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작가 서현경의 여기저기 여행기] 실크로드가 교차하는 오아시스의 도시 부하라
[여행작가 서현경] 사마르칸트에서 아프라시압 고속열차를 타고 1시간 30여 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부하라’이다.
타슈켄트와 멀어지는 만큼 실크로드의 옛 흔적과는 가까워지는 걸까. 부하라 기차역에 내리니 평평한 대지 위에 가만히 내려앉은 건물들이 옛 정취를 물씬 풍긴다. 물론 그사이 우뚝 선 파란색의 모스크 지붕들이 여기가 그저 흔한 외국의 시골만은 아니라는 걸 일깨워주고 있다.
이란 이스파한에서 동쪽으로 향해 난 실크로드를 따라가다가 만나는 첫 번째 오아시스. 네 방향으로 난 실크로드가 교차하는 곳에 있었던 도시. 모두 수 세기 전 이야기지만 구시가지에 들어서는 순간 부하라의 옛날이야기는 마치 지금도 이어지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실크로드의 가장 번성했던 흔적은 부하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모스크와 교육기관인 메드레세가 곳곳에 있고 성곽도 남았다.
특히 도시 가운데 우뚝 솟은 첨탑 ‘칼란 미나렛’은 47미터 높이로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첨탑이라고 한다. 신앙적 상징도 물론 당연히 있지만, 한때는 사막의 등대 역할을 했다고 한다. 꼭대기에 불을 피워 실크로드 상인이 불빛을 따라 부하라로 올 수 있도록 도왔다.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고 칭기즈칸 침공에도 살아남은 ‘칼란 미나렛’은 여전히 우뚝 솟은 채 그 시절 실크로드 상인들을 안내했던 것처럼 여행자의 발걸음을 부하라에 멈추게 했다.
실크로드를 지나는 상인이 된 것처럼
부하라 구시가지를 걷다 보면 올록볼록한 둥근 지붕을 덮은 건축물을 마주치게 된다. ‘타키’ 라고 하는 이 건물에 들어가 보면 어김없이 시장처럼 물건을 팔고 있다. 관광지의 흔한 장사인가 싶은데 알고 보면 이 장소는 그 옛날에도 물건을 팔던 상점이었다고 한다.
낙타를 타고 들어갈 수 있게 입구와 천장은 높게 만들었고 그늘을 만들어준 돔 중앙에는 구멍이 뚫려 있어 채광과 통풍도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으로 치면 백화점이나 쇼핑센터라고 할 수 있을까.
낙타는 타지 않았지만 마치 그 시절 실크로드를 건너던 상인처럼 타키 안을 어슬렁거려 보았다. 부하라 특산품이라고 할 수 있는 카펫, 금속공예품, 전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싸구려 중국산 기념품 등 다양한 물건을 타키 안에서 볼 수 있다.
그 옛날 실크로드 교차로였던 부하라에서 각국 상인이 모여 얼마나 진귀하고 신기한 것을 팔고 샀을까? 상상만으로도 왠지 흥미진진해진다.
타키를 둘러보다가 부하라 전통 문양이 새겨진 로브를 하나 샀다. 우리나라 경복궁에 가면 한복 입은 외국인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부하라에는 많은 사람이 전통 문양이 새겨진 화려한 로브를 입고 다녔다. 모래색 건축물과 화려한 색의 로브가 주는 대비가 꽤 괜찮아서 사진도 잘 나왔다.
부하라가 아니면 절대 살 수 없을 것 같아 종일 입고 다니면서 사진도 많이 찍었다. 그러고도 너무 소중해서 구겨질세라 고이 접어 가방에 넣어왔다.
하지만 나중에 타슈켄트로 돌아와 ‘초르수’ 시장에 가니 부하라에서 보았던 로브를 지천에서 팔고 있었다. 게다가 가격도 부하라의 반 가격이거나 더 저렴했다. 눈을 의심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호구는 남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아무리 능숙한 척 가격을 깎고 또 깎아도 부하라 상인에게는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게임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들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아무튼 그 이전 조상들은 이미 무역을 하던 상인이었을 테니 나 같은 어리숙한 여행자 따위는 상대가 안 되었을 테니 말이다.
부하라에서 만난 나의 오아시스
한참을 걷다가 그 시절 오아시스라고 할 수 있는 연못가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갔다. 가을임에도 한낮의 뜨거운 햇살에 목이 마르고 걷느라 꽤 힘들었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보며 시원한 맥주를 들이켰다.
“여기 너무 좋다!”
맥주 한잔을 마시며 물가에서 불어오는 살랑이는 바람을 맞으며 쉬고 있자니 좋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실크로드를 건너다 부하라에 멈추었던 상인들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오늘 부하라에서 나의 오아시스는 맥주 한 잔. 시원하고도 알딸딸해진 기분으로 먼 옛날 상인 마음을 헤아려 보며 감상에 젖어본다. 오아시스에서 갈증을 채웠으니 다시 떠나야 했던 그들처럼 나도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부하라를 천천히 눈에 담았다.
|서현경. 꽤 오래 방송 구성작가로 글을 썼으며 지금은 구성작가, 여행작가, 에세이스트 등 쓰는 글에 따라 다르게 불리지만 어쨌든 끊임없이 이런저런 글을 쓰고 있다. 책 <너와 여행이라는 미친 짓>, <체크인 러시아>, <내 안의 그대, 러시안 블루>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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