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모르는 대법원장 후보자…오명 안고 낙마한 이균용

이혜영 기자 2023. 10. 6. 16:5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32년간 법관으로 있었지만 ‘위법 의혹’ 앞에 불명예 퇴장

(시사저널=이혜영 기자)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9월20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몰랐다" "송구하다"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결국 국회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다. 헌정사 두 번째 대법원장 낙마다. 인사청문회에서 재산 관련 의혹을 비롯해 성범죄 판결, 편법증여, 역사관 등 쏟아지는 논란을 제대로 뚫지 못한 이 후보자는 '법을 잘 모르는 대법원장 후보자'라는 오명을 안고 물러나게 됐다.   

6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이 후보자 임명동의안은 출석 의원 295명 중 중 찬성 118명, 반대 175명, 기권 2명으로 부결됐다.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것은 1988년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 이후 35년 만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월22일 서울남부지방법원장·대전고등법원장을 거쳐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있던 이 후보자를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했다. 이 후보자는 부산중앙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 16기로 법관에 임용된 후 32년 간 법관으로 활동했다. 보수 성향의 법관 모임인 '민사판례연구회' 출신으로 일본 게이오대 연수를 두 차례 받는 등 일본 법조인들과 교류가 많아 법원 내 대표적 '지일파'로 분류된다. 

이 후보자가 차기 대법원장으로 지명되자 법조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의외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대법관 출신이 아닌데다 법원행정처 근무 경험도 없는 등 전례에 비춰 뜻밖이라는 반응이 뒤따랐다.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과의 친분이 후보자 지명에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이 후보자는 윤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1년 후배로, 재학 당시에는 별다른 친분이 없다가 법조계에서 활동하며 가까워진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은 친분 관계에 따른 인선 의혹을 일축하며 "이 후보자는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두 번이나 역임하는 등 32년간 오로지 재판과 연구에만 매진해온 정통 법관"이라며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신장하는 데 앞장서 온 신망 있는 법관"이라고 엄호했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10월6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이는 1988년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 낙마 이후 두번째 사례로, 35년 만의 대법원장 공백 사태를 맞게 됐다. 사진은 이날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 연합뉴스

하지만 인사청문회에서 확인된 각종 논란과 태도, 답변은 '신망'을 주기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다. 청문회를 앞두고 이 후보자가 과거 일부 판결에서 성범죄 피고인 형량을 젊다는 이유 등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로 감형해준 사실이 확인되고 배우자와 자신의 부동산 투기, 재산신고 고의 누락 의혹 등이 불거졌다. 

특히 처남이 운영하는 가족회사 옥산과 대성자동차학원의 비상장주식 9억9000만원 상당을 본인과 배우자, 두 자녀가 보유한 사실을 수 년간 재산신고에서 누락하다 늑장 신고한 사실이 드러나며 거센 질타를 받았다. 

이 후보자는 '보유 사실을 몰랐다'는 취지로 해명했지만, 야당은 법을 잘 모르는 판사에 준법정신이 부족한 대법원장 후보자라며 맹공했다. 

지난달 19∼20일 열린 청문회에서 이 후보자 일가족이 처가 회사로부터 2013년∼2022년에 걸쳐 총 3억여원을 배당금으로 수령했다는 사실까지 추가로 공개되며 입장은 더 난처해졌다. 야당 의원들은 10년 간 수억원대의 배당금을 받고도 처가 회사 주식 보유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했고 여론도 갈수록 악화됐다. 

자녀에게 편법 증여를 했다는 의혹과 비전공자인 아들의 김앤장 인턴 활동 논란, 건국절 등 역사관 문제까지 동시다발적으로 터졌다. 

이 후보자는 이틀간 진행된 청문회에서 "몰랐다" "송구하다"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신고해야 한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등 답변을 반복했고, 급기야 야당 의원으로부터 "판사가 법을 몰랐다는 말을 왜 그렇게 자주 하느냐"는 질타가 나오기도 했다. 청문회 답변 과정에서 웃음을 보이는 등 이 후보자의 태도도 논란이 됐다. 

이 후보자 임명동의안 표결의 키를 쥔 더불어민주당은 이 후보자에 대해 부적격 판단을 내리고 윤석열 대통령의 또 다른 인사 참사로 규정했다. 

여야의 강경 대치 국면에 표결 날짜가 두 번이나 연기되면서 이 후보자는 막판 '가결 호소' 목소리를 내며 뒤집기에 나섰고 비상장주식 처분 계획도 밝혔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들과 청문회준비단 소속 판사들이 여의도로 총출동해 설명자료를 배포하는 등 위법 논란을 무릅쓰고 총력전을 벌였지만 끝내 부결을 막아내진 못했다.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 가결 후폭풍을 마주한 민주당이 국회 동의 없이는 임명 불가능한 대법원장을 놓고 단일대오를 형성하려 한 점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이 후보자가 낙마하면서 제17대 대법원장 임명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검증을 거친 인사를 윤 대통령이 지명한 후 인사청문회를 거쳐 다시 국회 동의를 받기까지 최소 한 달이 소요될 전망이다. 민주당은 사법부 공백 우려가 있지만 부적격 후보자가 사법부를 이끄는 것이 더 문제라며 '제2, 제3 부결'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 퇴임 후 사법부 수장 자리는 이날 기준 12일째 공석이다. 이대로라면 대법원장 공백이 해를 넘길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낙마한 이 후보자는 이날 오후 청문회준비팀 사무실로 사용한 서울 서초구 한 빌딩 앞에서 "빨리 훌륭한 분이 오셔서 대법원장 공백을 메워 사법부가 안정을 찾는 것이 저의 바람"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