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도 최소 큐비트로 새 양자컴퓨터의 가능성 열어

우리나라 주도 최소 큐비트 활용한 새 양자컴퓨터의 가능성 열어

우리나라 연구진이 지금까지 알려진 양자(量子, quantum) 컴퓨터와 다른 방식의 새로운 양자 컴퓨터를 만들 수 있는 길을 텄다. 특히, 원자나 전자처럼 물질의 최소 크기인 양자를 정보 소자로 쓰는 양자 비트(큐비트, qubit) 중에서도 가장 작은 크기에, 원격으로 여러 개의 큐비트를 동시 제어할 수 있는 특징도 주목된다. 미국, 중국 등 강대국이 선도 중인 양자 컴퓨터 개발 경쟁에서 한국이 새로운 돌파구로 선두 그룹에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안드레아스 하인리히 기초과학연구원(IBS) 양자나노과학 연구단장과 일본·스페인·미국 등 국제 공동 연구팀은 6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3개의 전자스핀으로 여러 개의 큐비트 시스템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는 내용의 논문을 게재했다. 이는 얇은 고체 절연체(산화마그네슘) 표면 위에 티타늄 단일 원자의 전자스핀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나온 큐비트 중 가장 작아 좁은 공간에 집적회로를 구성할 수 있는 등 다양한 장점을 가져 양자컴퓨터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했다는 평이다. 전자스핀 큐비트는 1㎚(나노미터·10억분의 1m) 크기에 불과하다. 현재 가장 많이 연구가 진척된 초전도체 큐비트에 비해 크기가 작고 이론적으로 다양한 종류의 원자를 큐비트 재료로 쓸 수 있다. 가장 작은 크기의 큐비트인 만큼 양자집적회로를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큐비트보다 더 큰 경쟁력을 지닌다. 현재 주류인 초전도체 큐비트, 이온트랩 큐비트 만큼 상용화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IBS가 개발한 방식은 최대 5~6큐비트를 연결 운용할 수 있으며, 향후 핵스핀 등을 활용해 여러 큐비트를 동시에 제어하는 플랫폼으로 발전시키는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논문 공동 교신저자인 박수현 IBS 연구위원은 "원격으로 원자를 조작하면서 여러 개의 큐비트를 동시에 제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배유정 IBS 연구위원은 "전자스핀 큐비트 플랫폼을 수십, 수백 큐비트까지 확장하는 연구를 이어갈 것"이라며 "한국이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어 양자정보과학의 새 시대를 열고 혁신을 견인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하인리히 단장은 "미국, 유럽이 선도하는 초전도체와 이온트랩 방식에서 벗어나 세계 최초로 독자 큐비트를 만들었다는 의미가 있다"며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드는 기초연구로서 5~10년 후에 기술 개발 단계로 진입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자스핀 큐비트란 지난 5월 IBS가 자체 개발한 ESR-STM(전자스핀공명-주사터널링현미경)을 이용해 단일 원자의 전자스핀을 제어하는 방식이다. 단일 원자의 전자스핀을 제어하면 이를 큐비트로 활용할 수 있음을 이번에 밝혔다. 스핀은 원자핵 또는 전자의 자전으로 인한 운동량의 단위로 이를 정밀하게 제어하면 정보 저장 단위로 활용할 수 있다. 특히, 연구팀은 여러 큐비트를 원격제어로 제어할 수 있는 ‘복수 큐비트’ 시스템을 구현하는 데 성공해 주목된다. 연구팀은 STM 탐침을 이용해 각 원자의 위치를 정밀 조작해 여러 원자 스핀들이 상호 작용할 수 있는 복수 티타늄 원자 구조를 만들었다. 이후 티타늄 원자에 탐침을 두고 원격제어 방식을 적용해 여러 큐비트를 단 하나의 탐침으로 동시에 제어·측정했다.

양자컴퓨터는 현재의 컴퓨터가 2진법으로 표현하는 0과 1의 비트(bit)를 동시에 표현하는 중첩이란 특징을 활용한다. 중첩 ‘큐비트’를 정보 저장과 연산 단위로 쓰면 특정 문제에서는 고전 컴퓨터보다 월등하게 높은 양자 우월성을 나타낸다. 구글은 자사 개발 양자컴퓨터로 현재 슈퍼컴퓨터로 1만년 걸릴 계산을 200초 만에 해결했다고 발표한 사례가 있다. 그동안 미국, 중국 등에서는 양자컴퓨터 상용화를 위해 초전도, 이온트랩, 양자점, 양자 위상 등 다양한 큐비트가 개발돼 조금씩 시제품을 출시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아직 슈퍼컴퓨터를 능가할 만한 양자 컴퓨터는 가시화되지 못하고 있다.

노성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