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유치로 ‘실리콘 아일랜드’ 부활··· 60조원 경제효과 창출
정부 첨단산업 지원에 규제 완화 기여
TSMC, 내년 9조원 투자 공장 가동
도쿄일렉트론·에바라 등 신공장 건설
80개 기업 거대 반도체 공급망 형성
땅값 32% 오르고 신규고용 활발
40년 전 일본 반도체의 전성기를 이끌며 ‘실리콘 아일랜드’로 불렸던 규슈가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의 진출을 계기로 일본 반도체 장비 업체들이 앞다퉈 규슈에 신공장을 짓는 데 이어 해외 주요 기업들도 생산 거점화를 추진하고 있다. 규슈가 기업들의 잇딴 투자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규제완화 등에 힘입어 첨단 산업의 중심지로 다시 일어설 것이라는 기대감이 인적·물적 자본을 끌어들이며 관련 산업은 물론 금융·부동산 등 지역 경제 전반으로 파급 효과가 확산되는 모습이다.
5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TSMC가 내년 가동을 목표로 하는 1조 엔(약 9조 원) 규모의 구마모토현 공장 주변으로 관련 업체들의 추가 진출이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반도체 기판 연마장비 업체 에바라는 이달부터 내년 가동을 목표로 한 구마모토 신공장 건설에 착수한다. 제조 라인 증설을 통해 전체 생산량을 1.5배까지 끌어올린다. 일본 최대 반도체 장비 업체 도쿄일렉트론도 2025년 여름께 준공을 목표로 430억 엔을 들여 개발 동을 신설한다. 이를 통해 규슈의 사업 규모를 현재의 2배 수준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전력반도체 생산에 힘을 쏟고 있는 롬·미쓰비시전기도 규슈에 둥지를 틀고 향후 2년 내 완공을 목표로 신공장 건설에 나서는 등 현지 생산 능력을 향상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TSMC를 필두로 국내외 기업 80여 곳이 규슈로 몰려들며 지역 내 반도체 공급망을 아우르는 거대 집합지가 형성되는 모습이다. 미국 반도체 장비 업체인 램 리서치가 8월 구마모토에 기술 지원 거점을 이전 및 확대한 데 이어 세계 최대 노광장비 업체 네덜란드 ASML도 9월 기술 지원 거점을 확장했다. 이에 규슈 주변으로 입지를 물색하는 업체의 종류와 수도 늘어나고 있다. 소니는 신공장 건설을 목적으로 올해 구마모토 내 용지를 매입했다. 반도체 제조 장치용 수지 가공품을 생산하는 쿠라보는 8월 구마모토 현지와 공장입지 협정 협약을 맺었다.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배기가스 처리 시설을 만드는 칸켄테크노도 같은 달 15억 엔을 투자해 구마모토 내 부지를 매입했다.
신공장들이 대거 들어서면서 지역 내 고용 역시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규슈 현지에서는 공장에 신규 채용될 예정인 1700여 명을 비롯해 업계에서 총 7500명에 달하는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으로 추정한다. TSMC의 구마모토 공장을 담당하는 일본 자회사 JASM은 지난달 현지 대학 졸업생 등을 대상으로 내년 100여명의 신입사원을 채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밖에 쿠라보 등 규슈 진출 기업들이 공장 가동을 위해 백 명 단위의 신규 고용에 나설 계획이다. 기업들은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것을 대비해 선제적으로 인재 육성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규슈 내 제조 기반을 두는 기업들이 계속해서 늘어나면서 반도체 산업에 기반에 창출될 것으로 기대되는 경제 효과도 불어나고 있다. 규슈파이낸셜그룹은 최근 TSMC 등의 진출로 2022~2031년까지 10년간 구마모토에 나타날 경제적 파급 효과를 당초 4조 3000억 원에서 6조 9000억 원(약 62조 5000억 원) 수준으로 상향 수정했다. 이어 TSMC 공장이 가동하는 2025년 이후에는 반도체 관련 생산(공장·주택 등 투자 포함)이 매년 4000~8000억 엔 이상을 기록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지난해 TSMC 공장 건설 발표 이후 지금까지 반도체 기업들이 규슈 내 쏟은 설비 투자액만 2조 엔을 넘어선다.
인적·물적 인프라가 갖춰지면서 지역 내 유통·부동산 등 비제조업 분야까지 활기가 퍼지고 있다. 일본정책투자은행(DBJ)에 따르면 올해 제조업 분야의 설비투자 계획은 지난해보다 110% 늘었다. 비제조업의 설비투자 계획 역시 같은 기간 30% 가까이 증가했는데 도소매(110%), 서비스(68%), 운수(57%) 등이 모두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권은 입주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 마련에 나섰으며 특히 오랫동안 침체됐던 부동산 업계가 활력을 되찾고 있다. 올해 구마모토 키쿠치의 지가는 7월 기준 전년 동기 대비 32% 급등하며 일본에서 상승률 1위(상업용지 기준)를 기록했다. 일본 반도체 연합인 라피더스가 공장을 건설 중인 훗카이도의 땅값 역시 30% 상승했다. 이에 일본 부동산에 대한 해외 투자 자금의 유입세도 활발해지고 있다. 존스랑라살(JLL)에 따르면 올 상반기 일본 부동산에 대한 해외 투자액은 5130억 엔으로 지난해 총액의 60%를 넘어섰다.
정혜진 기자 sunset@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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