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의 책과 지성] "너무 긴 국경선이 로마를 멸망으로 끌고 갔다"
피터 히더 (1960~ )
사람들은 흔히 로마제국은 '내적 요인' 때문에 붕괴했다고 말한다.
도덕적 타락, 기독교의 확산, 궁정의 불안정, 토지 생산력의 고갈, 혼혈 문제 등이 로마를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했다는 관점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런던대 역사학 교수를 지낸 피터 히더는 다수 학자와 달리 '외적 요인설'을 주장한다. 그는 외부 야만족의 침입이 로마를 서서히 무너뜨렸다고 본다.
히더는 저서 '로마제국 최후의 100년'에서 "로마는 거대한 국경선 때문에 망했다"고 단언한다. 즉, 몸집 때문에 망했다는 것.
로마는 정복욕 때문에 지속적으로 영토를 넓혔다. 이로 인해 생긴 방대하고 복잡한 국경선에서는 그들이 야만족(barbarians)이라고 불렀던 이민족들과의 분쟁이 끊이질 않았다. 이 문제에 주목한 히더는 로마제국은 경계선을 맞대고 있던 수많은 야만족의 잔펀치에 다운당했다는 학설을 내세운다. 일리가 있는 것이 그들은 로마의 생각처럼 야만족이 아니었다. 그들도 나름의 문명과 시스템을 가진 하나의 독립된 민족이었다. 게다가 이들은 로마와 교류하면서 로마의 장점을 흡수해 경쟁력 있는 문명을 건설하고 있었다. 반면에 로마는 한없는 우월감에 빠져 있었다. 로마는 그들의 군사력과 조직력을 무시했다. 로마 국경수비대는 전투부대라기보다는 국경을 감시하는 세관원에 가까웠다.
그사이 이민족들은 국경을 넘어와 충돌을 일으켰다. 로마는 이들을 힘으로 제압할 수 없자 조약을 맺어 달랬다. 로마가 아무리 힘이 있었다고 한들 교통·통신이 원활하지 않은 시대에 모든 국경을 통제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로마는 국경에서 분쟁이 일어나면 할 수 없이 외교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서서히 로마를 붕괴시켰던 것이다. 이민족들은 그런 식으로 로마 영토와 지배력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라인강 유역에서는 게르만족과 부르군트족이 이미 로마 국경을 넘어섰고, 도나우강 북쪽에서는 고트족이 로마의 중심부를 위협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반도에서는 라다가이수스족이, 스페인 북부에서는 반달족과 알라니족 연합군이, 동쪽 국경에서는 훈족이 이미 세를 떨치고 있었다. 늙은 로마는 이민족들이 로마 영토 내부로 서서히 이동하는 걸 막아낼 수가 없었다. 제국의 경계선을 넘어온 이민족들은 로마의 발전된 문화와 자신들의 특성을 융화시켜 나날이 강해졌다.
히더는 "예나 지금이나 제국들의 지배 방식은 주변 민족으로부터 역반응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한다. 제국은 필연적으로 주변 국가들로부터 반발심을 불러일으키고, 그 반발심이 아이러니하게도 주변 국가들을 강하게 만들어 결국 제국을 위협한다는 추론이다.
지금 주변 국가들과 끊임없이 크고 작은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에도 히더의 이론이 적용될 수 있을까. 역사의 나침반이 어디를 가리킬지 자못 궁금하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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