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화속 산화한 마틴 대령… 추모비엔 ‘잊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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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이 기습 남침한 6·25전쟁 초반, 일본에 주둔 중이던 미군이 급히 투입됐지만 그들 역시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소련으로부터 넘겨받은 T-34/85 전차를 몰고 진격해 오는 북한군에 비해 주일미군은 전력 면에서 열세를 면치 못했다.
중과부적이었지만, 미군은 본토로부터 증원군이 전개되기 전까지 북한군의 남하를 늦추기 위해 목숨을 내걸고 싸웠다.
천안 전투 이틀 뒤인 7월 11일 북한군이 개미고개의 미군을 공격, 12시간에 걸친 전투 결과 제24사단 제21연대 미군 667명 중 517명이 희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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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 80곳 순례중인 이귀형씨
‘자유는 공짜 아니다’ 배너설치
시민들과 한 뜻 모아 십시일반
개미고개 격전지의 병사 동상
‘피로 지킨 자유’ 온몸으로 웅변
천안·세종=조재연 기자 jaeyeon@munhwa.com
북한군이 기습 남침한 6·25전쟁 초반, 일본에 주둔 중이던 미군이 급히 투입됐지만 그들 역시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소련으로부터 넘겨받은 T-34/85 전차를 몰고 진격해 오는 북한군에 비해 주일미군은 전력 면에서 열세를 면치 못했다. 중과부적이었지만, 미군은 본토로부터 증원군이 전개되기 전까지 북한군의 남하를 늦추기 위해 목숨을 내걸고 싸웠다. 주일 미 극동군 사령부에서 근무하던 켄터키 출신의 48세 대령, 로버트 마틴도 그중 하나였다. 제24사단장 윌리엄 딘 소장의 긴급 호출을 받고 한국에 온 마틴 대령은 제34연대장으로 임명된 뒤 하루도 채 지나지 않은 7월 8일 아침 충남 천안 시가지 전투에서 산화했다.
73년이 흐른 지난 5일, 고 마틴 대령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천안 마틴공원은 전쟁의 포화를 긴 세월 속에 잊기라도 한 듯 고요했다. 전몰미군 추모비가 홀로 서 있고, 그 옆에선 유엔기·태극기·성조기가 나란히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추모비 곁에는 누군가가 만들어 세워둔, ‘6·25전쟁 승전 73주년 그들의 고귀한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한·미동맹 기념 배너가 쓰러진 채 흙과 낙엽에 덮여 있었다.
“6월에 이곳을 찾았을 때는 이 배너가 없었습니다.” 함께 마틴공원을 찾은 이귀형(51) 씨의 말이다. 오산에서 개척교회 목사로 활동하는 이 씨는 2020년부터 전국에 흩어진 6·25전쟁 전투의 현장을 순례하고 있다. 지금까지 찾은 전투 현장만 70∼80곳에 달한다.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은 올해는 국군과 미군이 함께 어깨를 맞대고 싸운 전장 30여 곳을 찾으며 한·미동맹을 기리는 배너를 세웠다. 마틴공원 추모비 옆에 쓰러져 있던 것과는 다른 배너로, 한·미동맹 70주년의 의미를 담아 ‘We will remember you forever’ ‘Go together’ ‘Freedom is not free’란 문구가 담겼다. 미군 외의 유엔 참전국들을 위한 배너도 따로 만들었다. 이 씨의 뜻에 공감하는 시민들이 배너를 만드는 비용을 십시일반 보탰다고 한다. 다만 이 씨가 앞서 세웠던 배너는 이날 마틴공원에선 사라져 있었다.
이 씨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했다. 전투 기록이 남아 있는데도 기념비 하나 세워져 있지 않은 곳이 여전히 많다고 한다. “단장의 능선 전투는 미군과 프랑스군이 북한군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며 고지를 점령한 전투인데, 기념비가 없어 국가보훈부에 설치를 건의하니 적극 검토하겠다고 답변이 왔습니다. 전투 현장은 군사분계선 안쪽이기에 갈 수는 없지만, 바깥쪽에라도 기념비를 만들어 유엔군의 희생을 기려야 합니다.” 이 씨는 기념비가 설치된 곳도 일부는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풀이 제멋대로 자라고, 찾아가려면 풀숲을 헤쳐야 하는 곳도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마틴공원에서 차로 30여 분 걸리는 세종 전동면의 개미고개 격전지에도 인적은 드물었다. 천안 전투 이틀 뒤인 7월 11일 북한군이 개미고개의 미군을 공격, 12시간에 걸친 전투 결과 제24사단 제21연대 미군 667명 중 517명이 희생됐다. ‘자유 평화의 빛’ 기념비 오른쪽엔 참전 미군의 용맹한 기개를 기리는 군인상이 서 있었다. 미군 병사 3명이 전방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동상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더 눈길을 끈 것은 전투 중에 중상을 입고 신음하며 죽어가는 한 병사를 다른 병사가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의 또 다른 군인상이었다. 여섯 중 다섯이 목숨을 잃은 처절한 개미고개 전투의 모습은 이 동상에 차라리 더 가까웠을 성싶었다. 전쟁이 멈춘 지 70년, 그들을 기억하는 일은 후세의 몫으로 남았다.
문화일보·외교부·문화체육관광부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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