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눈치 본 한은·KDI?…‘정부 소비’ 전망 왜 발표 안하나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국내 주요 경제 기관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발표할 때마다 ‘정부 소비’ 성장률 통계를 임의로 삭제해 발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소비는 정부의 재정 집행 현황을 보여주는 지표로 국내 총생산(GDP)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중앙은행과 국책연구기관이 국가 재정 집행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재정 집행 전망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한국은행과 국책연구기관인 KDI는 분기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발표하면서 집계 항목인 정부 소비 성장률을 임의로 숨긴 채 발표한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소비는 정부가 국가 재정을 어떻게 집행했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구체적으로는 재정 집행과 사회보장현물 수혜로 나뉘는데 재정 집행은 정부가 국고를 쓴 것, 사회보장 현물 수혜는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을 쓴 것을 말한다.
정부소비는 민간소비, 투자, 순수출과 함께 GDP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2023 대한민국 경제’ 따르면 지난해 정부소비 규모는 406조원으로, 한국 GDP(2162조원)의 19%에 달했다. 공공성을 띤 경제 전망 기관이 국내 경제 성장률을 전망할 때 정부 재정 정책의 기조를 가늠할 수 있는 주요 통계를 감춰온 것이다.
경제 전망 기관이 정부 재량에 따라 달라지는 정부 소비 전망치까지 외부에 공개하면 재정 집행을 담당하는 기재부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어 기관들이 기재부의 눈치를 보느라 공개를 숨긴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경제전망 보고서의 ‘부문별 담당자 현황’에 정부소비 부문에만 담당자가 없는 점 등이 근거로 제시된다.
기재부는 정부소비 전망치를 공개하라는 의원실 요구에 “세입 여건, 재난 대응 등 예상치 못한 상황에 따라 변동하는 정부소비 특성상 공개하기 어렵다”고 답변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GDP 규모가 한국보다 더 큰 해외 주요 선진국들은 오히려 정부소비 전망을 정기적으로 외부에 공개해오고 있다. 한국은행이 의원실에 제출한 ‘OECD 주요국의 연간 정부소비 전망치 공개현황’ 자료를 보면 미국과 영국은 의회 및 독립기구를 통해 연 2회 정부지출 전망을 공개한다.
독일은 중앙은행에서 연 2회, 정부에서 연 1회 공개한다. 캐나다와 프랑스는 중앙은행이 연 4회에 걸쳐 전망치를 발표한다. 정부소비 전망을 아예 공개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홍 의원은 “정부 입맛대로 통계를 감춰주는 행위는 한국은행의 대내외 신뢰도 및 독립성 제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경기침체, 세수결손 등 위기에 대응하는 윤석열 정부의 재정 정책 방식이 불안정하고 불투명하다는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준 기자 jch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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