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의 공짜점심] 독이 될 PF 보증 확대

김유신 기자(trust@mk.co.kr) 2023. 10. 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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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는 빚보증을 서는 게 아니다'는 말이 있다. 보증을 잘못 섰다가 돈도 잃고 친구도 잃은 사례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기에 나온 말이다. 보증은 사인 간에만 이뤄지는 건 아니다. 기업과 국가기관도 보증을 선다. 특히 부동산처럼 큰돈이 움직이는 시장에서는 보증이 더 활발히 이뤄진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부동산과 관련해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개인과 기업이 자금을 원활하게 확보할 수 있도록 보증을 서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최근 HUG가 위기에 처했다. 지난해 13년 만에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는 적자폭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보증을 잘못 선 탓이다. 문제가 된 보증은 전세보증금반환보증(전세보증보험)이다.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은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경우 HUG가 대신 갚아주는 보증이다. HUG가 집주인 대신 갚아준 돈은 2019년부터 크게 늘기 시작했다. 이유가 뭘까. 보증 가입 조건 변화 때문이다.

HUG는 2017년 2월 아파트와 연립·다세대주택 모두 전셋값이 매매가의 100%까지 전세금 반환보증 가입이 가능하도록 조건을 완화했다. 보증 가입 문턱을 낮춰 서민들의 보증금을 더 넓게 보호하겠다는 취지였다. 이 같은 선의는 HUG에 독이 됐다. 전세가와 매매가 차이가 없는 집은 곧 깡통전세 위험이 큰 집이다. 이런 집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통상 세입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HUG의 보증 덕분에 이런 위험 주택에도 세입자들이 부담 없이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집주인들도 HUG의 보증을 근거로 매매가만큼 전세가를 높일 수 있었다. HUG가 임대인과 임차인이 각자 짊어져야 할 리스크를 오롯이 떠안은 셈이다.

2017년 보증 가입 조건 완화의 후폭풍은 전세 만기 2년 뒤인 2019년부터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HUG가 2019년 집주인 대신 갚아준 보증금 액수는 2837억원으로 직전 해(583억원)의 4.8배에 달했다. 올해는 전세사기와 역전세 여파까지 더해져 HUG의 대위변제액이 3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느 순간 HUG가 이런 부담을 못 버티고 보증상품이 사라지거나 축소되면 피해는 다시 임대인과 임차인 몫이 된다.

전세보증금반환보증과 유사한 부실 사태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보증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추석 직전에 발표한 주택 공급 대책에서 PF 보증 조건을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PF 보증은 부동산개발사업자가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서주는 보증이다. 사업자가 자금을 쉽게 확보할 수 있도록 보증 문턱을 낮춰 개발사업에 속도를 내도록 한다는 취지다. 선의는 독이 될 가능성이 높다. 대출 어려움을 겪는 개발사업 상당수는 사업성 확보가 어려운 곳이다. 분양가는 점점 높아지는데 수요는 뒷받침되지 않으니 사업이 중단되고 금융사도 대출을 꺼리고 있다. 고금리 속 가계부채로 인해 수요 부양도 어렵다. 결국 질서 있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부동산 활황기에 사업자들이 비싸게 사들인 땅이 매물로 나와 분양가 인상의 또 다른 요인인 땅값이 낮아지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런 와중에 PF 사업장에 대한 보증 남발은 부동산 시장 리스크를 국민 전체가 짊어지도록 하는 결과를 낳는다. 공짜 점심은 없다.

[김유신 부동산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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