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이렇게 웃겨도 되냐고요? 죽음과 웃음엔 공통점이 있죠"
【베이비뉴스 소장섭 기자】
"스무 살 때 종합병원 내 장례식장 편의점에서 5개월간 일을 했었어요. 일반 편의점과 달리 빈소 초기 세팅을 편의점이 책임졌는데, 실제로 연극에서 등장하는 양초의 '소원성취' 스티커를 제거하고 빈소에 초기 세팅하는 일을 했었습니다. 만약 '소원성취'라는 스티커가 부착된 채로 빈소가 세팅된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지게 될까, 상상을 해봤는데... 그게 바로 이번 작품의 모티브가 됐습니다."
애플씨어터컴퍼니의 2023년 신작 '장례식장 편의점'은 박장용(43) 작가가 종합병원 장례식장 옆에 입점한 편의점에서 잠시 일했던 경험을 토대로 탄생하게 됐다. 박장용 작가는 연극배우로 활동하던 중 극단 애플씨어터 교육프로그램인 극작 워크숍에 참여하게 됐는데, 당시 '공간을 바꾸지 않고 30분짜리 단편을 써내기' 숙제로 시작한 시나리오를 2023년 여름체홉축전을 통해서 무대에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정기공연까지 할 수 있게 됐다.
박장용 작가의 첫 연출작인 '장례식장 편의점'이 10월 6일부터 11월 26일까지 서울 대학로 안똔체홉극장에서 공연된다. 어느 종합병원 장례식장 내 편의점에서 일하는 신참 아르바이트생이 상을 당한 어느 가족에게 큰 실수를 저지르고, 점장과 부점장이 이를 수습하고자 갖은 애를 쓰면서 발생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가장 엄숙해야 할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 소동은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다. 편의점 알바생 역은 진민혁 배우가, 점장 역은 염인섭 배우가, 부점장 역은 조희제 배우가, 상주 역은 노영신 배우가, 건달 역은 이주환 배우가 맡아 열연을 펼친다.
"여기서 이렇게 웃겨도 됩니까?"
극단 측에서, 이번 연극 홍보를 위해 포스터에 뽑아낸 글귀다. 관객들에게 웃음을 보장하겠다는 자신감이 엿보인다. 실제 여름체홉축전을 통해서 두 차례 관객들과 만난 이 작품은 시작부터 끝까지 폭소를 자아낸다. 정기공연 작품이 되면서 15분 가량 분량이 추가됐다고 하는데, 유쾌한 웃음을 넘어 진한 감동까지 자아낼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다.
"따로 웃음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쓰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평소에 남을 웃기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극단 동생들은 '아재개그'만 한다고 '노잼선배'라고 놀릴 정도다. 애초에 '웃기는 것은 저의 재주가 아니다'라고 생각했었다. 다만 내가 실제로 듣거나 전해들은 이야기 중 인상 깊었던 '실제 말'들을 찾으려고 노력했던 부분에 대해 감사하게도 관객들이 재밌어 해주신 것 같다."
박 작가가 찾으려고 노력했던 '실제 말'이란 무슨 의미일까?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이런 구절이 나와요. 기억에 의존하니, 문구가 정확하진 않을 수 있는데요. '아무리 징그러운 사체 일지라도 사실적으로 그리기만 한다면 재인식의 쾌감을 준다.' 나에게는 재인식의 쾌감이라는 단어가 너무 좋게 들렸다. 이게 말 그대로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다는 뜻이라고 본다. 그래서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으려면 '실제 말'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박 작가는 "죽음과 웃음은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둘 다 통제 불가능한, 결정 불가능한 지대인 타자로서 우리 삶에 존재한다는 것. 또한 삶에 희노애락이 있다면 삶의 일부인 죽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서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을까? 박 작가는 "각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임무나 의무가 달라서, 즉 책임의 영역이 달라서 '서로 오해하고 있을지도 몰라요'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그러니 살면서 무거운 책임감에 괴로워하지 말고 살아남고 행복하자, 라고 얘기하고 싶다"면서 "'내맘같지 않은 주변사람'으로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이 작품을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 작가는 20대 중반부터 30대 중반까지 장애인 인권운동 활동가로 살았다. 인천에 있는 작은자야간학교와 민들레장애인야학을 오가며 자원활동 교사 겸 활동가로 일하던 중 연극동아리 출신 자원활동 교사들과 함께 연극수업을 만들어 활동하면서, 연극의 매력에 빠져들게 됐다.
2014년부터는 배우로 연극무대에 서기 시작했고, 2017년 안똔체홉극장을 운영하는 극단 애플씨어터와 인연을 맺고 '바냐삼촌', '세자매', '챠이카', '벚꽃동산' 등 다수의 체홉 작품에 참여했다. 2020년엔 전주국제영화제 장편경쟁부문 대상 수상작인 '갈매기'에서 석태역을 맡아 영화배우로도 데뷔했다.
"안똔체홉극장은 연기활동을 본격적으로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한 공간이다. 무엇보다 극장의 예술감독이신 연출가 전훈 선생님을 만나면서 많은 걸 배웠다. 특히 선생님께서 갖고 계신 안똔체홉에 대한 애정과 장인정신을 존경하게 됐다."
박 작가는 체홉극장은 선후배 동료 배우들에게서 느껴지는 독특한 가풍(?)이 있다고 했다. 주어진 업무나 역할을 잘 수행하지 못해 질책을 받거나 꾸지람을 들을 때도, 탁월한 역량으로 좋은 성과나 결실에 대해 칭찬을 받을 때도 '정진하겠습니다'라고 인사한다는 것.
"배우들은 자신의 몸과 마음이 예술표현의 수단이잖아요. 안똔체홉극장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몸과 마음이 들끓지 않도록, 자신을 잘 관찰하고 알아차리는 수행을 중요하게 여기는 곳이다. 마치 연기예술을 위한 구도자들이 모인 곳 같은 느낌이랄까? 안똔체홉극장은 '연기예술의 사원'이라 자부한다."
첫 연출작을 무대 위로 올리는 신인 작가의 심정은 어떨까? 박 작가는 "아직도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내가 쓴 글을 존경하는 선후배 동료 배우들이 연기해주는 모습을 보니, 신기하고 감격스러웠다. 지금 돌이켜 보니 작품이 되는 과정이 감격스러운 만큼 작가로서 연출로서 갖는 책임과 무게감에 대해서도 한편 생각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배우와 작가, 연출가로 왕성히 활동하면서도 여전히 장애인야학에서 장애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매주 연극수업을 진행하고 있고, 장애인 활동지원사를 양성하는 교육강사로, 실제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애인 활동지원사로 일하고 있다. 이웃을 향한, 그리고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마음은 그가 배우와 작가로, 그리고 연출가로 활동하는데 커다란 자양분이 되고 있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동료 배우들과 좋은 연극 작품을 만들 예정이다.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글쓰는 즐거움을 알게 돼서 원래 하던 일에서 글쓰기가 추가됐다는 점이다. 이번에는 여성캐릭터들이 중심이 되는 반찬가게나 수선집 이야기에 도전해보려고 한다. 어머니가 수선집을 오래 하셨는데, 담소를 나누던 아주머니들이 말다툼을 벌이다가 몸싸움까지 하게 되는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소소한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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