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대법원장 공백 우려에도 ‘당론 부결’ 밀어붙인 배경은?

김윤나영 기자 2023. 10. 6.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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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 공백보다 부적격 후보 인준이 더 큰 문제” 판단
6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표결 결과가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국회 인준안이 부결된 배경에는 ‘사법부 공백보다 부적격 후보자 인준이 더 큰 문제’라는 더불어민주당의 판단이 작용했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이 제 친구의 친구’ 발언, ‘성범죄자 봐주기’ 판결과 재산신고 누락 등 각종 논란으로 부결을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또 엄밀한 검증 없이 지인을 대법원장 후보자로 임명한 윤석열 대통령도 35년 만의 대법원장 공백 사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 후보자 인준안은 이날 본회의에서 재석 295표 중 찬성 118표, 반대 175표, 기권 2표로 부결됐다. 민주당(재석 167명)과 정의당(6명) 의원들이 무기명으로 이뤄진 투표에서 대거 반대표를 찍은 것으로 보인다. 111석의 소수 여당인 국민의힘으로선 부결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은 국회 재적 의원 과반 출석, 과반 찬성으로 가결된다.

이날 부결은 예견된 결과였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이날 본회의 직전 각각 의원총회를 열고 부결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사법부 공백 우려 때문에 자격 없는 인사를 사법부 수장에 앉히는 것은 사법 불신이라는 더 큰 부작용을 불러올 것”이라며 부결을 주장했다. 대법원장 공백에 따른 야당 책임론을 정면 돌파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야당은 우선 이 후보자가 도덕성과 자질 면에서 부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성범죄자 감형 판결과 재산 편법·탈법 소유·운영 논란 등이 대표적이다. 민주당 소속 이 후보자 인사청문특위 위원 전원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불투명한 가족회사의 재산형성 과정, 법관 시절 아내의 국세청 체납, 가족회사의 편법과 탈법적 운영, 심지어 자녀가 해외 영주권을 언제 땄는지도 몰랐다는 사람이 어떻게 사법부 전체를 아울러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나”라며 “믿기 힘든 역사인식과 성인지 감수성도 묵과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 후보자의 지난 판결들은 반기본권적이며 반소수자적”이라며 “강남역 살인사건과 미투로 촉발된 시대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인사에게 사법 정의를 맡길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 후보자는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장에서 “윤 대통령이 제 친한 친구의 친구”라고 말해 사법부 독립성 훼손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민주당은 “대법원장은 사사로운 ‘친구 찾기’를 위한 자리가 아니다”라고 반발했다.

윤 대통령이 국회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17명의 장관급 인사 임명을 강행한 것도 민주당의 부결 당론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전날에는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 임하던 도중 퇴장해 청문회가 파행되는 초유의 사태도 빚어진 터였다. 이 때문에 민주당 내 대법원장 인준 부결에 대한 ‘야당 책임론’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소수에 그쳤다.

민주당은 부결 책임을 윤 대통령에게 돌렸다. 도덕성 문제 등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채 지인을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한 윤 대통령에게 사법부 공백 사태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윤영덕 원내대변인은 부결 직후 브리핑에서 “삼권분립과 사법부 독립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는 당연한 결과”라며 “윤 대통령은 헌정사상 두 번째 대법원장 임명동의안 부결을 무겁게 받아들이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 후보자 인사청문특위 민주당 간사인 박용진 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윤 대통령에겐 자업자득, 국민에게는 천만다행”이라고 논평했다.

윤 대통령의 장관 인사 밀어붙이기에 야당이 대법원장 인준안 부결로 맞서는 형국이 되면서 여야의 대치는 더욱더 가팔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이 요구하고 있는 이재명 대표와 윤 대통령의 회동 등 여야 협치의 가능성은 더욱 멀어졌다. 특히 여당은 사법 공백 책임론을 키우며 야당에 대한 공세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이날 부결 직후 국회에서 규탄대회를 열고 “사법공백 야기시킨 민주당은 사죄하라” 등 구호를 외쳤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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