 “이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야당의 일방적 반대로 부결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변인은 “그 피해자는 국민이고 따라서 이는 국민의 권리를 인질로 잡고 정치 투쟁을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데 대해 “이재명 대표 사법 리스크 방탄을 위한 의회 테러 수준의 폭거”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김기현 대표는 임명동의안 부결 직후 국회 로텐더홀 앞 계단에서 열린 규탄대회에서 “거대 의석 권력을 남용하는 난폭한 다수의 횡포에 국가의 기본 질서까지 흔들리고 있다”며 이같이 비판했다. 윤재옥 원내대표도 “민주당이 민생의 다급함보다 윤석열 정부 국정을 발목 잡아 정쟁을 지속하기 위한 정치 논리를 택했다”며 “부결은 자신들이 해놓고 책임은 대통령이 져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지만, 국회 폭주에 대한 치졸한 변명”이라고 비난했다.
전주혜 원내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이재명 대표 방탄 대법원장을 원하는가”라며 “민주당이 사법부를 제 발아래 두려는 반헌법적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전 원내대변인은 “민주당의 불순한 의도 때문에 ‘정의와 인권의 최후 보루’라는 사법부가 대법원장 장기 공백 사태라는 초유의 비상 상황을 맞게 됐다”며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한 흑역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이어 “사법부는 ‘이재명의, 이재명에 의한, 이재명을 위한’ 기관이 아니다”라며 “대법원장마저 이재명 대표 방탄을 위해 제 입맛에 맞는 인물로 알박기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야당은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으며 차분함을 유지하려는 모습이다. 표결 이후에도 부결을 주도한 민주당 의원들은 ‘목표 달성’에도 불구하고 손뼉을 친다거나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부적격 인사라고 판단한 데 따른 반대표 행사지만, 35년 만의 대법원장 임명동의안 국회 부결이 불러올 사법 공백 우려를 의식해 마냥 들뜬 모습을 노출하는 것을 피하려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민주당은 이날 임명동의안 부결 후 논평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불통 인사가 자초한 결과”라며 “애초에 국회 동의를 얻을 수 있는 후보를 보냈어야 마땅하다”고 평가했다. 윤영덕 원내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헌정사상 두 번째 대법원장 임명동의안 부결을 무겁게 받아들이기를 바란다”며 “대법원이 윤석열 정부를 지원하고 뒷받침하는 곳일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회는 도덕성과 능력 모든 점에서 부적격인 이 후보자에 대한 임명 동의요청에 부결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며 “국민의힘은 임명동의안 부결에 ‘발목잡기’라며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 원내대변인은 또 “누군가 발목을 잡았다면 그건 바로 윤석열 정부”라며 “스스로 발목을 잡아 쓰러져놓고 누구에게 화풀이하고 있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임명동의안 부결은 삼권분립과 사법부 독립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는 결과”라며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발목잡기 운운하지 말고, 사법부 수장의 품격에 걸맞은 인물을 물색하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변인도 “사법부 장기공백을 초래한 장본인은 윤 대통령”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회 임명 동의 거부를 수용하고, 우리 헌법과 사법 정의, 시민적 상식에 부합하는 법관을 대법원장 후보자로 추천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