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준호 기본소득당 공동대표 “한국에 사명을 가진 정부, 리더십 전혀 보이지 않아”

이희경 2023. 10. 6.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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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윤석열 대통령은 정부의 복지국가 전략을 논의하는 ‘사회보장 전략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사회 서비스를 ‘시장화·산업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 분야에 경쟁 체제를 도입해 서비스 질을 높여야 한다는 취지였다. 산업 등 경제 분야에 주로 적용됐던 경쟁 논리를 복지 분야에도 가져오겠다는 선언이었다. 이는 내년도 예산안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대표적으로 영유아 돌봄, 노인요양 등을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사회서비스원 관련 인건비·운영비 전액(약 125억원)이 삭감됐다.

돈이 되는 사업만 좇는 민간의 속성상 영유아 돌봄에 장애 아동이 배제되고, 돌봄 노동자의 처우가 악화돼 오히려 복지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등 각종 우려가 많았지만 예산당국은 ‘그건 지자체가 알아서 할 일’이라며 귀를 닫았다.

이처럼 전방위적으로 진행되는 정부 역할의 축소를 ‘위기의 징후’로 규정하며 정책 전환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오준호 기본소득당 공동대표는 최근 출간한 ‘사명이 있는 나라’를 통해 현재 한국 사회가 맞닥뜨린 위기는 “민간이나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구조적 위기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는 거대 석상 ‘모아이’를 세우기 위해 나무 벌목을 계속하다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진 이스터섬처럼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한채 한치 앞만 보고 있다는 게 오 대표의 진단이다. 그는 “한국에 사명을 가진 정부, 리더십, 협동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도리어 현 집권 세력이 잡은 방향은 그 리더십을 부정하고 기반을 해체하는 쪽”이라고 비판한다.

오 대표는 근시안에 갇히지 않고 공동체 전체의 비전을 가질 수 있는 주체는 ‘국가’이며 국가는 공동체가 가야하는 과업·목표인 ‘사명’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구조적 위기로 ‘기후위기’, ‘글로벌 안보 위기’, ‘불평등 양극화 위기’를 지목하면서 정부가 위험을 떠안아 공공자본이란 마중물을 붓고, 이후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경제를 재조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의존도가 커져 효율성이 떨어지는 이른바 ‘정부 실패’ 현상이 나타나기 전에 민간과 선순환을 만들어야 기후·지정학 대전환기 속 한국이 미래를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 대표는 각 구조적 위기에 대응하는 구체적 대책도 조목조목 제시했다. 대표적으로 반도체를 고리로 한 미국과 중국의 갈등 구도에서 특정 나라를 선택하는 식이 아니라 대체할 수 없는 기술력을 만들어 강대국과 당당히 협상하는 ‘글로벌 혁신선도국가’를 대안으로 언급한다. 이를 위해 오 대표는 실패 가능성이 적은 안전한 과제, 즉 선진국을 따라잡는 추격 기술에 주로 연구개발(R&D) 투자가 이뤄지는 것에서 탈피해 핵심 원천기술 개발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 모델을 참고해, 한국형 DARPA인 ‘기초연구원’ 설립을 제안한다. DARPA는 인터넷, 코로나19 백신 등 국가안보에 공헌한 기술의 초기 개발을 지원했는데, 자체 연구소가 모든 연구개발을 다 하는 방식이 아니라 가능성 있는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한편 민관협력체계를 조성하는 열린 모델이다. 그는 아울러 정부 연구개발비를 10년간 최소 300조원을 더 투입해야 한다면서 △에너지저장장치(ESS)△해상풍력발전△차세대 반도체△특정분야(X) 맞춤형 인공지능(AI)△자원 재활용 산업을 5개 선도기술과제로 제시했다.

기후위기 대응 역시 ‘생각을 바꾸고, 더 과감해 지자’고 오 대표는 강조한다. 탄소중립 시점을 기존보다 10년 앞당긴 2040년으로 달성하자고 그는 제안한다. 2050년 목표도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오 대표는 매년 에너지 수입으로 연 150조원씩 외화를 지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에너지 자립 시점을 앞당길수록 경제적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오 대표는 파리기후협약에 따라 기온 상승 2도 이하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연간 투자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3% 정도라면서 한국의 경우 10년 간 600조원을 투입하면 탈탄소 녹색전환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그는 “2023년 여름 장마에 산사태와 제방 붕괴 등으로 5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기후 재난은 먼 북극곰 이야기가 아니라 가까운 이웃, 아니 나 자신의 이야기”라면서 “인명과 재난의 손실을 금액으로 나타낼 수도 있지만 녹색전환은 그 이전 윤리적 문제”라고도 강조했다.

오 대표는 이와 함께 국가가 공공 재원으로 거대 기금을 조성해 탄소 중립 등 사명 지향적 방향에 부합하는 기업 주식에 투자하고 그 배당금을 모든 국민에게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한국연대기금’도 제안한다. 한국연대기금이 위험을 감수하며 기업의 혁신 창출 과정에 함께하고 국민은 일정 소득을 보장받아 경제 전환을 앞당길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조달한 100조원이 기금의 출발 자금이 되고, 경제성장률을 반영해 연간 투자액이 늘어나는 구조(기금 운용 수익률 5% 가정)로 설계하면 원본자산이 커지는 만큼 배당도 늘어나 30년 뒤 국민 1인당 배당금이 연 750만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그는 설명한다.

막대한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까. 오 대표는 전환 재정 1000조원(10년간) 확보 로드맵도 함께 제시한다. 그는 윤석열정부의 감세 기조가 철회돼야 하고, 조세부담률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5%까지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2021년 기준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GDP의 22%에 그친다. 세율 인상은 노동소득보다는 부동산 등 자산소득에 주로 부과하되 국민 부담이 없는 탄소세·횡재세로 충당하자는 게 오 대표의 제안이다. 또 정부가 만들어 한국은행이 인수하는 형식의 ‘기후 채권’에 국민들이 투자하고 배당받게 하는 등 민간의 투자를 끌어들이는 동시에 국민연금기금을 활용하는 방안도 열어 놓자고 그는 덧붙였다. 국가채무가 증가하면 안 된다는 시각에 대해 오 대표는 “이미 완전고용에 도달한 게 아니면 정부지출이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적다”면서 “공공투자로 혁신을 자극하면 경제가 성장하고 GDP가 늘어난다. (정부가) 퍼주기만 하라는 것이 아니다. 혁신을 이끄는 최초의 투자자가 되라는 것이다”고 반박한다.

제20대 대통령선거에 ‘누구나 나답게, 기본소득 대한민국’의 슬로건을 내걸고 기본소득당 후보로 출마했던 오 대표의 제안은 증세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외면받기 쉽다. 하지만 국가 소멸을 우려할 정도로 심각한 저출생, 노인빈곤율 1위 등의 지표로 대변되는 ‘각자도생’ 한국 사회에서 오 대표의 제안은 ‘새로운 희망’을 탐색하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세종=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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