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에 역사 담은 이관우 작가의 '응집'

정자연 기자 2023. 10. 6.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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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우 작가. 작가 제공

 

신화는 뜻밖의 사건에서 탄생한다. 적어도 현대미술에선 그렇다. 자괴감에 시달렸던 잭슨 폴록은 충동적으로 캔버스를 작업실 바닥에 눕혀 물감을 들이부었고 이후 액션 페인팅, 추상표현주의로 칭송 받았다.

서양화과를 졸업한 이관우 작가(53) 역시 우연의 발견으로 자신만의 새로운 길을 가게 됐다. 바로 도장의 발견이다.

과천에서 나고 자란 그는 작업실 인근 폐가에서 목도장을 발견했다. 도시가 개발될 때 폐허로 변한 집터에서 도장을 발견한 그는 이후 특수 재료를 이용해 직접 도장을 만들었고, 도장을 물감처럼 사용했다.

자신이 발견하고 선택한 특수 재료로 만든 개인의 인장을 통해 그림을 그리는 작품의 폭은 점점 넓혀졌다. 굴곡을 이용해 작품을 입체적으로 변형시키기도 한다.

그가 사용하는 도장의 사각 프레임에는 역사의 스토리, 그것을 제작한 작가 자신의 숨결이 깃들어 있다.

2023 011, Condensation 응집, 71x71cm, MIXED MEDIA (oriental traditional sign) on Panel. 작가 제공

작품에 사용된 도장들은 1점당 수천개 혹은 수만개에 이른다. 하나하나 손으로 직접 새겨 만들어 그의 혼이 깃든 도장부터 각종 이야기를 품은 도장까지 작품 한 점을 제작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된다.

다양한 문양을 새긴 작은 도장과 전각 수백개를 나무에 붙이는 방식은 그만의 독특한 창작방식이다. 작가와 혼연일체가 된 그의 도장은 사물과 사람을 상징하는 인간미와 정서가 담겨있다.

서양화가에서 국내 최고의 도장작가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 이관우 작가의 16번째 개인 전시가 대만 중정기념당에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지난 4일 개막해 오는 18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를 앞두고 기자와 만난 이 작가는 “최근 10년 간 가장 의미있는 전시”라고 밝혔다.

2022 Condensation 응집 036, 92x74cm, MIXED MEDIA (oriental traditional sign) on Panel. 작가 제공

전시의 주제는 ‘응집’이다. 신작 26점이 그의 사각 프레임 안에서 인류가 역사와 전통을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담겼다.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 또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전각은 한국에서 이미 만들어진 틀이 있어 그들만의 리그인 제도권의 문을 열기 어려웠다. 그냥 외롭게 작업했다. 지금도 혼자 길을 가고 있고, 이제는 이게 편하다. 외롭게 작업한 부분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색다른 감동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제도권에 들어가기 어려워 바깥을 통해 문을 두드리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온 그의 이야기다.

전시가 열리는 대만 국립중정기념당은 중화민국의 초대 총통이었던 장제스를 기념해 1980년에 건설한 기념관이다. 카우스, 앤디워홀 등 해외유명 작가의 전시를 개최하며 대만의 정치, 역사, 예술을 대표하는 장소로 꼽힌다.

도장과 전각이라는 동양적 소재로 현대적이고 명상적인 세계를 빚어낸 그의 작품이 이번 전시에서도 관객들에게 어떤 영감을 줄 지 기대되는 대목이다.

2022 Condensation 응집 011, 74x92cm, MIXED MEDIA (oriental traditional sign) on Panel. 작가 제공

“그림으로서만 존재하는 사람이고 싶다”고 밝힌 이 작가는 “대만인들이 어떻게 바라봐줄지 기대되고, 앞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 데 시너지를 더 얻고 생각도 더 많아질 것 같다”고 전했다.

에프엔지아트 총괄이사 다니엘 김은 “이번 전시는 대만을 상징하는 대표 건축물인 국립중정기념당에서 가장 한국적인 창작활동을 펼치는 이관우 작가의 개인전이라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도 한국의 수준높은 예술을 해외에 소개하겠다”고 말했다.

전시회 관계자는 “이관우 작가가 사용하는 재료인 도장은 생명력과 직결된 존재의 흔적으로 사물과 사람을 상징하는 인간미와 정서가 담겨 있어 한국인들에게 더 특별한 의미가 있다”면서 “그는 이번 전시의 주제인 응집이 사각 프레임 안에 인류가 역사와 전통을 함께 만들어 가는 이야기를 담았기에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문화 역사의 강한 결속력을 느끼길 바란다”고 밝혔다.

정자연 기자 jjy84@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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