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정수정·한선화, 이제 '배우'란 수식어가 딱이야~
아이즈 ize 윤준호(칼럼니스트)
'아이돌 출신'. 요즘 드라마와 영화를 누비는 여러 배우들에게 붙는 수식어다.
아이돌 그룹의 수명은 길지 않다. 20세 전후 활동을 시작해 30대가 되면 사실상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준다. 그리고 새로운 활동을 도모하며 연기 겸업을 선언하는 건 하나의 공식이 됐다.
과거에는 '구색맞추기'에 가까웠다. 배우로서는 '신인'이지만 엄청난 인지도를 바탕으로 곧바로 주·조연 자리를 꿰찼다. 하지만 명성에 걸맞지 않은 연기력 때문에 도마에 오르곤 했다.
하지만 이런 시행착오는 약이 됐다. 요즘은 가수가 아닌 차선책으로 배우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로도 손색없는 연기력을 갖춘 아이돌들이 부쩍 늘었다. 나나, 정수정, 한선화가 대표적이다. 웬만한 정통 배우 못지않은 연기력을 바탕으로 당당하게 활로를 개척해나가고 있다. 그들은 더 이상 '걸그룹'이 아니다.
걸그룹 애프터스쿨과 오렌지캬라멜로 활동했던 나나가 단연 눈에 띈다. 그는 최근 넷플릭스 '마스크걸'에 출연했다. '마스크걸'은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가면을 쓴 채 인터넷 방송을 하던 여성의 이야기다. 이한별, 나나, 고현정 등 3명의 배우가 주인공 김모미를 나누어 연기했다. 그 중 나나는 성형수술 후 예뻐진 김모미를 맡았다.
나나는 극 중 외모는 빼어나지만, 내면의 아픔을 가진 김모미를 온 몸으로 웅변했다. 초점없는 눈으로 감옥 생활을 하는 모습은 퍽 인상적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세력에 맞서 연신 주먹을 뻗는 장면에서는 통쾌감이 느껴졌다.
이미 수차례 주연작을 책임지기도 했던 나나의 연기력은 지난해 개봉된 영화 '자백'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주인공 유민호(소지섭 분)의 내연녀 김세희 역을 맡아 탄탄한 연기력을 뽐냈다. '마스크걸'에는 고현정, '자백'에는 소지섭이라는 걸출한 배우가 있었지만 "사실상 나나가 주인공"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흠잡을 데 없었다.
지난 추석 연휴 개봉된 김지운 감독의 신작 '거미집'에서는 정수정의 존재감이 돋보였다. 그는 걸그룹 에프엑스의 멤버 크리스탈이다. 2020년 독립영화 '애비규환'에서 혼전 임신부 역을 맡아 기대 이상의 안정된 연기력을 선보였던 그는 '거미집'에서 1970년 충무로 라이징 스타 한유림 역을 맡았다. 그의 상대는 송강호, 임수정, 오정세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었다. 하지만 정수정은 한치도 밀리지 않았다. 재촬영을 요구하는 감독을 상대로 다른 작품 촬영 스케줄을 핑계대며 애를 태우는 한유림과, 이 감독이 촬영하는 극중 작품 '거미집'에서 공장 사장과 바람이 나는 젊은 여공 역을 사뭇 다른 톤으로 빚어냈다.
그의 연기를 두고 김지운 감독은 "정수정은 모든 순간, 매 호흡들이 오차 없는 계산과 순발력, 영화와 캐릭터에 대한 해석으로 정확한 표현을 보여준다. '거미집'은 정수정이 배우로서 새로운 평가를 받게 될 작품이 될 것"이라고 칭찬했고, 실제로 평단의 반응 또한 이와 유사했다.
한선화는 두 배우와는 또 다른 결을 보여주고 있다. 걸그룹 시크릿 출신인 그의 주종목은 코믹이다. 한선화는 여름 극장가의 복병으로 손꼽힌 영화 '달짝지근해: 7510'에서 통통 튀는 매력이 돋보이는 은숙 역을 맡았다. 유해진, 김희선 등과 한선화의 찰떡 궁합이 돋보인 이 작품은 138만 관객을 동원하며 '밀수'와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이어 여름 개봉작 중 박스오피스 3위를 기록했다.
한선화의 연기 경력은 상당하다. 그동안 드라마 '광고천재 이태백' '장미빛 연인들' '자체발광 오피스' '20세기 소년소녀' '구해줘2'를 비롯해 영화 '강릉' '창밖은 겨울' 등에 출연하며 끊임없이 바닥을 다졌다. 그러다가 티빙 '술꾼 도시 여자들'에서 꽃을 피웠다. 극 중 술을 사랑하고 한없이 긍정적인 에너지를 내뿜는 한지연 역을 맡아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단단히 받았다.
걸그룹 출신 배우들의 약진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과거 아이돌 그룹으로서 한계에 도달한 몇몇 멤버가 연기로 눈을 돌리던 것과 달리, 요즘은 전략적으로 연기 수업을 병행한다. 일종의 투 트랙(two track) 전략이다. 그들은 아이돌 활동으로 쌓은 인지도를 활용해 적절한 시점에 연기 활동을 시작한다. 출발선이 다르니 처음부터 주어지는 배역의 크기도 작지 않다. 하지만 이미 연기 트레이닝을 받아온 터라 연기자로서도 연착륙이 가능해졌다.
제작진 입장에서도 그들의 효용가치를 높게 산다. 일단, K-팝 시장이 글로벌화되면서 아이돌 그룹의 인지도가 크게 상승했다. 유명 아이돌 그룹 멤버가 출연한다는 이유로 해외 판매에 큰 도움이 된다. 일정 수준 이상의 연기력도 동반되기 때문에 금상첨화다.
걸그룹 출신 배우의 성공사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서현진(밀크), 황정음(슈가)이 걸그룹으로 활동하던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윤아와 유리(이상 소녀시대), 수지(미쓰에이), 혜리(걸스데이), 설현(AOA)에 이어 최근에는 블랙핑크 지수가 연기자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가수와 배우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은 결코 부정적이지 않다. 주어진 역에 걸맞은 이미지와 연기력만 갖췄다면 이는 윈윈 전략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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