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진짜 골프 잘 치는 지혜
[골프한국] 골프채를 잡은 이상 스코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초보자는 백돌이를 벗어나기 위해 땀을 흘리고 초보 단계를 벗어나서도 80대 70대 스코어를 향해 고행의 길을 가야 한다. 골프의 묘미에 빠지는 단계에 이르면 싱글이나 언더파 스코어를 추구하고 더 멀리는 자신의 나이와 같거나 더 낮은 스코어를 내는 에이지 슛(Age shoot)을 갈망한다.
이런 갈망에 사로잡힌 골퍼가 필드에 나서서 좋은 스코어를 내고 싶은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그러나 구력이 켜켜이 쌓이면 좋은 스코어를 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골프를 즐길 수 있으려면 주위에 좋은 골프메이트가 많아야 한다. 행복한 골퍼란 아무 때나 부르면 토를 달지 않고 달려오고, 잊지 않고 나를 자주 불러주는 골프메이트가 많다는 뜻이다. 흔히들 기량이 뛰어나고 재력이 있으면 주변에 골프메이트가 많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좋은 기량에 재력까지 갖췄는데도 불러주는 데가 없어 주위에 동반 라운드를 구걸하는 예를 흔하게 본다.
좋은 골프 메이트의 조건으로 아래의 다섯 가지를 꼽고 싶다.
첫째가 골프 매너다. 아무리 골프를 잘 쳐도 규칙을 어기고 동반자를 배려하지 않는 골퍼는 환영받지 못한다. 비신사적인 행위와 부정행위로 한번 낙인찍히면 '불가촉 골퍼'로 전락하고 만다. 동반자들과 싱그러운 잔디 위를 걸으며 담소하는 것 자체를 즐거움으로 여기고 경기가 잘 풀리든 안 풀리든 한 샷 한 샷에 정성을 쏟는 사람은 어디서든 환영받는다.
둘째 골프 열정이다. 골프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골프 매너는 갖췄을 터이니 사실 골프 열정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기준이나 다름없다. 골프에 대한 열정으로 충만한 사람은 격식을 따지지 않는다. 아무 때나 연락해도 군소리 없이 달려오고 날씨나 골프장, 동반자를 가리지 않는다. 하루 이틀 전에 동반요청을 하면 "내가 무슨 땜빵 용이냐?"며 불쾌해하는 사람은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것저것 재지 않고 동반요청을 해온다면 요청받는 입장에선 상대방이 자신을 골프 메이트 0순위로 인정하는 셈이니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셋째 바른 셈이다. 라운드와 뒤풀이에 따르는 비용을 골고루 나누어 부담하는 것은 동반자 모두를 당당하게 만든다. 가령 내기에서 땄다면 캐디피를 내준다거나 뒤풀이 비용으로 보태는 것도 바른 셈의 한 방법이다. 지갑을 자주 열면서도 생색을 내지 않는다면 금상첨화다.
넷째 실력이다. 골퍼에게 가장 중요한 기량이 동반요청을 할 때는 우선 순위에서 뒤로 밀린다는 게 이상하지만 현실이다. 다른 조건들을 충족한다면 실력 있는 골퍼가 환영받지만 하나라도 결격사유가 있으면 기량은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기량은 뛰어나지만 스코어에만 매달리는 고수는 1호 기피 인물이다.
다섯째, 최고의 골프메이트 자리는 나도 좋고 동반자도 좋은 라운드를 이끌어가는 지혜를 터득한 사람이다. 이런 골퍼는 기량이 뛰어나면서도 동반자들을 배려하고 무언가 도움을 주려고 애쓴다. 경기에 집중하면서도 동반자의 위기나 불행을 기꺼이 공유할 줄 안다. 싱글패나 최저타 기념패를 만들어주기 위해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때로는 티 안 나게 미스샷을 내 동반자들에게 기쁨을 안겨주기도 한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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