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회담 제안한 이재명 대표의 정치 노림수 [배종찬의 민심풍향계]
영수회담, 여야 소통보다 정치적 제안 또는 힘겨루기 양상
(시사저널=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영수회담 승부수를 던졌다. 24일간 이어진 단식과 구속영장 기각 이후 나온 이 대표의 정치적 포석이다. 이 대표는 추석 연휴 기간인 9월2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최소한 12월 정기국회 때까지 정쟁을 멈추고 민생 해결에 몰두하자"면서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조건 없이 만나 민생과 국정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을 신속하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영수회담 제안의 배경을 밝혔다.
대통령실은 이 대표의 제안에 대해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인 이 대표와 일대일로 회동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내부 기류가 있었던 만큼, 대통령실의 이 같은 반응은 사실상 이 대표의 제안을 거부한 것으로 해석된다. 따지고 보면 이 대표의 영수회담 제안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8·28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되던 당일 밤부터 3일 연속 회동을 요구했고, 지난해 추석 연휴를 앞두고도 "추석 직후에라도 바로 만나자"고 했다. 올해 1월 기자간담회에서도 "이미 여러 차례 대통령과의 회담을 제안했다"며 제안 수용을 압박했다. 이번 제안까지 포함하면 총 8차례로 알려지고 있다.
매번 제안할 때마다 대통령실은 사실상 만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렇다면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9월28일 제안한 영수회담 역시 호응을 이끌어내기 힘들 것이란 상황을 이 대표가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끊임없이 영수회담을 제안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도층 여론 견인과 당내 갈등 상쇄 효과
첫 번째는 '중도층 여론을 견인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진영 간 대결 구도 속에서 핵심 지지층은 진영에 유리한 여론에 따르겠지만, 중도층은 대체로 여야 간 소통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높은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대표가 영수회담을 줄기차게 주장하면 윤 대통령이 만나지 않는 명분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기 힘들어진다. 그렇게 되면 내년 총선에서 중요한 유권자층인 중도층·무당층, 수도권, MZ세대 여론을 이 대표에게 유리하게 가져오는 데 도움이 된다.
뉴스토마토가 미디어토마토에 의뢰해 지난해 8월30~31일 실시한 조사(자세한 개요는 그래프에 표시)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영수회담이 필요한지' 물어보았다. 1년 전 조사지만, 영수회담 그 자체의 성격상 계층별·집단별 여론 특성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체 결과로 '필요하다'는 의견이 50.2%,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이 37.3%로 나타났다. 대체적으로 국민의힘 지지층은 영수회담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고, 민주당 지지층과 중도층 중 일부는 영수회담이 필요하다는 의견으로 나타났다.
20대(만 18세 이상)와 30대에서도 영수회담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고 서울과 중도층에서도 영수회담 필요 의견이 더 많았다.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성향이 강한 대구·경북 지역은 영수회담에 대해 찬반이 팽팽했다. 정당 지지층별로 국민의힘 지지층에선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이 64.3%로 압도적으로 높았고, 민주당 지지층에선 필요하다는 응답이 84.5%로 거의 10명 중 8명이 넘는 수준이었다(그림①). 적어도 영수회담을 강조하면서 우호적인 여론을 만들어가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 된다.
두 번째는 '당 내부의 갈등 상쇄 효과'로 풀이된다. 구속영장 기각으로 건강을 회복하는 대로 이 대표는 당무에 복귀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친명(親이재명)과 비명(非이재명) 간 갈등이다. 이 대표에 대한 국회의 체포동의안이 가결되면서 이를 주도한 것으로 판단받고 있는 비명 세력에 대한 '피의 숙청' 등의 잔인한 표현이 거론되고 있다. 이 대표는 병상에서 당의 통합을 강조했지만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민주당 지지율이 총선을 앞두고 요동치기라도 하면 이 대표의 위상은 다시 폭풍전야로 들어가는 수순이 된다. 그 와중에 친명과 비명 사이에 갈등이 증폭될 것임은 안 봐도 비디오다.
한국갤럽이 자체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정기 조사(자세한 개요는 그래프에 표시)에서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지'를 물어본 정당 지지율 추세 결과를 보면 확인 가능해진다. 민주당 지지율은 이 대표가 당대표로 있는 동안 사법 리스크로 계속 흔들리고 있다. 8월29~31일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27%로 곤두박질쳤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가 60%에 육박하는 상황이지만 민주당 지지율은 정치적 반사이익조차 얻지 못하는 결과였다. 이 대표가 정치적 최종 수단인 단식을 감행하는 기간인데도 9월19~21일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국민의힘과 동률인 33%밖에 되지 않는다(그림②).
비명계가 이재명 대표 핵심 지지층인 '개딸'의 삼엄한 감시망 속에서 체포동의안 가결표를 주도한 이유가 지지율 때문일지 모르겠다. 이 대표의 영수회담 제안은 당의 시선을 윤 대통령에게 정조준하면서 당의 내부 단속을 위한 포석으로 읽힌다. 여기에 다가오는 서울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지지표를 결속하는 영향까지 준다면 이 대표로서는 연목구어(緣木求魚)가 아니라 일석이조(一石二鳥)다.
尹 지지층, 이 대표와 만나는 것 원치 않아
그렇다면 윤 대통령이 이 대표의 영수회담 제안을 한사코 거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범죄 피의자나 혐의자라서 이 대표를 꺼리는 이유 외에도 대통령 핵심 지지층이 영수회담으로 이 대표와 만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빅데이터 감성 연관어를 보더라도 부정적인 기류는 분명해 보인다. 빅데이터 심층 분석 도구인 오피니언라이브 캐치애니(CatchAny)가 9월25일부터 10월2일까지 영수회담에 대한 감성 연관어와 긍·부정 비율을 도출해 보았다.
영수회담에 대한 빅데이터 감성 연관어는 '기각' '비판' '재판' '맞다' '논의' '멈추다' '향하다' '뜨다' '수사' '지적' '탄핵' '리스크' '회복' '해결' '만들다' '강조' 등으로 나타났다(그림③). 빅데이터 감성 연관어 분석을 보면 영수회담에 대해 아주 긍정적인 반응이나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하기 어렵다. 영수회담이 여야 소통의 차원보다 정치적인 제안 또는 힘겨루기처럼 인식되는 것으로 보인다. 빅데이터 긍·부정 비율을 보면 영수회담에 대한 긍정은 37.1%, 부정은 45.3%로 나타났다.
여야 소통 차원에서 윤 대통령이 영수회담 제안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여론이 있지만 좋은 게 좋다는 접근과는 궤를 달리한다. 이재명 대표는 제안 자체만으로 얻는 정치적 이익이 많다. 중도층 유권자들에게 명분을 부각시킬 수 있고 당 내부적으로 분열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가까이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부터 멀리는 총선에 이르기까지 전략적 가치를 발휘하는 정치적 효용성이 존재한다. 반면에 윤 대통령이 얻을 건 많지 않다. 윤 대통령에게 돌아가는 정치적인 실익은 거의 없다. 영수회담의 정치학에 서로 다른 반응이 나오는 근본적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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