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생존자의 딸, ‘신나치’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다[책과 삶]

이영경 기자 2023. 10. 6.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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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등 도입한 ‘혐오표현금지법’
실효 낮고 모호한 법조항
신나치·혐오범죄 증가 등 부작용
훌로코스트 생존자 후손인 저자
교육과 사과 등 ‘더 많은 행동’ 제안
차별금지법 필요성 강조 눈길
반이슬람단체인 ‘유럽의 이슬람화를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들(PEGIDA)’의 주장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5일 독일 베를린에서 나치 문양에 빗금을 친 깃발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이날 독일 곳곳에서는 이슬람 반대 시위와 이에 대항하는 맞불 시위가 벌어졌다. 베를린 | EPA연합뉴스

혐오

네이딘 스트로슨 지음|홍성수·유민석 옮김|아르테|332쪽|2만8000원

<혐오>를 쓴 네이딘 스트로슨은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딸이다. 그의 부모는 독일에 최초로 세워진 대규모 강제수용소인 부헨발트에서 죽을 위기를 넘겼다. 스트로슨은 홀로코스트의 공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신나치주의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옹호한다. 신나치주의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것이 결국은 유대인을 비롯한 소수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일과 같다는 신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1977년 스코키 사건은 ‘나쁜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쟁을 이끌어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 등 유대인이 다수인 미국 일리노이주 스코키 마을에서 나치 시위를 허용해야하는지를 놓고 격론이 일었다. 당국은 집회 개최를 불허했지만, 일리노이주 대법원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수정헌법 제1조의 취지에 따라 집회를 허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은 “신나치에 반대하지만 표현의 자유는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대표였던 아리에 나이어 또한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후손이었다. 이에 항의하는 회원들의 탈퇴가 이어졌으니 조직으로서도 손해였다. ACLU는 신나치 집회를 금지하는 법이 제정된다면 “1968년 마틴 루서 킹 주니어가 일리노이주 시서로시로 향하는 투쟁 행진을 막는 데 사용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시서로는 인종차별적 입장의 백인들이 다수인 마을이다. 스트로슨은 “마틴 루서 킹 주니어에게 좋은 것이 나치에게도 좋을 것일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스트로슨은 당시 ACLU 소속 변호사였으며, 후에 이곳의 대표를 맡는다.

나치 깃발을 든 백인 우월주의자들이미국 텍사스주 패리스에서 경찰관들을 사이에 둔 채 흑인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다. 양측 갈등은 2008년 9월 흑인이 백인 차량에 매달린 채 끌려가다 숨진 사건에서 비롯됐다. 흑인 활동가들은 당국이 백인의 살인 혐의를 취소하자 이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여왔다. AP 연합뉴스

“나쁜 표현에 법적 금지로 맞서야 하는가, 아니면 대항하는 시민행동으로 맞서야 하는가?” <혐오>의 주장은 간명하다. 혐오표현금지법으로는 혐오표현을 막을 수 없다. 소수자들의 자유와 평등을 옹호하는 만큼이나, 신나치주의자들이나 백인우월주의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옹호해야 한다.

이 말은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혐오표현은 그 표적이 되는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에게 심각한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다. 독일 등 나치의 해악을 경험한 유럽의 많은 국가에서는 혐오표현금지법 등을 엄격하게 시행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일부 전문가들이 혐오표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도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후손인 저자는 왜 나치의 표현의 자유도 똑같이 옹호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까? 저자의 주장은 간명하지만, 그 결론에 이르는 과정은 간명하지 않다. 혐오표현을 법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도덕적 만족감을 얻는 손쉬운 방법이며, 혐오표현금지법이 현실에서 만드는 다양하고 복잡한 부작용을 보이지 않게 치워버리는 일이라고 말한다. 스트로슨은 혐오표현이 해롭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검열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악을 피하기 위해 적용해야 할 해결책은 강요된 침묵이 아니라 더 많은 표현이다.”(미국 브랜다이스 대법관)

“더 많은 표현”, 대항표현이 저자가 주장하는 해결책이다. 혐오표현을 검열·금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대항표현은 혐오표현이 전달하는 사상을 직접적으로 반박하는 표현부터 교육과 홍보, 차별적 발언을 한 사람의 사과와 반성 표명 등 광범위한 내용과 실천으로 구성된다. 혐오표현을 무력화하기 위한 대항표현들이 다양하게 이뤄지면 “더 많은 행동”을 낳아 결과적으로 차별적인 사회 문화와 제도를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스트로슨은 미국 뉴욕 로스쿨 교수이자 표현의 자유 등 시민권을 옹호하는 미국의 대표적 인권운동가다. 그는 여성 착취에 반대하면서도 포르노그래피를 검열해서는 안 된다는 쪽에 섰다. ‘전국법저널’이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법률가 100’인에 오르기도 한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인 일베 회원 청년들이 단식을 하고 있는 세월호 유족 앞에서 ‘피자 투쟁’을 벌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가장 강력한 반혐오 입법 있는 독일에 신나치 부흥
혐오표현금지법이 오히려 소수자 억압 ‘역효과’

한국 사회에서도 혐오표현은 최근 10여년간 중요한 사회 문제로 부상했다. 일간베스트저장소의 등장으로 여성, 성소수자, 5·18희생자, 민주화운동가, 이주민 등을 대상으로 혐오표현이 노골화됐다. 혐오표현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고 혐오표현금지법이 국회에서 발의되기도 했다. 한국엔 혐오표현금지법이 없지만 혐오표현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형사처벌할 수 있다.

혐오표현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고심 중인 한국사회에 <혐오>는 세심하면서도 현실적인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 혐오표현에 대한 대항표현의 중요성을 주장해온 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와 유민석 연구자가 번역했다. “이 책은 혐오표현의 개념부터 시작해서, 혐오표현금지법의 이론적 쟁점과 현실적인 문제점, 실천적 대안까지 혐오표현의 쟁점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교과서나 다름없다”고 평한다.

아직 유럽의 현실을 잘 모르는 독자라면 책을 보고 놀라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 세상에 너무 많은 혐오표현금지법이 있었다. 나치즘이 휩쓸고 간 유럽 대륙뿐 아니라 캐나다, 인도, 라틴아메리카 등에서도 혐오표현금지법이 시행되고 있었다. 신나치, 백인우월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 등에 의한 혐오표현과 혐오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현실과 괴리감이 든다.

가장 강력한 반혐오 입법을 가진 독일이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혐오표현금지법에도 불구하고 나치즘이 부활했다. 독일의 극우정당인 독일을위한대안(AfD)은 2022년 말 기준 연방의회 736석 중 78석을 차지하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나치가 활동하던 시대에도 이미 혐오표현금지법과 유사한 법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나치 수뇌부도 혐오표현금지법에 의해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 생활까지 했다. 하지만 기소는 나치의 반유대주의를 억제한 것이 아니라 나치가 주목을 받고 지지를 얻는 데 도움이 되었다. 박해받은 순교자 노릇을 한 것이다.

혐오표현금지법이 혐오를 줄이지 못한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2015년 유럽인종차별위원회는 유럽의 혐오표현금지법이 불충분하고 잠재적으로 역효과를 낳는다고 비판하는 보고서를 발표하며 대항표현과 같은 비검열적 조치들이 혐오표현을 “궁극적으로 근절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결론내렸다. 유네스코 또한 2015년 “대항표현이 표현을 억압하는 것보다 일반적으로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아시아계 미국인 혐오 범죄에 반대하는 시위. 언스플래시
영국 혐오표현금지법 유죄판결 1호는 ‘흑인 남성’
캐나다서는 페미니스트 벨 훅스 책이 혐오표현금지법에 걸려

저자는 혐오표현에 대한 검열은 현실적으로도 성과를 거두지 못한 “실패한 공공정책”일뿐더러, 이론적으로도 혐오표현금지법이 표현의 자유와 평등에 해롭다고 말한다. ‘혐오’는 주관적이고 탄력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수사와 처벌을 위해 특정 사상과 발화자를 선별할 수 있는 재량권을 집행 당국에 부여한다는 것이다. 권한이 없고 인기 없는 사상에 불리하게 법을 집행하는 경우가 많으며, 수사나 처벌이 두려워 사람들이 의견을 표현하는 것을 억누르는 ‘위축 효과’를 가져온다. 유럽인종차별위원회는 혐오표현금지법의 모호함과 광범위함이 “소수자들을 침묵시키고 비판, 정치적 반대, 종교적 신념을 억압하기 위해” 집행될 수 있다고 결론내렸다.

1965년 영국의 혐오표현금지법은 인종차별주의를 잠재우기 위해 도입됐지만, 유죄 판결을 받은 첫 번째 사람은 백인 경찰을 저주한 흑인 남성이었다. 진짜 아이러니는 신나치민족전선을 억제하기 위한 법이 반나치연맹의 표현을 금지했다는 점이었다. 캐나다의 혐오표현금지법의 첫 번째 집행 조치는 캐나다 대학이 미국에서 수입하려 했던 흑인 페미니스트 학자 벨 훅스가 쓴 <블랙 룩스: 인종과 재현> 1500부를 압수한 것이었다.

유사한 사례를 인터넷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페이스북이 자체적으로 혐오표현을 검열한 결과 인종차별주의자들보다 소수자들이 쓴 대항표현을 더 검열했다. 한국에서도 여성혐오적 게시물보다 이를 미러링한 표현이나 페미니스트들의 대항표현이 더 많은 검열을 당한 예가 있다.

하지만 혐오표현이 실질적인 위해를 끼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대항표현이 효과를 거두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저자는 혐오표현이 직접적이고 심각한 해악을 미칠 경우엔 이미 현행법으로 처발할 수 있다고 말한다. 혐오표현이 진정한 위협이나 표적이 있는 괴롭힘에 해당할 경우 특정한·임박한·심각한 해악을 직접적으로 유발하므로 ‘긴급성의 원칙’에 따라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혐오표현금지법은 특정 관점이 탐탁지 않거나, 불쾌하거나, 혐오스럽다는 이유, 즉 ‘반감’만으로 표현을 검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극우 유투버의 차량이 20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광장 앞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 앞에 주차되어 있다. 권도현 기자
검열보다는 “더 많은 표현”을
강력한 차별금지법 앞에서 혐오는 힘을 못 쓴다

저자는 이 책을 쓴 계기로 대학가에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대항표현과 행동이 증가한 것을 꼽는다. “흑인 학생들의 음소거가 해제”된 것은 그를 고무시켰지만, 미국에도 혐오표현금지법을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젊은 세대 사이에 나온 것은 우려스러웠다. 혐오표현금지법의 문제와 현실에 대해 자세히 알리고자 “교과서” 같은 이 책을 집필했다. 책은 혐오표현금지법의 세계적 실패 사례를 꼼꼼하게 기록하는 동시에 성공적인 대항표현 사례를 풍부히 담았다. 서두에 언급한 스코키 사건은 대항표현에서도 좋은 사례가 된다. 신나치주의자들의 집회를 허용하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기억’을 기리고 혐오·편견·무관심과 싸우기 위한 노력이 이뤄졌고, 홀로코스트의 유산을 보존하는 박물관과 교육 센터를 열어 “교육을 통해 혐오와 싸우는 데 전념했다.”

‘교과서’의 장점은 일목요연하지만 다소 건조하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책을 읽는 이들은 밑줄을 긋고 강조점을 표시할 수 있다. 한국 독자로서 눈에 띄는 부분은 차별금지법에 대한 부분이다. 저자는 혐오표현금지법보다는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차별금지법은 교육 기회나 고용 기회에서 배제되는 경우 발생하는 경제적 피해 등 여러 유형의 피해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준다. 차별금지법을 통해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차별을 극복하는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학자 체리언 조지는 “강력한 차별금지법이 있는 사회에서는 혐오표현이 큰 해악을 입히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 주요 국가 중 차별금지법과 혐오범죄법이 없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뿐이다. 혐오는 차별적 현실에서 비롯하며 차별적 현실을 바꿔내는 것이 우선임을 역설하는 <혐오>의 메시지를 새길 필요가 있다.


☞ 혐오를 넘어 - 경향신문 창간 71주년 기획
     https://nohate.khan.co.kr/con01_list.html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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