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대표이기에 증거인멸 염려가 없다고? [쓴소리 곧은 소리]
불구속 수사 원칙 견지했지만 단독 판사에 의한 영장심사제는 개선 필요
(시사저널=정용상 동국대 명예교수·전 한국법학교수회장)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공직선거법 위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제3자 뇌물공여, 위증교사,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의 혐의로 현재 선거법, 대장동, 성남FC 후원금 등 3개 사건의 재판이 진행 중이다. 구속영장이 기각된 백현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과 쌍방울그룹 대북 송금 의혹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되면 이 대표는 5개 사건에서 동시에 사법 절차가 진행된다. 따라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고 해서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없어졌다고 볼 수 없으며 이제부터 재판 리스크가 본격화하는 모습이라고 보는 게 합당할 것이다.
위에 열거한 일련의 혐의들은 지방자치단체장이 자치권력을 이용해 공적 권한을 사익 추구의 도구로 남용한 토착 비리에 해당한다. 검찰이 해당 혐의를 신속하게 수사해 기소할 것은 기소하고, 법원은 신속한 재판을 통해 결론을 내리면 될 일을 너무 오랫동안 질질 끌면서 국민에게 혼란과 피로감을 안겼다.
9월2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유창훈 부장판사)은 이재명 사건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이 사건은 국민 정서나 사회통념에 비추어 구속 필요성이 크다는 것이 국민의 보편적 법감정이자 법률 전문가들의 일반적 법해석이었다. 그러나 유창훈 영장전담판사는 892글자의 영장기각 결정문 몇몇 대목에서 사법의 정치화를 의심할 만한 문제들을 드러냈다.
일부 긍정평가 있으나 곳곳에서 논리 모순
물론 유 판사가 큰 틀에서 형사소송법상 불구속 수사의 원칙을 지켰다는 평가를 받을 순 있을 것이다. 구속 수사는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 및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 제한에 대한 과잉금지의 원칙에 따라 수사의 목적 달성을 위한 필요 최소한의 범위에 그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긍정적인 일부 평가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으로 이재명 대표에 대한 불구속 결정문은 논리적 모순과 정치적 판단을 내포하고 있음을 쉽게 간취할 수 있다.
우선 유창훈 판사의 판단을 살펴보자. 그는 검찰의 위증교사 혐의는 소명된 것으로 보면서도, 백현동 개발사업의 경우 이재명의 방어권을 배척하기 어렵다고 했다. 대북 송금에 대해 이재명의 직접개입을 단정할 만한 자료가 부족하다고 봤다. 이화영의 진술의 변화는 진술의 신빙성 여부를 판단할 영역이지 증거인멸 우려 사유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재명이 현직 정당 대표이므로 증거인멸을 할 우려가 없다고도 판단했다.
유 판사의 이와 같은 판단은 보편적이고 상식적이기보다 개인적이고 자의적이다. 공정과 형평을 담보한 법익형량의 원칙과 형평성의 원칙에 적합한 법적 판단인지 우려스럽다. 이에 따라 단독판사에 의한 영장심사제도가 과연 합당한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사회적 중대한 이슈에 대해선 일정 사건에 대해 일정 자격요건을 갖춘 합의부에 의해 영장실질심사가 이루어지는 것이 보편성과 신뢰도를 높이는 방법이 아닐까 사료된다.
유 판사는 결론적으로 이재명의 방어권 보장 및 필요성 정도와 증거인멸 염려의 정도 등을 종합할 때, 이재명에 대해 불구속 수사의 원칙을 배척할 정도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재명의 손을 들어주었는데 이 판단이 과연 타당한지에 대해 하나씩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유 판사는 이재명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한다는 주장을 폈다. 기본적으로 방어권은 사법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인정되는 권리이기는 하나 근원적으로는 공소제기된 이후에 그 중요성이 인정되는 제도다. 공소제기 전에 이미 범죄사실이 존재하므로 그 범죄사실을 명확히 하기 위해 강제적 공권력을 수사 단계에서 인정함으로써 범죄의 실체를 명확히 발견할 수 있도록 수사기관의 강제처분 행위를 인정한 것이 구속영장제도다. 수사 단계에서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해 무리한 법리나 논리를 동원해 영장을 기각하는 것은 영장제도의 본질에 비추어볼 때 옳지 않다.
둘째, 증거력의 유무에 관한 판단이다. 유 판사는 백현동 사건의 경우 이재명이 관여했다는 상당한 의심이 들기는 하나 직접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을 기각사유로 적시했다. 구속영장은 범죄를 의심할 만한 상당한 사유, 즉 범죄의 개연성이 있으면 발부하는 것이지 본안재판에서 유죄 판결의 근거가 될 정도로 고도의 입증을 요하는 것은 아니다. 범죄를 입증할 정도가 아닌 의심할 정도의 소명이 있으면 영장을 발부하는 것이 구속영장 제도의 입법취지에 맞는다. 또한 유 판사는 증거를 직접증거에 방점을 두고 직접증거의 부족을 기각사유로 들고 있는데, 직접증거와 간접증거를 준별해 직접증거만을 우월한 절대적 증거력을 인정하는 것은 구시대적 법해석이다. 오히려 직접증거가 부족할 경우 좀 더 적극적 수사를 통해 증거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서라도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것이 영장제도의 취지에 맞다.
'개인의 양심' 아닌 '법관의 양심'으로 판결해야
셋째, 증거인멸 문제에 관한 것이다. 유 판사는 이화영의 대북 송금 관련 진술의 임의성을 인정했고 법정에서 변호인이 그 내용을 인정하는 취지로 진술했으므로 쌍방울의 대북 송금 관련 범죄는 소명된 것이다. 그럼에도 구속 기각으로 이를 부정했으니 논리적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유 판사는 이재명이 야당 대표로서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는데, 현실적으로 볼 때 당대표 지위는 오히려 범죄 유관자의 증언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으므로 증거인멸의 우려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야당 대표이기에 증거인멸의 개연성을 부정하고, 이를 영장 기각사유로 삼았으니 판단의 자의성을 문제 삼는 것이다. 야당 대표라는 특별한 지위를 적시해 증거인멸의 염려가 없다는 판단은 그 자체로 정치적 판단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넷째, 위증교사 혐의가 소명된 것으로 인정된다고 판시하면서도 위증교사가 중대범죄가 아니므로 구속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은 듯한 법률 해석은 중대한 법해석의 오류라고 본다.
사건의 영장 기각사유를 바라보면서 사법의 정치화 가능성을 막아야 할 절실함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 법관으로서의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해야 한다. 이념이나 개인의 양심에 따라 재판해서는 안 된다. 사법부는 보편적인 정의의 화신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사법부에 대한 존중은 본질적으로 존중받을 만한 판결에서 나온다. 논리 모순에다 정치성을 의심받고, 법관의 양심이 아닌 개인의 양심에 따른 결정이 방치되는 사법부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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