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영장 기각, 여야 공수 교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구속영장 기각 이후 여야가 공수 교대를 시작했다. 야당 대표 구속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피한 민주당은 전열을 재정비했다. 이 대표는 지난 9월 27일 영장 기각 직후 ‘민생’을 외치며 ‘조용한’ 반격을 시작했다. “정치란 언제나 국민의 삶을 챙기고 국가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여야, 정부 모두 잊지 않아야 한다”며 “상대를 죽여 없애는 전쟁이 아닌 국민과 국가를 위해 누가 더 많은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를 경쟁하는 진정한 의미의 정치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구속 여부가 판가름나지 않았던 지난 9월 초, “총리를 포함한 내각이 총사퇴하고 사태의 책임을 지면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과는 방향성에 차이가 있다. 이 대표는 지난 추석 당일에도 ‘조건 없는’ 영수회담을 제안하며 ‘민생’ 강조 행보를 이어갔다. 본인 수사에 대한 발언은 줄이면서 국민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영리한 포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대표 구속영장 기각 후 정부를 향한 공세는 당이 이끄는 모양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10월 3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파면하고, 한덕수 국무총리 해임 건의안 문제도 다수 의견을 존중하라”고 말했다. 한 장관 탄핵소추안 발의 여부에 대해선 “일단 국감 이후에 판단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영장 기각에 따른 후폭풍이 정부, 여당만을 향하는 것도 아니다. 당 내부에 남은 이른바 ‘체포동의안 가결파’를 두고는 징계 가능성까지 언급된다. 홍 원내대표는 지난 9월 26일 당선 소회를 밝히며 “일부 당원, 지지층에서 문제 제기한 것에 대해 잘 알고 그런 부분을 책임 있게 해결하겠다”고 공언했다. 이 대표가 직접 나설 경우 정치적 부담이 되는 만큼 당과 대표가 역할을 나눠맡은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의 단식, 구속영장 기각, 추석 연휴로 이어지는 숨가쁜 시간이 지났다. 대통령실은 이 대표의 ‘영수회담’ 제안에 아무런 반응도 내놓지 않고 있다. 당무에 복귀한 이 대표와 이를 평가절하하는 정부·여당의 강 대 강 대치국면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만남 자체를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민생 해결을 위한 협치는 물 건너갔다는 관측도 나온다. 내년 총선 결과 패배한 쪽은 민생을 도외시하고 싸움만 했다는 비판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혼란은 누구의 책임인가
“이재명을 구속하네, 마네 떠들썩하게 했으면 누구라도 결과에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닌가. 국회만 동의하면 무조건 구속될 것처럼 하더니 이제는 구속이 의미 없는 것처럼 말한다.”(한주영씨·서울)
이 대표에 대한 검찰수사가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지난 9월 27일 “구속영장 재판은 죄의 유무를 따지는 본안 재판이 아니다”며 “합당한 처벌이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여론은 이 총장과 다르다. 기각의 의미를 가볍게 생각한다고 볼 수 없는 흐름이 있다. 여론조사 기관 리서치뷰는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난 후인 지난 9월 29일부터 30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정기여론조사를 했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해당 조사는 정기조사인 만큼 각 질문에 대한 추세 변화가 중요하다. 한 달 전에 비해 9월 총선 정당후보지지도는 민주당이 6%포인트, 이 대표의 범진보 차기 대권주자 적합도는 5%포인트, 총선에서 정부·여당을 심판해야 한다는 프레임은 4%포인트씩 각각 올랐다. 8월과 9월 한 달 사이 벌어진 가장 큰 정치적 쟁점은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이었다.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는 “이번 정기 여론조사가 공교롭게 이 대표 구속영장 기각 직후 진행된 만큼 조사에 해당 사안에 대한 여론이 반영된 것으로 추론해볼 수 있다”며 “이게 일시적일지, 장기적일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빅데이터상이나 여론조사에서나 추석 ‘밥상머리’ 여론의 화두는 이 대표가 차지한 것이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구속영장 기각과 관련한 여론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은 ‘이 대표의 대척점에서 부각되는 것이 누구냐’는 점이다. 이는 사안을 둘러싼 대립구도를 보여준다. 구속영장은 검찰이 법원에 청구해 기각됐지만 정작 주목받는 것은 검찰총장이 아닌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다. 윤 대통령의 반응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론은 이 대표를 둘러싼 의혹을 검찰과 이 대표의 법리공방보다 한 장관이 대리하는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정치적 대결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한 장관이 자초한 측면이 있다. 실제로 한 장관은 이 대표 관련 문제에 앞장서는 태도를 이어왔다. 구속영장이 기각된 지난 9월 27일에도 그는 “구속영장 결정은 범죄 수사를 위한 중간 과정일 뿐이고, 이번 이 대표에 대한 결정도 그 내용이 죄가 없다는 내용이 아니다”며 “무리한 수사라는 말에 동의할 만한 국민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고 평가절하했다. 하지만 한 장관은 지난 9월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열린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요청하며 “대규모 비리의 정점은 이재명 의원이고, 이 의원이 빠지면 이미 구속된 실무자들의 범죄사실은 성립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구조”라며 “이 의원의 변명은 매번 자기는 몰랐고 이 사람들이 알아서 한 것이라는 것인데 그게 아니라는 증거도 많지만, 상식적으로 그게 가능하겠느냐”며 구속 필요성을 주장한 바 있다. 뒤늦게 구속영장 기각의 법적 의미를 강조했지만 한 장관 스스로 남긴 발언들을 돌아보면 ‘이번 수사가 동력을 잃는 것 아니냐’, ‘법적 사안을 정치 쟁점화한 것은 한 장관 본인 아니냐’는 지적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민주당 역시 이번 사태의 책임자로 한 장관을 지목하고 있다. 한 장관 탄핵론의 시작이다. 민주당이 한 장관을 탄핵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효과는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먼저 ‘검찰수사는 야당 탄압용’이라는 프레임을 장기간 쟁점화해 나갈 수 있다. 탄핵 절차를 이용해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문제로 분열된 민주당을 재결집시키는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다. 한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 의결은 민주당 의석(168석)만으로도 가능한 상황이다. 만장일치 의결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민주당 분열론은 좀처럼 힘을 얻기 어려워진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한 장관 탄핵과 관련된 이야기는 지금 의원들 사이에는 거의 뭐 컨센서스가 다 만들어진 것 같다”며 실현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한 장관 탄핵소추안 의결과 별개로 실효성을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 주도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의결했지만, 헌재가 만장일치로 기각 결정을 내린 전례가 있다. 만약 한 장관 탄핵에 대해서도 기각 결정이 내려진다면 어렵게 잡은 공세 기회는 날려버리고, 한 장관의 정치적 몸집만 키우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민주당은 10월 국정감사 이후 한 장관 탄핵 여부를 결정한다는 입장이지만, 전문가들은 실제 탄핵으로 이어지긴 힘들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10월 국정감사가 진행되는 만큼 여론의 관심이 분산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명분은 챙기고 ‘한 장관 탄핵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컨벤션 효과(정치적 이벤트를 통해 정당이나 정치인의 지지율이 상승하는 현상)를 기대하는 전략 아니겠느냐’는 관측이다.
한 장관은 구속영장 기각 사태의 전면에 섰던 만큼 야당의 각종 정치적 공세에서 온전히 자유롭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그런데 이번 사태의 후폭풍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는 또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다.
협치 없이 통치가 가능한가
“사실상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수사가 무리하다고 판명된 것 아닌가. 이제 국민 먹고사는 문제에나 집중했으면 좋겠다.”(정진영씨·부산)
이 대표와 관련해 정치적으로 주목받는 인물 중에는 직접적 이해당사자이면서 아무런 입장도 내지 않는 윤 대통령이 있다. 그는 취임 후 지금까지 제1야당 대표를 공식적으로 만나지 않고 있다. 몇몇 공개석상에서 스쳐지나가면서 악수를 한 게 전부다. 이 대표가 검찰수사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만 알려져 있다. 그런데 법치를 근간으로 하는 한국 정치에서 제1야당 대표를 마치 ‘유령’ 취급하며 만남 자체를 피하는 건 정상적인 국정운영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협치는 특히 더 중요하다. 국회 다수당인 야당을 무시하면 대통령이 민생을 도외시한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기 어렵다.
이 대표는 자신을 만나지 않는 윤 대통령을 향해 지속적으로 만남을 요구하고 있다. 구속영장 기각 이후에도 ‘영수회담’을 제안했지만, 대통령실은 “입장이 없다”고만 밝혔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대통령실을 대신해 “정말 중요한 민생 문제를 국회에서 해결해야 하는데, 어디 엉뚱한 번지에 가서 얘기하시냐”며 “그거 연목구어(緣木求魚·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얻으려 한다) 아니냐”고 지적했을 뿐이다. 하지만 구속영장 기각 이후에도 윤 대통령이 지금처럼 이 대표와의 만남을 계속 거부하면 명분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민주당이 이런 호기를 놓칠 리 없다. 연일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지난 10월 4일 “대통령실이 이재명 대표의 ‘민생 영수회담’ 제안에 ‘입장이 없다’고 답변을 회피하는 가운데, 여당의 막말 공세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며 “왜 여당이 대통령실을 대신해서 나서는지 의아하다. 혹시 여당 지도부의 거친 막말이 ‘윤석열 대통령의 불편한 심기’를 대변하고 있나”라고 맞받았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 대표는 대통령실이 받지 않을 것을 알고도 제안했다고 봐야 할 것”이라며 “대통령과 당당하게 회담을 요구할 수 있는 야당 대표로 자리매김했음을 대내외에 보여주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실이 여야 당대표 간 회담부터 하라는 식으로 호응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앞으로도 협조·협치는 없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측의 극한대립은 결국, 총선까지 가야 결판이 날 전망이다. 여당이 승리할 경우, 이 대표가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야당이 승리하면 윤 대통령의 레임덕이 가속화하는 수순이다. 그렇다면 내년 4월까지 양측은 접점 없는 평행선을 그리며 투쟁 강도만 계속해서 끌어올리게 될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주요한 변곡점을 앞두고 있다. 10월 11일의 강서구청장 선거가 바로 그것이다.
여야 지도부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보궐선거를 만든 장본인을 재출마시키는 여당도 이해가 안 가고, (그런 여당을 상대로 한) 선거에 총력전을 펼쳐야 하는 상황인 야당도 이해가 잘 안 된다.”(A씨·서울)
지역 구청장을 뽑는 선거가 이례적으로 전 국민의 주목을 받고 있다. 복잡다단한 사안들이 엮인 선거라는 점 때문이다. 우선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6개월여 앞둔 시점이다.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으로 정부·여당과 야당의 대결은 더욱 극심해졌다. 여야 모두 구청장 선거에 배수진을 친 상태다.
국민의힘은 연일 지도부가 총출동해 김태우 후보를 지원하고 있다. 김기현 대표, 윤재옥 원내대표 모두 김 후보 지원 유세 현장에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여당 구청장이라는 점을 강점으로 부각하며 정책 입법, 예산 지원 등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한다. 민주당 역시 진교훈 후보 지원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홍익표 원내대표가 직접 지역을 돌며 진 후보를 거들고 있다. 단식 후유증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이 대표 역시 진 후보 지원 메시지를 담은 유튜브 영상(10월 5일)을 공개하며 이번 선거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당 차원에선 소속 국회의원을 각 상임위 소속 기준으로 20개 조로 나눠, 조별로 유세 활동을 벌이고 있다. 각 조가 사전선거 전 1회, 본 선거 전 1회 유세 지원에 나서는 게 목표다.
양당의 현직 지도부는 이번 강서구청장 선거 결과에 정치적 명운이 걸려 있다. 선거를 지면 현직 여야 지도부로 총선을 치르기 어렵다는 책임론이 불거질 게 뻔하다. 국민의힘 상황은 더 급박하다. 김태우 후보는 본인 문제로 치러지는 보궐선거에 재출마한 상태다. 윤 대통령의 특별사면이 있어 가능했다. 김 후보가 만약 선거에서 진다면 이는 곧 ‘대통령 책임론’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사안이다.
반대로 진교훈 후보가 패배한다면 구속영장 기각으로 어렵사리 고비를 넘긴 이재명 대표의 리더십은 다시 수렁 속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이 대표 체제로 내년 총선을 치를 수 없다는 주장이 당내 ‘비명계’를 중심으로 거세질 수 있다. 강서구는 전통적인 민주당 강세지역이다. 근소한 차이로 승리해도 이 대표 체제는 흔들릴 수 있다. 이 교수는 “강서구청장 선거는 결과에 따라 이기는 쪽은 뚜렷한 상승세를 타고 지는 쪽은 지도부가 교체될 정도의 위기로 번질 것”이라며 “특히 국민의힘이 패배할 경우 대통령과 당대표의 책임 공방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민주당이 두 자릿수 지지율 격차로 승리하는 것이 아닌 5% 안팎으로 신승하거나 패배하면 문제가 될 것”이라며 “선거 결과가 접전으로 나온다면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한 수도권 상당수 지역이 접전으로 변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양쪽 모두 결코 지면 안 되는 판이 벌어졌다. 강서구청장 선거는 구속영장 기각 후폭풍이 이대로 수습되느냐, 정권심판론의 더 큰불로 번지느냐의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